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인도 #우다이푸르 #비수기인도여행
#라씨게스트하우스 #힐링도시
#2017년5월24일~25일
우리가 우다이푸르에 가기로 한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한식이 맛있기로 소문난 '리틀 프린스'에 가는 것! 지난 며칠간 배탈로 고생한 몸은 정말 간절하게 한식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매콤 달콤 떡볶이와 칼칼한 김치찌개. 거기다 찰기 있는 하얀 쌀밥. 그냥 신라면 하나에 찬밥만 말아 먹어도 온몸의 모든 질병이 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자이푸르에서 버스로 또 8시간이나 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한식 먹을 생각에 마냥 행복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달려 저녁 7시쯤 우다이푸르에 도착한 우리는 미리 알아봐 두었던 라씨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예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이 없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하나가 남아 있었다. 제일 큰 방이어서 가격은 1,200루피(21,000원). 직원에게 조금 할인해 줄 수 있냐고 물으니 사장님한테 물어봐야 한다고 어디에 전화를 걸어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한 10분 뒤 나타난 젊은이 한 명. 나이가 많아봐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될 것 같아 보이는 라씨 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은 '라몬'이라는 이름의 엄청난 훈남이었다. 우리에게 방을 내주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온 그는 1시간 전쯤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마에 반창고도 붙이고 손등에 여기저기 상처들이 많았다.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중간 갈비뼈가 아픈지 배를 붙잡고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아파 보이길래 괜찮냐고 물었더니 병원에 다녀와서 이제 괜찮다고 이 와중에 친절하기까지 하다. 영어도 잘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총 5개 국어를 한다고... 어찌 되었든 훈남 사장님과의 흥정을 통해 하루 1,050루피(18,500원)로 2일을 묵은 뒤 더 저렴한 방으로 옮겨 900루피(16,000원)에 3일을 더 묵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짐을 풀고 나니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어 어마어마한 허기가 몰려왔다.
가까운 식당을 추천받기 위해 리셉션으로 내려갔더니 직원 '로카'가 옥상에 식당이 있는데 파스타 정도는 지금 만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토마토 치즈 파스타를 주문하고 맥주도 한병 시켰다. 인도에 들어온 이후로 남편은 강제 금주 중이다. 이유는 파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우다이푸르는 도착한 첫날밤부터 시원한 지역산 맥주인 '킹피셔'를 내놓았다. 남편은 오매불망 기다리던 맥주 한잔 시원하게 들이켠 뒤 아직 한식을 먹지 않았는데도 벌써 힐링이 되는 것 같다며 행복해했다. 그동안 나는 난간에 기대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어스름한 주황색 가로등불 아래로 어느 집 옥상에서 잔치가 한창이었다. 화려한 전통 의상으로 멋을 낸 여인들은 아름다웠고 하늘에는 별이 반짝였다. 아마도 그 순간이었나 보다. 덥고 더럽고 복잡한 인도가 슬슬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우리 방은 아주아주 매력이 넘쳤다. 아침에 일어나니 네 개의 커다란 창문으로 빛이 한가득 들어온다. 곳곳에 그려진 정교한 '세밀화'는 방 분위기를 인도인도하게 만들어주었고, 2인용 침대 하나에 4인용은 되어 보이는 침대 하나가 추가로 더해져 어디든 드러눕기 알맞게 설계되었다. 거기다 베개&쿠션이 한 10개 정도 곳곳에 배치되어 와식 생활에 최적화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좋은 것은 조식을 준다는 사실이다. 전날 훈남 사장 '라몬'이 아침 식사로 비빔밥이 된다고 했을 때 나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부스스한 잠옷 차림으로 루프탑에 올라가 비빔밥을 달라고 하니 그들은 감동스럽게도 내 앞에 눈부신 비빔밥을 내려놓았다. 비록 나물 대신 야채 몇 가지 볶아 넣은 것뿐이지만, 고추장이 내 혀 끝에 닿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이었다. 밥도 소여물처럼 많이 줘서 먹다 먹다 결국 남기고 말았다. 그래서였는지 '리틀 프린스' 한식에 대한 나의 기대감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
거하게 아침을 먹고 리셉션으로 내려가니 훈남 사장 라몬이 앉아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틀 프린스'가 문을 열었는지 물어보았다. 내 생각 속 '리틀 프린스'는 당연히 문을 열 것이기에 그저 확인차 물어본 것뿐인데, 그의 입에서는 믿을 수 없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니 안 열었어'
안 열었어.. 안 열었어.. 안 열었어.. 실제로 그는 단 한 번 말했겠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안 열였다'는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럴 리 없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왜 안 열었니라고 되물었고 그는 나의 마지막 희망에 필사기를 날려버린다.
