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별과 겨울

잡다한 상념의 서랍

by 정새롬

갑자기 생각이 났다. 어느 별이 많아 하늘이 무거웠던 밤, 나는 더 가까이 그것들을 보기 위해 할아버지의 낡은 트럭 위로 올라갔다. 마침 그 위에는 흔해빠진 디자인의 플라스틱 의자 서너 개가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나는 어째서인지 단 하나의 의자만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포개진 그것들을 분리하기 위해 의자 틈새에 손을 넣고 힘껏 당겼다. 단숨에 슉하고 분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의자는 예상과는 달리 그대로 내 손을 뭉개버렷다.


아마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손가락이었을 것이다. 온통 불규칙하게 찢어져 피가 흥건했다. 나는 울상을 한 채 할아버지에게 갔다. 머리가 하얗고 키가 크고 등이 넓은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만큼이나 낡은 책상 서랍을 몇 번 덜걱 거리시더니 이내 푸른 가루가 든 병을 가져오셨다. 그리고 상처 위로 고르게 뿌려주신 뒤 "됐다" 하셨다. 나는 된 줄 알았다. 나중에 엄마가 뭘 뿌린 거냐고 해서 병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할아버지가 뿌려준 것은 동물용 지혈제였다. 개나 소나 돼지에게 출혈이 생겼을 때 사용하는 의약품. 사람도 동물이니 뭐 어어찌 피가 멈춘 것이겠지만 감염의 위험이 있었을 테다. 하지만 나는 그 푸른 가루를 손에 얹고 두 눈 가득 그렁이는 맑은 눈물을 담고 다시금 할아버지의 트럭 위로 올라갔다. 겨울 하늘 별들은 눈물과 함께 강을 이루어 흐르고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사치스러울 정도로 경이로웠다.


분리되지 않은 서너 개의 겹쳐진 플라스틱 의자 위에 앉아 나는 그렇게 별을 보았다. 그리고 트럭 끝자락,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도 달처럼 서서 별들을 바보았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별처럼 앉아 바보았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와 별과 겨울에 대한 가장 정직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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