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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요상한 나라 인도 입성기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인도 #뉴델리 #아비규환

#2017년5월13일~17일


네팔은 요즘 지방 선거가 한창이다. 도심부터 히말라야 깊은 산속까지 홍보 포스터가 붙었다. 처음 치러지는 이번 지방 선거는 입후보자가 무려 4만 명이나 된단다. 게다가 정당마다 선거 운동이 과열되어 선거날이 다가올수록 테러나 무력 충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었다. 이 두려움은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는데, 바로 그 선거날이 우리가 네팔을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카트만두로 버스 이동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선거 당일 버스, 택시, 오토바이 등의 운행을 금지한다는 공지가 떨어진 것을 보고 안전하게 선거 전날 버스표를 예약했다. 하지만 버스가 출발하는 날 아침이 되자 터미널 근처에서 작은 폭탄 테러가 있었다며 모든 택시 기사들이 탑승 거부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가까스로 찾아 주신 기사님와 택시비를 따블로 협상하고 나서야 터미널로 갈 수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줄줄이 버스>

아슬아슬하게 버스는 탔지만 카트만두로 가도 길은 그리 녹록지는 않았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꼼짝 않고 서버린 버스. 영문도 모른 채 더운 차 안에서 2시간을 기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앞에 대형 트럭이 테러를 당했는지 새까맣게 타버리는 사고가 있었던 것. 이날은 유독 이렇게 뒤집히고 폭파된 차량들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선거 탓인 것 같았다. 이런 복잡스러운 와중에도 우린 안전하게 카트만두 공항 근처 숙소에 도착을 했고 다음날 걸어서 비행기를 타러 갔다.

<아담한 카트만두 공항>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는 네팔을 떠나 인도 델리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 이런저런 수속을 밟고 나오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인도에 오기 전 상상 초월 사기꾼들에 대한 무용담을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에 일부러 공항으로 픽업을 와주는 숙소에 예약을 해두었다. 얼마나 사기가 극심하면 예약한 숙소에서 픽업 기사와 우리만 알 수 있는 암호를 보내주었다. 출국장에 나가니 우리 이름이 쓰여있는 종이를 든 기사가 보였다. 나는 007 작전처럼 은근히 다가가 '패스워드'라고 했고, 아저씨는 패스워드가 적힌 종이를 살며시 건넸다. 그렇게 웃지 못할 접선을 마치고 에어컨도 없는 다마스 같은 차량에 몸을 실었다.

<약은 약사에게 운전은 기사님께>

밖은 해가 다 져가는 오후임에도 45도를 육박하고 있었다. 누군가 이 날씨를 여름날 실외기 앞에 서있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던데 딱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워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다짐을 하며 창밖을 내다보는데 엄청난 풍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4차선 도로 위를 점령한 자동차와 릭샤와 소와 오토바이들이 차선을 무려 7개로 재창조하고 있었던 것. 이런 것이 창조 경제인가. 중앙선도 이곳 인도에서는 '혹시나 해서 그어 본 선'일뿐이다. 역주행은 기본, 릭샤끼리는 부딪혀도 그냥 끼이익 긁고 지나간다. 그래도 노 프라브럼.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관대할 수 없다ㅎㅎ

<50도가 넘는 정오에는 그나마 한가해지는 거리>

하이라이트는 그다음이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숙소로 가는 내내 우리에게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지나가는 유명한 관광지에 대해서도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에게 '운전할 줄 아니?'라고 물었다. 엉겁결에 할 수 있다고 대답하자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갓길도 아닌 고속도로 한 귀퉁이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아주 쿨하게 '그럼 운전해봐'라며 운전석에서 내리려고 했다.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면 진짜 운전대를 넘길 기세였다.ㅋㅋ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심각하기도 하고. 그 순간 우리는 이곳이 인도라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옷을 팔려면 2,3층에는 걸어 줘야 제맛이지>

우리는 총 4일을 뉴델리에서 보냈다. 숙소가 있던 여행자 거리인 빠하르간지는 정말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릭샤와 오토바이와 차량들은 1초가 멀다 하고 귀가 찢어지도록 클락션을 울려댄다. 그리고 거리 곧곧에는 남성들을 위한 오픈형 공중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는데, 물 내리는 시설이 없어 싼 곳에 싸고 또 싸며 퇴적층처럼 오물을 쌓아간다. 바로 그 화장실이 우리 숙소 가는 골목 초입에 있었다. 시야는 언제나 뽀얀 먼지로 가득했고,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우릴 동물원 원숭이처럼 쳐다본다. 처음에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버틸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인도에 한 번 와보면 그 매력에 오고 또 오게 된다니 일단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로 한다.