'지금 비수기라서 5월부터 7월까지 안 열어. 아 그리고 내가 리틀 프린스 사장이야'
하하.. 하하하. 거기서도 사장님이셨구나 라몬. 나는 순간 삶의 목표를 잃은 듯한 괴상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단지 한식을 못 먹게 된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래, 이대로 멈출 수 없어! 우리는 방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열정적인 검색에 매달렸다. 30분 정도를 찾아 헤맨 결과 '리틀 프린스'보다 맛이 좋다는 '하쉬 빌라즈'라는 집을 찾아냈다. 다시 한번 사기가 진작되어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3시쯤 숙소를 나섰다.
라씨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좁은 골목을 벗어나면 그것보다는 조금 넓은 또 다른 골목들이 펼쳐진다. 델리나 아그라처럼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 지나가는 툭툭 기사들도 귀찮게 따라붙지 않는다. 덥긴 하지만 호수를 끼고 있어 그런지 불어오는 바람이 꽤나 시원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40도ㅎ 여기서 말하는 시원함은 숨을 쉴만하다는 것일 뿐 결코 한국에서 느꼈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이 죽을듯한 더위에도 슬슬 익숙해져 간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벽에 그려진 세밀화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우다이푸르의 핵심인 '피콜라 호수'가 나타났다. 다리를 이용해 이 호수를 건너가면 이것저것 볼거리랑 먹거리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재미난 것들을 제쳐두고 한걸음에 '하쉬 빌라즈'로 향했다.
'허쉬 빌라즈' 주인아저씨가 루프탑으로 올라가려는 우리를 막아서는 순간 어디선가 이 장면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아저씨가 뭐라고 말할지도 알 것 같은 이 용해진 느낌은 뭐지.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는 소름 돋게도 '비수기라서 5월부터 7월까지는 안 열어'라고 말하셨다. '인도, 비수기에 여행하면 이렇게 된다'라는 책이라도 내야 하나. 진짜 만에 하나 천에 하나 5월부터 7월 사이에 인도 여행하려는 분이 있다면 3단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말리고 싶다. 누군가 제 글을 보고 계시다면 인도는 제발 겨울에 오세요. 제발요.
아 어쩌지. 점심을 걸렀기에 한식이 들어갈 자리가 충분했던 뱃속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러려고 우다이푸르에 왔나 자괴감이 들려고 하는 순간, 남편이 재빠르게 구글 지도에서 근처 현지식 맛집을 찾아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친 영혼을 이끌고 들어간 차콜이라 불리는 이 식당은 숯으로 이것저것 구워 내는 곳이었다. 인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돼지고기 꼬치구이도 있었다. 비수기에 수요도 없는 돼지고기를 과연 신선한 것으로 가져다 놨을까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주문을 했다. 주문이 들어가자마자 요리사 아저씨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숯을 골라 오래도록 정성껏 꼬치를 구우셨다.
