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괜찮아, 여행이야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호주 #시드니 #하버브릿지

#오페라하우스 #2017년2월16일


전날 긴 비행 후 바로 시티 구경을 다닌 탓에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우리는 합의하에 늦잠을 자기로 했다. 12시쯤 좀비처럼 일어나 거실에 나오니 고양이 프랭키가 기지개를 켜며 한심한 듯 나를 쳐다봤다. '왜, 뭐.'

<어서와서 날 쓰다듬어라 닝겐>

지난밤에 잠깐 만났던 주인장 Sue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없었다. 냉장고에 있는 계란이며 채소 빵 커피 등 맘껏 다 먹으라고 하고 와이파이도 빵빵 쓰라고 하고 참 나이스 한 주인을 만난 것 같아 감사했다. 우리가 방문하기 전 2주간 아르헨티나 커플이 머물렀었는데 Sue의 주방이 지저분하다고 했다던데 나는 뭐 참을만했다. 벌레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설거지들을 식기세척기에 넣지 않고 늘어놓는 정도? 이런 것쯤은 한국에서도 흔히 보던 것들이다. 바로 우리 집에서. 예에~

<맛은 있는데 왜 김치 생각이 나는 거죠>

한국에서는 이마트와 홈플이 대형마트계의 양대산맥이라면 여기에는 콜스coles와 울월스woolworths가 있다. 오늘 아점 식사를 위해 어제 바로 그 울월스에 갔었다. 2달러짜리 파스타 소스 한병 1달러짜리 파스타 면 한 봉지 50센트짜리 양파 하나. 총 3.5달러와 주인장 냉장고 속 치즈 약간과 오렌지 하나의 도움으로 남부럽지 않은 식사가 완성되었다.


여기에 완벽한 반찬인 '배고픔'을 더했더니 미슐랭 가이드에 오른 레스토랑 보다도 더 고급진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참고로 그런 곳에 가본 적은 없다. 그리고 이 식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점은 3천 원으로도 우린 충분히 행복했다는 사실이다.

<시드니의 여름은 여러모로 Hot>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해가 가장 쨍한 낮 2시쯤 다시 시티로 나섰다. 시드니의 옷걸이라 불리우는 하버 브릿지를 보러 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의 다 옷걸이가 필요 없어 보였다. 뭘 입은 게 있어야 집에 가서 옷걸이에 걸지. 참 좋다.

<시드니의 옷걸이라는 별명을 가진 하버 브릿지 앞에서.>

우린 저 멀리 보이는 다리를 배경으로 몇 장의 '나 관광객이요' 버전의 사진을 찍고 오페라 하우스 쪽으로 걸어갔다. 매우 더웠다. 그리고 길가 레스토랑들에서는 시원한 생맥주를 팔고 있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남편이 눈에다가 이제 막 생맥주를 따라 마실 것 같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찍는 나는 만득이요 그대는 인생샷이니라_셀카복음 1장1절>

그래서 결국 앉았다. 맥주는 한잔에 9달러.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의 하루 식비는 20달러이다. 두 잔을 시키고 나니 달랑 2달러가 남았다. 하지만 거대한 크루즈와 멋진 다리와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는 곳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것은 가난한 여행자에게 큰 기쁨이었다.


'밥은 그냥 숙소에 돌아가서 무료로 제공되는 빵에 쨈 발라먹으면 되지.'


우리 삶엔 늘 기회비용이 생긴다. 언제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나에게 동전이 하나가 있다면 그 하나의 동전으로 행복한 삶을 선택할 수 있으면 된다. 비단 돈과 물질뿐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많은 상황 속에서 이 공식은 언제나 유효하다. 이것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지난 31년을 살면서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나 이 장면 영어 교과서에서 본거 같아 데자뷰인가>

거액의(?) 맥주를 해치우고 3번 선착장에서 30분마다 한대씩 다니는 맨리비치manly beach행 페리를 타고 멋진 시드니의 바다를 구경했다. 모두 파~국의 오팔카드로 이용한 것이다. 이 교통카드의 큰 장점은 하루에 최고 사용 금액이 15달러로 한정되어 있어서 그보다 많은 금액은 아예 차감이 되지 않는다. 즉, 페리, 버스, 전철 등등 무엇을 몇 번 타도 하루 15달러만 내면 된다는 것. 사실 페리 2번만 타도 뽕 뽑는다.

<해가 질 때까지 구석구석 구경하기 시전 중.>

비치에 다녀오니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하버 브릿지를 걸어서 건너기로 했다. 30분을 걸어 건너간 그곳은 오페라 하우스를 포함한 시드니의 야경을 감상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야경도 끝내준다.>

고프로를 고정시켜서 타임랩스를 촬영하는 동안 사진도 찍고 지나다니는 배도 구경하고 잠시 노래도 흥얼거리며 감성에 만취해 보았다.

<무서워.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웃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 50미터 정도 걸어가니 이런 괴기스러운 놀이공원이 나타났다. 루나 파크. 입장을 시도했지만 밤에는 관람차가 있는 곳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고 내일 다시 오란다. 그래서 쿨하게 관람차까지만 구경하다 나왔다.

<흡사 가보지도 않은 뉴욕이 떠오르는 시드니의 야경>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놀이공원 앞에서 페리를 타고 버스가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배가 이동하는 동안 넘실거리는 바다 물결 위로 도시의 빛들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난 그것들을 바라다보며 긴 잠으로도 해결되지 않던 묵은 여독을 말끔히 풀어내었다. 버스에서 내려 조용한 주택가 사이를 걸으며 오늘에 관한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게 낄낄대는 그 시간이 새삼 소중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오늘의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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