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라오스 #루앙프라방
#꽝시폭포 #2017년4월9~10일
구름과 어깨를 나란히 한채 5시간 동안 산길을 달려 도착한 루앙프라방. 도시는 작고 고요하고 소소했다. 대나무로 짜인 쓰레기통과 하얀 울타리 그리고 큼지막한 나무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모두가 더위를 피해 천천히 움직이는 그런 도시. 어떤 큰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을 것 같은 루앙프라방의 낮 풍경이 느리게 우리 곁을 지나갔다.
지난 며칠간 파워풀하게 놀았기 때문에 루앙프라방에서의 첫날은 휴식으로 보내고 둘째 날 그 유명하다는 '꽝시 폭포'에 갔다. 도심에서 차로 약 30분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숙소에서 왕복 차량을 예약했다. 1인당 4만낍(약5,600원). 픽업 아저씨는 다른 여행자들을 한 가득 실은 봉고를 끌고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늦게 나타나셨다. 여하튼 오셨으니 다행이다. 우리는 조수석에 올라탔고 잠시 뒤 폭포 입구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3시간을 줄 테니 놀다가 주차장으로 다시 오라고 하셨다. 시간이 생각보다 넉넉지 않은 것 같아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매표소 앞 줄줄이 이어져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표를 끊어 입장. 산길을 조금 걷다 보니 야생 곰 보호 구역이 나타났다. 덩치가 커다란 곰들이 해먹에서 편한 자세를 찾으려고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초광속으로 잠이 들었다. 아기곰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레슬링을 하는 건지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소문의 꽝시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꽝시 폭포에 오니 비로소 방비엥에서 봤던 블루라군은 사기에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푸르른 나무와 그 사이로 펼쳐진 에메랄드빛 라군, 정말 요정이 나와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풍경이었다. 게다가 이 아름다움은 한 곳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대여섯 개의 포인트들에서 즐길 수 있었다. 물줄기를 따라 쭉 올라가다 보니 폭포의 근원이 힘차게 물줄기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이제 내려가면서 라군마다 한 번씩 몸을 담그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남편 생각은 달랐다. 저 폭포의 위까지 올라가 보자! 진짜 멋진 것은 그곳에 있다는 말이 제법 그럴싸하게 들렸기 때문에 나는 흔쾌히 고난의 길에 들어서고야 말았다.
폭포 옆으로 난 산길은 처음에는 무난한 듯 보였다. 하지만 곧 급 경사에 발이 주륵주륵 미끄러지는 흙길이 이어졌다. 무서워서 아래는 내려다보지도 못하고 무작정 위로만 올라갔다. 중간에 만난 할아버지는 이 길을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너희는 운동화 신고 왔으니 힘을 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 그 말이 사실인가요. 누가 왜 어떻게 여기를 맨발로 가는 거죠. 왜죠.
남들은 아래에서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기는데, 왜 나만 때아닌 산행에 목숨을 걸고 있지 라는 생각이 밀려오는 찰나 평지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건 그냥 쉬어가는 타이밍ㅎ 우리 앞에는 더 가파른 길들이 펼쳐져 있었다. 다시 내려갈 수는 없으니 계속 올라가야지. 미끄러질까 봐 한 발 한 발 신중히 내딛다 보니 다행히도 폭포의 머리 부분이 나타났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웅장하거나 멋지지는 않았다. 조금 많이 실망했지만 남들이 보지 못한 곳에 왔다는 사실 하나에 만족하며 다시 길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흠. 다시 말해 이 길로 올라왔으면 그 고생을 안 해도 됐다는 이야기군;;
산 타느라 더울 대로 더워진 우리는 내려가자마자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남편은 폭포가 떨어지는 곳에 가서 도 닦는 아재처럼 자리를 잡았다. 나는 수심이 낮은 곳에서 개헤엄을 치며 유유자적 여유를 부렸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빙도 하고 함께 온 가족들과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가족들이 보고 싶어 졌다. 가족은 나에게 가장 큰 에너지이다. 폭포의 근원처럼 나의 근원이 되는 사람들. 그래서 좋은 곳,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늘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하며 다음에 꼭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종종 여행을 할 때 '언제 이곳에 또 오겠어'라며 무조건 다 하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다시 올 이유는 함께 오지 못한 가족들만으로도 충분하다.
시원한 폭포 놀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 한숨 푹 잔 뒤, 루앙프라방의 명물 나이트 마켓을 구경하러 나갔다. 거리는 고요했던 낮과 달리 활기가 넘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마켓들 중 가장 볼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았다. 물론 가격도 매우 매우 저렴했다. 게다가 흥정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쇼핑의 재미는 배가 되었다. 이런 곳에서 그냥 구경만 하기는 아쉬워 나도 남편 바지 한 벌과 핸드폰 담을 작은 가방 하나를 샀다. 흥정 끝에 가방은 1만낍(약1,400원), 바지는 2만낍(약2,800원)에 구매했다. 싸게 사서 좋아했는데, 남편의 바지는 나중에 엄청난 물 빠짐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ㅋ
쇼핑을 마치고 저녁으로 뭘 먹어야 하나 포장마차들을 기웃거렸다. 다들 비슷비슷한 가운데, 재료들을 고르면 샤부샤부처럼 만들어 주는 곳을 발견했다. 야채부터 면, 고명들까지 전부 원하는 것들로 고를 수 있었고, 가격도 재료 하나에 1천낍~2천낍(약140~280원)으로 굉장히 저렴했다. 아주머니께 이것저것 골라 담은 바구니를 건네니 육수를 붓고 요리를 시작하셨다.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페이스북을 켰다. 여행하기 좋은 일본의 작은 도시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자리가 없다고 합석을 하라며 할아버지 한 분을 모셔오셨다.
처음에는 현지인이신 줄 알고 가볍게 목례만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본분이셨다. 그것도 방금 보고 있던 영상 속 시즈오카라는 도시에서 오셨단다. 시즈오카는 일본분이신 우리 숙모의 고향이기도 하기 때문에 엄청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영어도 잘하시는 편이어서 밥 먹는 내내 수다를 떨었다. 세이고 할아버지는 40년 동안 일하시던 전화국에서 은퇴하신 뒤 종종 혼자 여행을 다니신다고 하셨다. 왜 혼자 다니시는지는 실례가 될까 봐 여쭙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시즈오카에 가게 되면 연락드리기로 하고, 연락처도 받았다. 시즈오카는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마루코가 사는 동네이기도 해서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곳에서 세이고 할아버지와 맛있는 밥을 먹으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을 수 있길 바라본다.
새로운 바지에, 가방에, 음식에, 인연까지 만나게 해 준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은 낮의 고요함보다 훨씬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게 바로 낮쉬밤놀의 표본인가. 이탈리아의 낮잠 타임인 시에스타처럼 동남아도 날씨 특성상 모든 나라들이 한낮에는 쉬고 밤에는 신나게 논다. 게으름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 참 부럽다. 우리나라는 한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도 일하다가 그 날이 가기 직전 못 쉰 게 한이 돼 새벽까지 2차 3차를 달린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것은 비단, 야근을 연봉으로 고이 감싸 추가 수당 지급을 외면하는 회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런 불공평을 만들어 나가는데 앞장서는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더 문제라면 문제. 어서 빨리 각계각층에서 좋은 지도자들이 나와 이런 말도 안 되는 노동 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정책들을 많이 실현해 주면 좋겠다. 그래서 모두가 저녁이 없는 삶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국민이 바라는 건 엄청난 게 아니다. 그저 상식적인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제 그럴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