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라오스 #방비엥 #카약킹
#정글파티 #2017년4월6일~7일
꽃청춘 방영 이후로 한국 젊은이들의 여행 성지가 된 방비엥. 처음 만난 방비엥은 우리의 강촌 또는 가평과 매우 흡사했다. 드래곤볼에나 나올법한 산들로 둘러 쌓인 작은 마을은 남송 강을 끼고 있어 다양한 물놀이가 가능하고 어딜 가나 느릿느릿 평화로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때문에 각국의 젊은이들이 튜빙이나 카약킹을 하기 위해 20m마다 하나씩 있는 투어 에이전시 앞에 모여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도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와 에이전시 간 보기를 시작했다. 이런 액티비티 예약은 한인 에이전시가 가장 비싸다. 그래서 현지 여행사들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가격을 체크해 보는 것이 좋다. 불볕더위 아래 발품을 좀 팔아야 하지만 싸게 예약하면 왠지 여행의 고수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선 배가 고팠기 때문에 맛있다고 소문이 날대로 난 방비엥 샌드위치와 팬케익을 샀다. 가격은 각각 1만낍(약1,400원). 팬케익은 유명하다고 해서 먹긴 했는데, 별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샌드위치는 속에 들어가는 내용물이 정말 푸짐했다. 역시 무엇이든 푸짐하게 들어간 게 맛있다. 반으로 자른 샌드위치를 한 조각씩 나눠 들고 우적우적 먹으며 투어 가격들을 비교하러 다녔다. 여기저기 다녀 본 결과 동굴 튜빙+카약킹+점심식사가 포함되어 있는 투어가 9만낍(약12,600원)정도로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외국인들이 잔뜩 몰려있는 집에서 예약을 하고 돈을 냈다. 다음 날 아침 숙소로 픽업까지 와준다고 한다. 굿굿!
아침 일찍 조식을 챙겨 먹고 픽업트럭에 올라탔다. 트럭에는 우리 포함 15명 정도가 탑승했다. 일본, 중국, 호주, 러시아까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초반에는 살짝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한 번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곧 화기애애해졌다. 러시아에서 온 남자아이(?)는 서양 사람답게 굉장히 조숙해 보였지만 23살이었고, 7개월간 수염을 자르지 않아 매우 덥수룩했다. 일본인들은 이름이 예뻤던 사쿠라상과 히로상 카이상 이렇게 셋이었다. 다들 우리와 비슷한 또래인 데다 남편이 일본어를 할 줄 알아 금세 친해졌다.
투어의 첫 번째 코스는 동굴 튜빙. 튜브에 앉아 밧줄을 잡고 물 동굴 안을 탐험하는 것인데, 차가운 계곡물이 닿자 소름이 쫙 끼칠 정도로 시원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동굴 속에서 가이드가 나누어준 헤드 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천천히 이동하는데 천장에 매달린 삐죽삐죽한 종유석들이 살짝 무섭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했다. 동굴 안은 왕복 2차선 도로처럼 되어 있어서 들어가는 사람들과 나오는 사람들이 가끔 마주치게 된다. 그때 미친 듯이 물장구를 쳐서 서로에게 물세례를 퍼붓는 장난도 정말 재미있었다. 신나게 놀다가 동굴 밖으로 나오니 점심때가 됐고, 가이드는 우리를 위해 도시락을 차려 두었다. 한 사람당 꼬치 2개와 볶음밥이 주어졌고, 물놀이 후라 어느 때보다도 맛있게 먹어치웠다.
밥을 먹고 약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중국에서 온 분들은 여자 넷이서 놀러 왔는데, 친구끼리 여행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나도 우리 아현동 여자들과 언젠가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아현동 여자들은 내가 시집가기 전까지 무려 5년간을 같이 산 3명의 동지들이다. 사실 그중 둘은 대학교 4년 내내 같이 살기도 해서 함께한 햇수를 모두 따지면 10년이 넘는다. 그치만 그 긴 세월 동안 다 같이 여행을 가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 그래서 언젠가 넷이서만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꼭.