<나는 레드포트를 찍었지만 주인공은 인도 아재>

날씨가 너무 더워 하루에 이곳저곳을 보려 했던 계획은 모두 무산이 되었다. 그저 하루에 한 가지 활동만 잘 마쳐도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줘야 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정된 우리의 첫 관광지는 '레드포트'다. 레드포트는 무굴 제국의 다섯 번째 황제 샤 자한이 건설한 왕궁이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을 건설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레드포트 성은 붉은빛을 띠는 사암으로 만들어져 마치 사막 위에 떠있는 붉은 해와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게 다인 그런 곳이다.

<페르시아에게 약탈 당하기 전에는 더 화려했다던 성>

입장료는 현지인의 10배인 500루피. 여권을 맡기고 250루피 정도를 지불하면 한글 오디오 가이드도 빌릴 수 있었다. 성 안으로 들어가니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있다. 입장료가 싸니 심심하면 나들이 겸 해서 자주 오는 것 같아 보였다. 반면 외국인은 우리뿐이었다. 날이 너무 더워서 그런지 인도에서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러다 보니 레드포트에 있는 모든 인도인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같이 셀카 찍자고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나는 우릴 그렇게 대하는 그들이 더 신기했다. 서로가 서로를 신기해하다가 레드포트 구경이 끝났다. 사실 오디오 가이드 설명도 엉성했고 볼 것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결론은 '레드포트는 외관이 제일 멋지다'이다.

<멋진 악사르담 사원/ 출처: 악사르담 홈페이지>

사실 델리에 가면 레드 포트가 아니라 '악사르담'이라는 세계 최대 힌두교 사원 단지를 구경해야 한다. 여행책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곳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여기가 델리에서 가장 볼만한 곳 같다. 들어갈 때 지갑 빼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사진을 못 찍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만약 가방이나 휴대폰을 가져가면 그걸 맡기는데 한 2시간은 줄을 서야 한다. 구경이 끝나고 물건을 찾을 때도 사람이 하도 많아서 2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아무것도 안 가져가는 게 속 편하다.

<악사르담 사원의 멀티 플랙스/출처:악사르담 홈페이지>

이곳은 힌두교 신자들의 정신적 지주인 '스와미나라얀'이라는 사람을 신으로 모시는 사원이다. 때문에 사원 안에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관람물들의 내용은 모두 스와미나라얀의 생애와 관련된 것들이다. 디테일한 움직임이 예술인 로봇 마네킹으로 꾸며진 연극형 전시관과 초대형 스크린이 구비된 멀티 플랙스, 그리고 에버랜드의 '지구마을'같이 배를 타고 인도의 문화에 대해 구경하는 보트 라이드를 모두 포함한 티켓 가격이 250루피. 여기에 그렇게 멋지다고 소문난 분수쇼까지 포함이 되어 있다. 만약 다른 관람을 빼고 분수쇼만 보고 싶다면 따로 티켓을 구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온 김에 다 해보자며 통합 티켓을 샀다.

<몸놀림이 예술인 로봇들/출처:악사르담 홈페이지>

분수쇼 시간과 애매하게 겹칠 것 같아서 셋 중에 두 개만 체험을 해봤는데 연극형 전시관이 제일 볼만 했다. 스와미나라얀의 남달랐던 어릴 적 일화를 시작으로 삶의 주요 장면들을 움직임이 세밀한 로봇 마네킹을 동원해 꾸며 놓았다. 관람객들이 방에 입장하면 로봇이 움직이며 연극처럼 정해진 내용이 플레이되고 내용이 끝나면 관객이 일어나 다음 방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10개가 넘는 방을 볼 수 있다. 보트 라이드는 말 그대로 '자랑거리 총집합'을 보여 주기 위한 곳으로 인도에 대한 자국민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상상초월 분수쇼!/출처:악사르담 홈페이지>

마지막, 악사르담 사원의 하이라이트 분수쇼! 분수쇼는 저녁 7시40분쯤 완벽하게 해가지진 뒤 시작 되었다. 계절마다 시작 시간은 조금씩 다르니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왔기 때문에 분수쇼가 끝난 뒤 수많은 인파와 동시에 퇴장을 하게 되면 오늘 내로 집에 못들어갈 것 같아 조금만 본 다음 중간에 나오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분수쇼가 시작하자 엄청난 스케일과 화려함에 끝까지 볼 수 밖에 없었다. 분수에 레이저를 접목한 것도 멋졌지만 악사르담 사원의 대형 건물벽을 활용하여 레이저 그래픽을 선보인게 대단했다. 워낙 호응이 좋은 인도인들인지라 환호와 박수 그리고 웃음이 가득한 흥겨운 시간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핵맛있는 탄두리 치킨과 탈리>

