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태국 #치앙마이 #도이수텝
#롱넥빌리지 #썬데이마켓 #2017년4월16일
여행 속 주일 아침은 언제나처럼 예배로 시작된다. 말씀 나누기와 기도로 이루어진 작은 예배이지만 날만 지키기에 바빴던 우리의 신앙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준다. 배경이 달라졌다고 해서 우리 안의 중심과 가치들까지 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이 시간들을 소중히 지켜가고 있다.
사실 주일은 예배와 말씀으로 충만한 하루가 되어야 하는 날이다. 그래서 우리는 되도록이면 주일날 이동이나 일정을 진행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틀 전, 뭐에 이끌렸는지 덜컥 주일 아침부터 일정을 잡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도 내 머릿속에 며칠간 담겨있던 '치앙마이에서 꼭 해야 할 것들'에 대한 리스트가 강박을 만들었던 것 같다. 심지어 이 외출은 20시간 버스 생존기 이후로 가장 최악의 하루가 되고야 만다.
우선은 목적지이다. 치앙마이 여행의 핵심이라고 모두들 이야기하는 도이수텝 왓 프라탓 도이수텝 Doi Suthep사원. 주일 아침부터 절에 가다니, 이건 정말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양심과 신앙에 가책이 드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둘째는 예산이다. 늘 몇 푼 아끼려고 갖은 고생을 하던 우리였지만, 이날은 이상하게도 1,200밧(약 40,000원)이라는 큰돈을 내고 택시를 예약했다. 이 요금에는 도심에서 50분 떨어진 사원에 들렀다가 거기서 또 50분 떨어진 롱넥 마을까지 다녀오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오늘 아침 기사님을 만나고 보니, 여럿이 같이 타는 '로컬 택시'인 빨간 썽태우를 몰고 온 것이 아닌가. 이 큰 차에 우리만 덜렁 타고 사원으로 향하는데 슬슬 짜증이 샘솟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썽태우를 타면 단돈 80밧으로 도이수텝에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롱넥 마을까지 다녀오는 비용이 포함이라 하더라도 도대체 몇 배의 돈을 낸 것인가. 여행사 직원에게 아침부터 전화해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지만 자신은 분명 '로컬' 택시라고 말했다고. 이렇게 우기는 사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케이. 아이 가릿. 바이.' 뿐이었다.
여행사 직원이 어떻게 우리를 구워삶았든 선택은 스스로 한 것이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사원에 가는 길은 우중충하게 비까지 왔다. 도이수텝은 높은 언덕 위에 지어져 치앙마이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보기 위해 가는 사원인데 비구름이 자욱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짜증 게이지가 절반을 넘어서는 듯한 기분이었다. 급격히 말수가 줄어든 남편과 나는 떨떠름하게 사원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원 자체는 부분 부분 타일 모자이크 양식을 사용하고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한 번씩 치는 종소리도 은은했다. 사원 뜰 곳곳에 놓인 조각상들과 꽃나무들은 강렬한 컬러감의 사원과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거니는 우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후.
사원의 또 다른 구경 포인트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중앙 탑이다. 이곳은 맨발로 들어가야 하기에 신발을 벗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온통 금색으로 찬란한 탑 주변에는 작은 양초와 꽃을 놓고 소원을 비는 많은 불교 신자들이 있었다. 사람은 늘 자신이 믿는 종교의 대상에게 무언가를 빈다. 기독교도 돈과 건강과 행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기복주의 신앙'으로 가득 찬 지 오래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하나님은 빈다고 그런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절대로. 그분이 바라는 것은 오직 그분을 닮는 것.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 끝나면 그때 함께 천국을 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때라고 확신한다.
사원 앞 300개의 계단 좌우에는 컬러풀한 비늘을 가진 용의 몸통이 길게 이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우리는 바가지 썽태우를 타고 롱넥 빌리지까지 갈 생각에 속이 갑갑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시 애증의 썽태우에 올라타 50분을 달렸다. 롱넥 빌리지는 정말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한껏 가졌던 기대감은 우울감과 한 데 섞여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버렸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우린 여전히 말이 없었고, 1인당 500밧(약 16,000원) 정도의 어마어마한 입장료를 내고 마을로 들어섰다.