아까 트럭에서 내린 곳까지 가려면 시골길을 조금 걸어야 하는데, 가는 동안 재미있는 장면들을 많이 목격했다. 푸른 초원 위에서 엄마 닭과 뛰어노는 정말 조그만 병아리들부터 땅과 혼연일체가 되어 세상만사 다 내려놓고 잠에 취한 멍멍이까지 소소하게 펼쳐지는 일상의 로맨스들이 참 좋다. 별것 아닌 것도 다 별것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여행의 마법. 한국에 돌아가 다시 치열한 삶이 시작되어도 이 마법이 유효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열심히 연구해봐야겠다.
두 번째 일정은 카약킹. 둘씩 짝을 지어 카약을 타고 강 상류부터 하류까지 내려가는 것인데, 물살이 그렇게 빠르지 않아 열심히 노를 저어야 했다. 그리고 그나마 물살이 빨랐던 구간에서는 남들 다 멀쩡히 가는데 우리 배만 뒤집혀 영영 떠내려 갈 뻔했다. 또 운전 미숙으로 정글 숲에 두어 번 처박히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물놀이는 지나치게 즐거웠다. 일행들 배가 지나갈 때 노로 물을 한껏 퍼올려 뿌리면 치열한 전쟁이 시작된다. 그렇게 한 20분을 갔을까 갑자기 가이드가 뭍에 배를 대라고 했다. '뭐지 벌써 끝인 건가.'라고 생각이 들 찰나 짚라인을 신청한 사람들은 산 위로 올라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래서 대기를 하란다. 처음에는 한 30분이면 끝내고 내려오겠지 싶어 음료 한 병 마시며 쉬고 있었다. 짚라인을 안타는 사람은 일행 중 우리 부부와 호주에서 오신 노부부뿐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기다리며 우리는 긴긴 대화를 시작했다.
호주 뉴캐슬에 살고 계시는 두 분은 결혼 30년 차의 베테랑 부부(?) 셨다. 호주에서 오셨다길래 삼촌이 멜버른에 사신다고 연결고리를 내밀었더니, 따님이 멜버른에 사신다고 하셨다. 오. 그러면서 삼촌이 멜버른 어디에 사시냐고 물으시길래 버윅에 사신다고 했더니, 따님도 버윅에 사신다고. 오오. 엄청난 인연에 다 같이 세상 좁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나에게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해주셨다(으쓱으쓱). 여기서 잘한다는 것은 정말 잘한다가 아니라 의사소통이 된다는 의미에 가깝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가 미드를 보고 공부했다고 하니, 정말이냐고 의아해하셨다. 그리고 '위기의 주부들'을 봤다고 하니 경악하셨다. 할아버지께서 그건 정말 똥 같은 드라마라고 자기는 보고 싶지도 않고 본 적도 없다고 하셨다. 아니 안 보셨는데 어떻게 아시는 거죠ㅋ. 사실 이 드라마 내용이 좀 파격적이긴 하다. 그래도 일상 대화들이 많이 나와서 영어 공부에는 정말 최고다. 강추.
한 시간을 기다려도 짚 라인을 타러 올라간 일행들이 돌아오지 않자, 노부부와 우리는 이런 건 사전에 말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며 다 같이 불만을 표했다. 불평도 다 같이 하니 속이 더 시원한 것 같았다. 그렇게 30분이 더 흐르자 드디어 나타난 일행과 가이드. 다시 강가로 내려가 진짜 카약킹을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 치열해진 물싸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40분 정도 노를 저었다. 장난기 많은 카이상은 뛰어내려 수영도 하고, 배를 잘 타고 가다가 친구인 히로상을 물에 빠트리기도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배에 올라타려고 하면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ㅋ. 불쌍해서 우리 배에 잠깐 매달려 있으라고 했다.