처음 델리에 입성했을 때 며칠간은 신나게 인도 음식을 탐했다. 도착 첫날 저녁으로 먹은 탄두리 치킨은 정말 너무 맛있어서 다음날 저녁에 또 갔다. 어떤 날은 여행 책자에 소개된 맛집에 찾아가 제대로 된 카레도 맛보고 인도식 정식인 탈리도 먹었다. 대체적으로 입맛에 잘 맞는 것 같아 다행인 것 같다. 인도에서는 식사를 마치면 입가심으로 박하향이 나는 씹을 거리를 준다. 어떤 곳은 씨앗 같은 것과 같이 주기도 하는데 보통 맛은 다 똑같다. 달달한 치약 맛. 이 디저트가 담긴 그릇에 같이 영수증을 넣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조금 있는 맛이었는데 나중에는 안 주면 서운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중독적인 치약맛 나는 후식>

식당을 나서서 조금만 걸으면 라씨 가게가 나타난다. 라씨는 전에 카트만두에서도 먹었던 것인데 네팔 사람들처럼 인도 사람들도 이 맛난 요거트를 즐겨 마신다. 보통 플레인 라씨를 많이 마시지만 제철 과일이 들어간 것들이 더 맛있다. 나는 50루피(약 900원)짜리 망고 라씨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하늘에서 폭죽이 펑펑 터지는 듯한 맛이 난다. 비록 제조 과정이 청결해 보이지는 않지만 맛 하나는 끝내주는 라씨. 지금도 또 먹고 싶어 진다.

<라씨는 맛있고 싸고 배부르고 행복까지 줌>

인도 음식에 조금 지쳤다 싶을 때는 숙소 바로 옆 골목에 위치한 인도 여행자들의 성지 '인도 방랑기'에 찾아간다. 인방에는 다양한 한식들이 있는데 우리는 더위를 날려줄 냉면과 김치찌개를 시켜 먹었다. 시원한 짜이도 한잔. 짜이는 흔히 한국의 카페 메뉴판에서 만날 수 있는 '차이 티 라테'의 그 '차이'와 같은 것이다. 밀크티인데, 인도 특유의 향신료가 더해져 풍미가 예술이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못 마시기 때문에 밀크티를 자주 마셔온 사람으로서 이건 1일 1잔 각이다. 안 그래도 인도 사람들은 늘 아침을 짜이 한잔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아무리 더워도 짜이는 늘 뜨겁게 마신다. 나는 아직 그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으니 아이스로ㅎ

<기력 보충 얼음 동동 냉면 한 그릇>

덥지만 그래도 이곳저곳 다니며 먹고 구경하고 알차게 4일을 보냈다. 다음은 인도에서 제일 유명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향한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기 때문에 혼돈의 극치인 뉴델리역에서 미리미리 예매를 시도했다. 인도의 주요 도시에 있는 주요 역에는 외국인 전용 창구가 마련되어 있어 그나마 예매에 혼잡함을 덜 수 있다. 뉴델리역의 외국인 전용 창구는 2층에 위치해 있고 시원하게 에어컨도 나온다. 들어가서 번호표를 뽑고 정해진 양식에 맞춰 목적지와 타려는 기차의 번호 및 좌석 등급을 적어 넣은 뒤 창구에 가면 알아서 착착 진행해주신다. 이렇게 미리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표가 없어 값이 두세 배는 더 비싼 '딱깔'이라는 공식 암표를 사야 한다고. 이 암표는 정부에서 기차 요금을 올리면 욕먹을 것 같으니까 미리 좌석의 일부를 빼놨다가 나중에 웃돈을 얹어서 출발 하루 전 공식적으로 판매하는 요상한 제도이다. 조삼모사 같지만 뭐 인도니까 다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초심자의 아이스 짜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하루에 백만 개씩 생기는 인도. 이 모든 일들이 하나둘씩 이해가 가기 시작하면 여행의 고수가 되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직까지 큰 사기당한 것 없이 잘 다니고 있는데, 앞으로 남은 26일간의 여정도 부디 다행이길! 정신 줄 단디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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