차콜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루프탑 레스토랑이라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경치 구경을 할 수 있다. 이곳 우다이푸르의 식당들은 이렇게 대부분이 루프탑이다. 위치와 높이에 따라 뷰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어딜 가나 평균 이상이라고. 그래서인지 즉흥적으로 들어온 이곳도 탁 트인 시야와 잔잔히 흐르는 호수가 아주 잘 보였다. 멋진 풍경에 넋을 놓은 채 40분 정도가 지나니 장인의 손길이 스친 꼬치구이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세상에나. 걱정과는 정 반대로 고기가 너무 연하고 맛있다. 함께 나온 특별한 소스도 집 나갔던 입맛의 컴백홈을 부추기며 완벽한 조화를 자랑한다. 이렇게 어떤 블로그에서도 추천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 나만의 맛집은 여행 중 얻게 되는 소중한 수확 중 하나이다. 게다가 모두가 문을 닫은 비수기 속에서 피어난 꽃 같은 맛집이니, 아마도 내 팔순 잔치 때도 이곳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은 필연을 느낀다.
오랜만에 정말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나니 기분까지 좋아졌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이 우다이푸르 곳곳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 이상 한식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차콜의 돼지고기 꼬치 요리 덕에 가벼워진 마음으로 식당을 나와 마을 탐색을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 아주 작은 이발소가 보여서 신기한 마음에 뚫어져라 쳐다보며 지나가는데 이발사 아저씨가 손짓을 하며 들어오라고 하셨다. 나는 남편에게 '깎을래?'라고 물었고 남편도 호기심이 일었는지 냉큼 그러겠다고 했다. 남편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앞사람의 이발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5분 뒤 앞 손님이 가고 남편의 차례가 돌아왔다. 이발사 아저씨는 나에게 자신의 폰을 건네더니 한 장 찍어달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이분한테도 한국인 이발해주는 게 흔치 않은 일인가 보다.
사진을 찍고 나니 아저씨는 엄청난 가위질과 손놀림으로 이발을 시작하셨다. 거울 앞에는 그가 사용하는 도구들이 가득했는데,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손바닥 빗에서부터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겠는 핑크빛 브러쉬까지 아주 다채로웠다. 머리를 다 자른 뒤 아저씨는 두피 마사지까지 적극 권하셨고, 남편은 못 이기는 척 알겠다고 했다. 마사지의 시작은 분무기로 얼굴 전체에 물을 흠뻑 뿌리고 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아 주는 것 부터였다. 그리고는 인도 아재의 강렬한 스킨 냄새가 풍기는 오일을 첨가하여 머리 구석구석을 시원하게 만져주셨다. 아저씨의 손길에 행사장 풍선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진지하고 근엄한 아저씨의 표정과 시원한 건지 괴롭힘 당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남편의 표정이 오버랩 되며 정말 흥미진진했다.
서비스가 끝나고 낸 돈은 단돈 250루피(4,400원). 깔끔해진 남편에게서는 낯선 인도 아재의 냄새가 났다. 이발사 아저씨도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다정하게 인도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과 즐거웠던 한때를 사진으로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게를 나섰다. 어물어물 해가 넘어가느라 세상이 노랗게 변하고 있었다. 지는 해 아래에서 우리는 이발소 이야기로 허파에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차도록 웃고 또 웃었다. 팔순까지 이야기할 추억이 금세 또 하나 늘었다.
게스트하우스 골목으로 들어가니 중간쯤에 위치한 집에서 결혼식이 한창이었다. 여자들의 들뜬 얼굴은 색색의 전통 의상과 참 잘 어울렸다. 남자들은 북을 치며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는데 우리가 지나가지 못하고 있자 열세네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북치는 아저씨의 흥을 과감히 끊더니 길을 터주었다. 고놈 패기 보소. 죄스러운 마음에 그곳을 후다닥 지나 예식을 구경하고 계신 동네 할머니께 결혼식이냐고 확인차 물었다. 할머니는 맞다고 하시며 환하게 웃어주셨다.
인도가 자꾸 좋아진다.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내 돈을 노리는 수많은 무리들이 도사리는 곳이라는 생각들이 차츰 벗겨지며, 그들의 진짜 모습이 천천히 드러난다. 분명 엊그제까지만 해도 인도에 다시는 안 온다고 장담했는데, 어느 추운 겨울 이곳에 다시 한번 와야겠다는 꿈을 품는다. 혼잡한 도시들을 지나 평화로움이 깃든 우다이푸르에 도착한 지 이틀. 나는 또 다른 인도를 만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