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드니와 우리와 바보짓에 관한 보고서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호주 #시드니 #바보짓

#2017년2월15일


시드니에 도착했다. 24시간의 전쟁 같은 비행을 마치고 공항에 내려 저렴한 통신사인 옵투스에 가서 유심을 폰에 장착하고 우리나라 티머니 같은 오팔카드를 사러 공항 내 편의점에 들어갔다. 원래 계획은 1인당 33달러를 충전하는 것이었는데 당황스럽게도 판매원이 20달러 또는 40달러만 된다는 것이다. 하.. 이것을 기록하는 지금도 잠들어있던 빡침이 가오나시처럼 징그럽게 따라붙는다. 그때 난 왜 40달러를 택했을까. 아무래도 순간 머릿속에 세워둔 계획들이 무너지며 그 잔해들 위로 낯선 호주인의 영어가 오소소 쌓였고 나는 그 무게에 눌려 정신줄을 놓았던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결국 오팔카드는....다 쓰지 못해 각 14달러가 남는 파~국에 이르렀다. (도깨비 박중헌ver)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바보짓. 버스 타고 가도 되는 숙소에 굳이 40달러나 주고 택시를 탔다. 하루에 둘이 식비가 20달러인데ㅋㅋㅋ 내참ㅋㅋ

<문은 문인데 왜 들어가지를 못하는거니>

사실 시드니에 도착하고서 바보짓을 시리즈로 진행 중이다. 다 말해 무엇할까 싶지만서도 다 말해보려 한다. 여차 저차 해서 도착한 우리의 첫 번째 에어비엔비 숙소는 도심에서 버스로 약 50분 정도 떨어진 한가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주인장이 미리 말해준 대로 저 검은 철창 같은 문를 열고 들어가 열쇠를 숨겨둔 화분을 찾기 시작했다.

<이거 아닌데 이거 아닌데 하면서도10분을 후벼파서 미안>

들어가자마자 누가 봐도 열쇠 숨겨 놓기 좋게 생긴 화분을 발견했다. '아 이런 너무 쉽군. 지난번 일본 방문 때에는 열쇠 얻는데 한 30분 고생했는데 이렇게 빨리 찾다니' 라며 자만하는 순간에도 열쇠는 없었다. 왜? 그냥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화분을 들어도 보고 흙을 파보기도 하다가 식물을 뽑아 볼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이곳이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래서 대답 없는 호스트에게 문자를 보내고 음성 메시지도 남기며 질척거리기를 10분. 마치 방탈출 게임을 하듯 어디엔가 힌트가 있을 거야라며 이것저것 만지다가 얼떨결에 옆으로 나있는 흰색 문을 슬쩍 밀어보았다. 열린다. 우오오.

<우리의 첫 에어비앤비 입성!>

그리고 펼쳐진 호주 현지인의 집. 따라라라라~ 따 라라라라♪(러브하우스ver). 작지만 안락한 정원, 자연채광이 들어오는 예쁜 주방과 거실, 널찍한 화장실까지 후기가 없던 집 치고는 맘에 드는 점이 많았다. 아! 그리고 이 집의 하이라이트 알록달록 이국적인 침구와 폭신한 침대 그리고 문짝을 떼놓은 개방적인 옷장. 읭?

<주인장, 뭐라고 말 좀 해보시오>

3초간 놀랐지만 손쉬운 짐 정리를 위한 주인의 배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언제나 나사 하나쯤 빠진 채로도 잘들 살아가는 그런 존재가 아닌가. 타인에게 발견한 부족한 부분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채우면 되고 또한 나에게 비어 있는 부분은 타인이 또 조금쯤 메꿔주며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주인과 함께 살고 있는 호랑이만큼 거대한 고양이 프랭키>

거실에서 마주친 프랭키와도 인사를 나누고 간밤 비행기에서 쩌든 몸과 마음도 깨끗하게 씻고 시티로 나갔다. 여행 초반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는 체력이 그럭저럭 파릇하다.

<버스 스탑 버튼이 되게 누르고 싶게 생김>

귀여운 스탑 버튼이 달린 428번 버스를 타고 이국적인 거리들을 지나 도착한 시티에는 쨍쨍한 날씨와 거대하고 푸르른 나무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다양한 건축물이 가득했다. 몇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성당과 몇백 년은 산 것 같아 보이는 나무들이 어우러진 하이드 파크의 풍경은 정말 인상 깊었다.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택한 시드니>

조금씩 도심 속으로 걸어 들어 갈수록 이번 여행이 차츰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1년 반이라는 긴 준비 기간 때문이었는지 사실 출발을 하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낯선 땅 위에 서서 처음 느끼는 기분 좋은 생소함이 종이 위에만 누워 있던 기나긴 계획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석양이 지는 맑은 된장국 색깔의 도시가 참 좋다>

생기를 얻은 계획 속에서, 또 그것과 어긋나는 많은 일들 속에서 높은 곳으로의 자람이 아닌 깊은 곳으로의 뿌리내림이 우리들에게 시작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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