#20.전설의 쁘남바난과 아이돌 체험기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크라톤왕궁

#쁘남바난사원 #2017년3월


우린 작다. 작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이것이 참 유용할 때가 많다. 특히나 남편은 작을 대로 작은 나를 가끔 부러워한다. 예를 들면 좁은 비행기나 기차 좌석에서 다양한 포즈로 잠을 잘 수 있다든가, '베모'에 가방을 벗지 않고도 쏙 탈 수 있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때로는 2미터가 넘는 유럽인들 옆에서 굉장한 자괴감에 빠지지만, 여러모로 내 작은 키는 핫하다. 물론 우리를 술탄 왕궁으로 데려다 줄 좁디좁은 '베짝' 탑승 시에도 이러한 사실은 유효했다. '베짝'은 자전거 앞쪽에 두 명이 겨우 탑승할만한 좌석이 달려 있는 가까운 거리용 교통수단이다. 한눈에 봐도 '어후 무리무리'인 사이즈이지만 우리에겐 가뿐. 2인조 호빗의 성공 신화는 오늘도 계속된다.

<우리 둘에게는 SUV 같은 베짝.>

인도네시아는 과거 여러 왕조들이 합쳐져 이루어진 나라이다. 현재 대통령제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몇몇 도시에서는 왕이 생활하는 왕궁이 존재한다. 족자카르타도 그런 도시 중 하나인데, 이곳은 술탄 왕조의 혈통들이 그 계승을 잇고 있다. 맞춤 베짝을 타고 우리가 도착한 곳이 바로 그 왕궁. 지금 살고 있는 왕은 술탄 10세이고, 오전 시간 동안만 본인들이 살고 있는 곳의 일부를 공개하고 있다. 이때 발생하는 입장료가 왕궁의 유일한 수익이라 한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에 왕족 및 그 일가친척 등 2만 5천 명이 살고 있다는 것. 일반인들이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저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산다는 사실에 입이 떡 벌어졌다. 역시 무엇이든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네덜란드 식민지배의 영향인지 서양 느낌이 많이 난다>

공개되지 않은 공간을 아련하게 바라보다 출입구 근방에서 펼쳐지는 전통 춤 공연을 보기 위해 이동했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악기 연주와 노랫소리를 듣고 있었다. 맑고 청아하지만 반음이 많이 사용되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악기 연주. 아름답고 슬픈 연주에 맞추어 일곱 분 정도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전통 노래를 불러주셨다. 곧이어 전통 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 무용수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 처음 보는 이국적인 춤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유독 세밀한 손동작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은 취할 수 없는 아주 아름답고 오묘한 모양들이었다. 화려함과 그 뒤에 숨은 고된 노력이 만들어 낸 완벽함. 정성껏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등장한 남자 무용수의 춤은 더더욱이나 특별했다.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동작들, 화려하지만 정제된 춤사위는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순간으로 압축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내 마음을 홀랑 빼앗아 간 전통춤 한마당.>

족자카르타의 매력에 빠진 채 오늘의 두 번째 코스인 쁘람바난 사원으로 향했다. 가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어 배가 고팠다. 버스에서 내려 사원으로 걸어가는 길, 허름한 로컬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들어가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던 박소와 소토를 시켰다. 박소는 인도네시아식 미트볼을 넣은 국수이고, 소토는 소고기가 들어간 국밥 같은 것이었다. 10분을 기다리니 따끈하게 김이 나는 음식이 나왔다. 박소의 국물은 담백했고, 소토는 든든한 설렁탕 같았다. 로컬 식당에 살짝 거부감을 느꼈던 남편도 '이걸 왜 지금에서야 먹었지'라고 의아해하며 순식간에 흡입을 마쳤다. 가격도 두 그릇에 3,500루피(약 3,200원)로 아주 저렴했다. 만족 만족 대만족이었다.

<속이 든든해지는 박소와 국수.>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도착한 사원 입구에는 정식 가이드 센터가 있었다. 지난번처럼 즐거운 관람을 위해 기꺼이 10만 루피(약 9,000원)를 지불했다. 운 좋게도 우리를 안내해주신 가이드 아재는 한국어가 아주 유창하셨다. 대학에서 주경야독으로 1년간 공부하셨고, 지금은 5개 국어를 하신단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다.

<김조한을 떠올리게 하는 가이드 아재의 파워 설명>

시작하기 전 간단한 설명과 함께 이 사원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해주셨다. 옛날 본도워소라는 이름의 남자가 살았다. 그는 악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로로종그랑이라는 다른 나라 공주의 아버지를 죽이게 된다. 하지만 로로종그랑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본도워소.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청혼하지만,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결혼할 수 없었던 그녀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건다. 하룻밤 안에 천 개의 사원을 세우는 것. 본래 불가한 일이었지만, 본도워소는 악마들의 힘을 빌려 999개의 사원을 만들게 된다. 마지막 한 개가 세워지는 것을 본 공주는 급한 마음에 횃불을 밝히며 닭을 울게 했고, 사원을 짓던 악마들은 아침이 온 줄 알고 모두 도망쳐 버린다. 이런 공주의 방해공작을 알아챈 본도워소는 홧김에 그녀를 사원으로 만들어 버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천 개의 사원이 완성된다. 전설 속에서 사원은 천 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240개로 추정되며, 16세기 화산 폭발로 무너져 내린 것을 1918년부터 복원하여 현재 18개가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아직 복원 작업이 한창. 기약 없는 테트리스각.>

천천히 사원들을 둘러보고, 아재의 주문에 맞춰 사진 잘 나오는 포인트들마다 서서 사진을 찍었다. 그때마다 안타까웠던 것이, 유네스코에 지정된 이 어마어마한 돌 위에 올라가거나 앉으라고 권하는 부분이었다. 그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조금 더 신경 써서 관리하지 않으면 년 뒤에는 이 사원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가이드 아재는 복원이 시작되기 전 이곳도 보로부두르 사원처럼 지역 주민들이 돌과 조각상들을 들고 가 버려서 복원이 더욱 늦어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반면 거대한 조각상들 특히 몇 톤에 달하는 '소 조각상' 같은 것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무거워서 가져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점프하며 숨겨진 키 10cm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

모든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수학여행을 온 것처럼 보이는 중학생 여자 아이가 나에게 '익스큐즈미'라고 말을 걸었다. 단에 서있던 나에게 비켜달라는 것인 줄 알고 비켜서려는데, 아이는 '언니랑 같이 사진 찍어도 돼요?'라고 물었다. '나?' 굉장히 당황해서 나에게 한말이 맞는지 몇 번을 물었더니, 맞단다. 좋으면서도 신기한 기분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계단을 내려와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걸어오던 남편 말로는 수십 명의 여중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내 뒤를 따라왔었다고.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다. 아마도 한류 열풍과 소녀들의 호기심이 더해져 벌어진 해프닝일 것이다. 내 폰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찍어둘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보겠는가. 이것은 분명 여행이 주는 선물임에 틀림없다. 트와이스도 에이핑크도 아닌 나에게 잠시나마 아이돌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인도네시아 소녀들. 그 아이들이 평생 나의 여행기를 볼 일은 없겠지만, 이 자리를 빌려 진심 감사의 말을 전한다. 고맙다 얘들아!


그리고 조그만 질문도 하나 남기고 싶다. 혹시나 다음번에 만나면 사인해줘 봐도 될까?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게.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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