신나는 카약킹을 마치고 하류로 내려오니 그곳이 바로 마을이었다. 다른 일행들은 블루라군까지 신청해서 바로 이동한다고 했다. 우리는 내일 따로 갈 예정이어서 아쉽지만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집까지 걸어갔다. 꽃청춘에 나왔던 덕분에 방비엥의 모든 가게들은 한글 패치를 장착하고 있었다. 라오스어와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된 메뉴판과 안내판이 여기저기 가득이다. 그중 재미있던 건 어순이 뒤바뀐 수선집 간판 '꿰매다 구두과 가방'. 잘 몰라서 이렇게 쓴 것일 테지만 한편으로는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노젓기에 안 쓰던 근육을 썼더니 삭신이 쑤셨다. 아, 이제 삭신이 쑤실 나이가 되어 가는구나.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며 숙소로 돌아가 씻고 잠을 청했다. 배가 고프고 또 고파질 때까지 자다가 9시쯤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두리번 대다 들어간 피자집에서 시킨 멕시칸 피자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맨날 뭐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해서 점차 신빙성이 사라진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맛있었다. 만족의 기준이 낮은 이 비루한 혀에는 무엇이든 맛있을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나름 피자는 도미노를 쳐주던 나이니 믿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피자를 먹고 배를 두드리며 어디를 가볼까 생각하는데, 방비엥의 명소 '사쿠라 바'가 생각났다. 이곳 청춘들이 한데 모여 춤추고 난리가 나는 곳이라기에 클럽이란 곳을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으로서 구경차 들려보았다. 정말 '난리'가 나 있었다. 한 구퉁이에서는 풍선에 이상한 가스를 담아 팔고 사람들은 그걸 사 마시며 헤롱 댔다. 우어. 이게 다 뭐람. 나랑 남편은 그런 사람들을 피해 구석에서 못 추는 춤을 꾸물꾸물 추며 신나게 2시간을 놀다가, 금요일 밤에만 열린다는 정글 파티를 구경하러 갔다. 사쿠라 바 앞에 준비된 툭툭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 타고 도착한 그곳에는 '정글처럼' 꾸며진 파티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입장료도 받는다. 1인당 4만낍(약5,600원). 사쿠라바가 동양인들 천지였다면 이곳은 서양인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사실 이곳 운영자들도 다 서양인들.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DJ가 쿵쿵쿵쿵 디제잉이 한창이었고, 세상 해맑은 사람들이 노래에 맞춰 각자 신나게 춤추거나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막 불이 붙은 봉으로 현지인이 쇼를 하고 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술과 음료를 팔고 있었다. 한 30분 정도 있다 보니 볼 건 다 본거 같아서 그곳을 나와 우리처럼 돌아가려는 사람들과 함께 툭툭을 타고 시내로 왔다. 같이 툭툭을 탄 호주 여성은 '정글'파티라고 해서 갔더니 '뒷마당'파티였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 말이 딱 맞다ㅋ. 뒷마당에 야자수 가져다 놓고 전등 걸어 논 '정글' 흉내 내는 파티.
새벽 1시, 샌드위치 하나를 입에 물고 사람이 드문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갔다. 여행하며 이렇게 늦게까지 논건 또 처음이었다. 이런 게 일탈인가. 일탈도 체력이 돼야 하겠구먼. 새로운 경험에 즐겁긴 했지만, 나는 그냥 조용한 곳에 앉아 책이나 보거나 느리게 흘러가는 영화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남편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신이 난다고 하지만 나는 멍해진다. 그리고 그게 별로다. 그래도 남편과 낯선 장소에서 꾸물 꾸물 춤도 추고 그걸 보고 서로 깔깔대며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다. 혹시나 했던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댄싱머신 따위는 단 1도 없었지만 말이다.
개도 널브러져 잠든 시간. 우리는 둘로 나뉜 트윈 침대에 각각 누워, '어후 아까 그 춤 너무했어'하며 굴욕의 순간들을 복기했다. 하루하루 떠올릴 추억들이 쌓여가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리고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는 다양한 상황들이 마치 게임 속 스테이지처럼 우릴 강화시켜준다. 레벨업 직전 왕판에 가서 늘 대판 싸우는 경우도 생기지만, 이것도 엄연한 트레이닝 중 하나이다. 하지만 각 스테이지를 지나오며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적은 서로가 아닌 그 판에 나오는 '왕'이라는 것이다. 그 '왕'은 돈/ 시간/ 불편/ 다름/ 꽁함을 포함한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바로 이 '왕'이 우리의 유일한 적이고 싸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것만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앞으로 닥쳐올 몇십 년은 끄덕 없을 것이다. 끓어오르는 화 덕분에 눈이 가려지려 할 때 숨 한번 깊게 쉬고 서로에게 말해줘야겠다.'이거 왕판이다. 정신 바짝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