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태국 #치앙마이 #지옥버스
#2017년4월12일~13일
신나는 일들이 가득했던 라오스를 뒤로하고 지상 최대의 물축제인 송크란을 즐기러 다시 태국으로 갈 시간이다. 태국과 라오스 인근 국가들은 4월에 새해가 시작되는데, 이때 축복을 빌어주는 의미에서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전통이 있다. 현재 이 전통은 태국에 모인 전 세계인들의 대규모 물총 싸움으로 진화했고, 모두의 축제가 되었다.
우리는 송크란을 치앙마이에서 즐길 예정이라 그곳까지 가는 슬리핑 버스 예약을 위해 여행사에 들렀다. 하지만 새해 전날 치앙마이 직행 국제 버스표는 이미 매진이 된 상태였다. 그래도 가긴 가야 하기에 선택한 차선책. 밤 7시에 루앙프라방에서 출발, 12시간을 달려 라오스 국경 터미널에 일단 내린다. 거기서 10분 정도 툭툭을 타고 라오스 출국장으로 간다. 출국 심사를 거치고 거기서 또 10분간 공용 버스를 타고 태국 입국장으로 간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태국 버스 터미널로 또 툭툭을 타고 10분간 간다. 그리고 거기서 6시간짜리 고속버스를 타면 꿈에 그리던 치앙마이에 도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약 20시간이 걸리는 대장정 되시겠다.
우리가 배정받은 차는 공교롭게도 참 좋은 방송 EBS. 한국에서 중고 차량을 사 와서 이렇게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그 차를 타게 될 줄은 몰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재미있는 상황에 웃어가며 탑승을 했다. 하지만 겉만 멀쩡한 이 차량은 정확히 5시간 뒤 지옥의 도가니탕으로 변신하게 된다. 모든 좌석은 2층 침대 형태로 되어 있는데, 두 명이 한층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우린 아래층을 배정받았는데 그나마 단신이기에 다리를 쭉 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바퀴 위에 위치한 자리라 천장이 터무니없이 낮았다. 그래서 12시간 동안 앉지도 못하고 통조림 속 고등어처럼 누워있어야만 했다.
자, 이 아비규환의 현장이 보이는가. 우리는 기사님 바로 뒷자리, 빛도 들지 않는 구석에 몸을 눕히고 긴 여행을 시작했다. 한 5시간을 갔을까 갑자기 속이 뒤집어지고 손발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등에 베개를 받치고 기대앉았다.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상태를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울렁거림은 당최 가라앉지 않았다. 차는 산길을 달리느라 끝없이 지그재그로 움직였고, 바퀴 위에 위치한 자리 때문에 유독 흔들림이 심했다. 그날 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봉투!'를 외쳤고, 저녁 먹은 것을 모두 토해냈다. 일을 치르니 속은 한결 편해졌다. 그래도 어지러움은 멈추지 않았고 어정쩡하게 앉은 자세로 계속 크게 호흡했다. 그러다 노곤해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혈액 순환을 위해 내 손을 계속 주무르던 남편은 내가 잠들어 호흡 소리가 약해졌을 때 혹시나 해서 맥을 짚어 보았다고 한다. 정말 걱정이 되었다고. 나는 그 순간 남편이 내 곁에 있어주어서 그리고 나만 아파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호흡을 조절하며 잘 참고 있었는데, 두 번째 재앙이 닥쳐왔다. 이번에는 소변이었다. 버스는 산길을 달리고 달리다 운전기사가 교대를 하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한 번씩 차를 세운다. 여기서 문제는 그곳에 문명이 만들어 낸 '화장실' 따윈 없다는 것이다. 선택지는 대자연의 열린 공간뿐. 처음에 나는 다른 여자들이 내리길래 따라 내렸다. 그들은 계속 걷고 걸었다. 화장실에 가는 거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도 아무것도 몰랐던 것뿐이다. 남자들이 모두 길에 서서 손쉽게 대자연과 호흡할 때, 여자들은 큰 트럭 옆에서도 고민 고민을 했다. 두 명의 서양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창피함을 무릅쓰고 도전. 하지만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 그들을 지켜만(?) 주고 함께 버스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남편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버스 기사가 그냥 출발하려고 해서 자기가 막고 있었다고 했다. 그 산길에 덜렁 버려질 뻔했다니. 소름이 돋았다. 여하튼 그렇게 해결하지 못한 마음과 몸의 짐을 부여안고 다음 정차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가온 기회에서 나도 남편의 비호 아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여러 고난을 극복해가며 다음날 오전 8시경 라오스 국경에 도착했다. 출입국 수속을 거쳐 태국으로 들어 온 뒤 시설이 엄청 좋은 그린버스를 탔다. 요금은 395밧(약 13,000원). 앉아서 가는 게 누워 가는 것보다 편하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그렇게 6시간을 더 달려 장장 20시간의 여정을 끝으로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그때를 떠올리면서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진저리가 쳐진다. 다시는 20시간이 넘는 버스 여정은 하지 않을 테다.