카렌족은 원래 미얀마에 살던 사람들인데 미얀마 독립 당시 정부에 자치령 설립을 요구하다가 갈등이 생겨 이곳 태국 북부지방까지 밀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농사 외 수입이 거의 없고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 여인들이 천을 짜거나 손자수로 만든 기념품들을 팔아 살아가고 있다고. 우리가 갔을 때에도 양 옆으로 길게 이어진 기념품 가게 안에서 목에 링을 착용한 여성들이 천을 짜고 있었다. 일곱 여덟 살 정도 되는 여자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그녀들이 이렇게 긴 목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야생 동물로부터 목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는 설과 두 번째 목이 길수록 아름다움의 상징이라는 설, 그리고 셋 번째 전쟁 중 여자들을 잡아가지 못하게 하려고 목을 길게 늘여 흉측한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설이다.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은 두 번째 설인데, 세 번째가 맞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모든 카렌족이 이렇게 링을 착용하는 것은 아니고 '뻐다웅족'만 이런 풍습이 있으며, 현재는 건강상 거의 하지 않는 추세라고 한다.
나는 그저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문화가 궁금해서 온 것뿐인데,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상점에 앉아 물건을 파는 그녀들을 그저 '구경'하는 모습이라니. 사람을 구경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마을을 찾고, 기념품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야 이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니 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마을에서 목이 가장 긴 할머님의 가게에 들러 나무로 만든 장식품 하나를 샀다. 그리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을은 그녀들과 기념품 빼고는 정말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곳이었지만 사정을 알고 나니 입장료가 비싸다는 생각은 싹 사라졌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류의 '구경' 대신 다른 방법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카렌 마을 둘러보기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가기 위해 썽태우 기사님께 다가갔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한인마트에 5분간만 들러주실 수 있는지를 정중히 물어보았다. 하지만 기사님은 여행사에서 그렇게 해주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 안된다고 단칼에 잘라 말했다. 그래서 나는 4시간밖에 안 되는 이 일정에 이미 많은 돈을 지불했고, 가는 길이니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어쨌든 난 들은 바가 없으니 가고 싶으면 돈을 더 내라'였다. 그의 'whatever'이라는 단어에 참던 짜증이 70%까지 올라감을 느꼈다. 나는 알겠다고 그냥 숙소로 가달라고 한 뒤 다시 차에 올라탔다. 남편은 기사님의 태도에 화가 난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마음을 추스르자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는데, 이 아재 도심 근처에서 한 여학생을 태운다. 목적지에 갔다가 숙소에 돌아가는 시간 동안은 우리만 이용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손님을 태운 것이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인 게이지가 위험 수위를 넘는 순간이었다.
나는 숙소에 내리자마자 보조석 창가로 다가가 왜 다른 손님을 태웠냐고 물어보았다. 기사님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시내로 오는 차가 많이 없으니 저런 학생들은 태워줘야 하며 이런 태국의 문화를 당신이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지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어설픈 영어로 '그 학생의 탑승이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내 부탁은 이해하지도 않았으면서 계약을 어기며 손님을 태우는 것은 이해해야 한다는 태도에 화가 났고 또 우리가 이미 돈을 지불한 구간에서 그 학생에게 추가로 돈을 받은 것이 나쁘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기사님은 나에게 10밧짜리 동전을 던지면서 자기가 돈 받은 게 그렇게 싫으면 가져가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본 남편도 폭발해서 무서운 얼굴로 기사님에게 그만하시라고 큰 소리를 냈다. 남편까지 화를 내니 갑자기 집 나갔던 이성이 급 돌아와 이 상황이 얼마나 의미 없는 짓인지를 일깨워주었다. 불만 있으면 협회에 전화하라는 기사님께 알겠다고 꼭 협회와 대사관에 연락을 하겠으니 이만 가시라고 했다.
우리는 기가 다 빠져 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뻗어 버렸다. 분명 우리도 잘한 게 없었다. 하지만 늘 불만이 있어도, 바가지를 써도, 빈정거림을 당해도 이방인이기에 참아야 했던 날들이 억울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상황이 과열되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으니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연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지불하게 되는 '멍청비용'에 연연해하지 않는 의연함도 길러야 한다. 이런저런 상황에 상처받은 마음은 서로에게 기대 치유하면 된다. 우리가 '우리'이기에 고마운 이유. 여행은 부부에게 참 좋은 배움이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안 좋았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멀게 느껴졌다. 역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잠이 보약이다.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저녁도 먹고 구경도 할 겸 타페 게이트 앞 썬데이 마켓을 구경하러 나갔다. 길을 따라 10km 정도 펼쳐진 시장은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정말 많았다. 우리는 85밧(약 2,800원)을 내고 커다란 치킨 한 조각과 팟타이 한 접시, 쏨땀 한 접시를 시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하나에 10밧(330원)짜리 초밥도 사 먹었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은 특이한 게 많았다. 필요한 것들로만 엄선해서 약간의 쇼핑을 즐기다 보니 낮에 있었던 감정들이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그러니 웬만하면 다툼에 에너지를 쓰기보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다른 일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태평가의 한 대목처럼!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