치앙마이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가는 데는 툭툭을 이용했다. 처음 기사님과 흥정을 하는데, 다들 너무 높은 가격을 불렀다. 이유인즉슨 송크란 축제의 시작 날이라 번화가 쪽을 지나가면 물을 흠뻑 맞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일부러 물을 맞기 위해 툭툭을 탄다는 그 축제가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 가격에는 탈 수 없었기에, 주변을 돌아다니며 기사님 물색에 나섰다. 터미널 반대쪽으로 걸어가니 툭툭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다가가니 기사님이 '툭툭?'이라고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그래서 지도에서 숙소 위치를 보여 드리고 얼마에 갈 수 있는지는 여쭤보았다. 앞선 다른 기사님들보다 훨씬 저렴한 150밧(약 4,700원)에 합의를 보고 툭툭에 올라탔다. 한 5분을 달렸을까, 주변 사람들이 슬슬 물총으로 물을 찍하고 뿌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눈을 판 사이 지나가던 차에 탄 사람이 바가지로 물을 촥하고 끼얹졌다. 나는 무방비로 물 싸대기를 맞고 빵 터져서 웃고 말았다. 남편도 예외는 없었다. 우리는 어떤 무기도 없이 그렇게 20분 동안 시원하게 물을 맞으며 숙소에 도착했다.
그렇게 만난 우리의 치앙마이 숙소. 들어가는 입구가 파랑파랑한 것이 너무 예뻤다. 방에는 따로 테라스가 딸려있어 옷을 빨아 널기 좋았고, 빵빵한 에어컨과 넓은 침대도 완벽했다. 하지만 우리의 컨디션은 아주 꽝이었다. 우선 어젯밤 속을 비운 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뭐든 먹어야 했기에 짐을 풀고 5시쯤 식당을 찾으러 나왔다. 그런데 축제 여파로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장대 같은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문 닫은 식당 앞에 서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여기저기 헤매다 숙소 근처 구멍가게에 들어가 컵라면 2개와 물을 샀다. 맛있는 밥 먹기를 고대했지만 우리는 좋아하지도 않는 똠양꿍 맛의 라면을 먹어야 했다. 그리고 먹다 남은 과자들로 배고픔을 달래다 잠을 청했다.
우리는 이 험난한 여정 끝에서 20시간 이상의 와식 슬리핑 버스는 탈 것이 못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극도의 열악함 속에서 의지할 내 편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예산과 여러 가지 조건들을 따져 본 뒤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처음이라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들은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값비싼 수업료는 앞으로 치러야 할 다양한 삶의 시험 위에서 재치와 지혜가 되어 줄 것이다. 이전보다 한 가지 경우의 수를 더 알게 되었다는 것은 딱 한 숨 더 여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지친 몸과 마음에 충분히 휴식을 주기로 한다. 채찍은 당근과 함께일 때 가장 효과적이니까.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