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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인도식 생활법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인도 #우다이푸르 #인도식생활법

#2017년5월26일


<인도 북서쪽에 위치한 우다이푸르>

비수기 인도 여행은 참 힘들다.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더워주시니까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낮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은 개와 영국인들 뿐이라는 말이 있을까. 처음에는 이 말을 허투루 듣고 자주 밖에 나가 돌아다녔다. 하지만 정오의 햇볕을 온몸으로 저항하며 맞이한다는 것은 전투에 가깝다는 사실을 오래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도 쿨하게 인도식 생활법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인도만의 향신료가 첨가된 핵 맛있는 마살라 짜이>

아침 7시부터 9시까지는 게스트하우스의 조식 시간이다. 첫째 날은 비빔밥을 주더니 둘째 날부터는 또 안된단다. 미끼였니. 여하튼 되는 건 오믈렛뿐이어서 주는 대로 먹기로 했다. 거기다 인도인이라면 아침마다 빼놓지 않고 마신다는 '짜이' 한잔! 짜이는 인도식 밀크티인데,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10배는 더 맛있는 것 같다. 아침에도 기온이 35도가 넘는 야외 식당에 앉아 뜨거운 짜이를 마시는 일. 아침 8시부터 땀을 백 바가지 흘려야 하지만 인도식으로 즐기는 이 여유가 참 좋다.

<인도 사람들은 베개랑 쿠션을 참 좋아한다. 베개 부자.>

배가 든든해지면 슬슬 몸을 움직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로 이동한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방구석으로! 짧은 여행이라면 시간이 아까워 억지로 나갔겠지만 긴긴 여행이니 마음 놓고 빈둥댈 수 있는 이런 점이 또 좋다. 사실 인도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역시 낮에는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지혜는 또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흡수하여 번개같이 실천에 옮기는 우리.

<저렇게 앉았는데도 편하다는 사실>

오늘은 지난 이틀간 묵었던 비싼 방에서 조금 저렴한 방으로 이동을 하는 날이었는데, 맙소사 더 크고 더 궁궐 같은 방을 내준다. 시원한 에어컨과 지루함을 달래줄 TV는 기본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최상의 서비스인 '냉장고'까지 완비된 엄청난 공간이 하루 단돈 900루피(약 16,000원)인 셈인 것이다. 심지어 방 앞에 작은 인조 정원까지 있다. 나중에 라몬에게 들은 바로는 이방이 제일 비싼 방인데 비수기라 예약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장기로 묵는 우리에게 저렴하게 주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거침없이 5일을 더 묵겠다고 했다.

<등에서도 멋이라는 것이 폭발하는 릭샤 청년>

시원한 방에서 빈둥대다가 오후가 조금 지난 시간 어슬렁어슬렁 골목으로 나선다. 원래 보통은 3시 이후에 움직이는데 오늘은 조금 일찍 나와 큰맘 먹고 릭샤를 타고 '셀레브레이션 몰'이라는 쇼핑몰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는 소가 열다섯 번 핥은 것 같은 멋진 머리스타일을 가진 젊은 청년이 운전하는 릭샤를 타고 우다이푸르의 시내를 달렸다. 30분 뒤 쇼핑몰 앞에 도착해 내리려는데 청년이 폰번호를 알려주며 이따가 집에 돌아갈 때도 자기 릭샤를 이용해 달라고 한다. 알겠다고 번호를 저장하고 시원한 쇼핑몰로 서둘러 들어갔다.

<세상 화려해서 깜짝 놀랐던 셀레브레이션 몰>

세상에나. 인도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현대적인 모습의 셀레브레이션 몰. 패스트푸드점과 다양한 옷가게, 영화관과 오락실 그리고 심지어 실내 눈썰매장까지 갖추고 있다. 우리는 맥도널드에 들어가 간단히 점심을 먹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오락실에 들어갔다. 인도의 오락실은 특이하게도 돈이 충전되어 있는 카드를 사야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웃긴 건 300루피(5,300원)를 충전하면 250루피(4,400원) 어치를 놀 수 있고, 500루피(8,800원)를 충전하면 600루피(10,500원) 어치를 놀 수 있다. 이게 바로 인도식 계산법이다. 이왕 할 거면 많이 하시오ㅎ

<인도식 계산법. 하려면 많이 하고 말려면 말아라.>

우리는 300루피(5,300원)짜리 카드 한 장을 사서 농구도 하고 오토바이도 탔다. 근데 참 부담스럽다. 코딱지만 한 오락실에 5명 정도의 직원이 있는데 그중 둘이 우리에게 딱 붙어서 모든 게임을 안내해주고 지켜본다. 고맙지만 부담스러워서 모든 게임이 똥망으로 돌아갔다. 한 가지 더 재미난 점은 게임이 끝나면 점수에 따라 작은 티켓 같은 게 기계에서 쭉 뽑아져 나온다. 그 티켓을 가지고 카운터에 가면 개수에 따라 선물을 주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티켓 30개를 가져가 어린이 스티커 한 장을 받았다.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스티커 얻어서 행복해진 서른 한살>

시원한 쇼핑몰에서 그렇게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아까 그 릭샤 청년에게 문자를 날렸다. 하지만 그는 20분이 넘도록 답이 없었다. 우리는 그냥 나가서 다른 릭샤를 잡고 가격 흥정을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뽀얀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릭샤 한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아까 그 청년이었다. 청년은 상기된 얼굴로 우리와 흥정 중인 릭샤 아저씨에게 자신의 고객이니 데려가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까 약속한 바가 있어 청년의 릭샤에 올라탔는데, 자신의 손님을 빼앗아 갔다며 아저씨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청년은 아저씨와 1분간 팽팽하게 언쟁을 벌인 뒤 쿨하게 엑셀을 당겨 자리를 떴다. 아저씨는 떠나가는 청년에게 힌디어로 마지막 한마디를 날렸다.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감이 딱 이거였다. '뒤통수 조심해라'

<모두가 비수기라 할 때 닭도리탕이라고 외쳐주신 가네샤 사장님께 감사>

집으로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를 한 뒤 에어컨 밑에서 뒹굴뒹굴 낮잠에 빠졌다가 저녁 6시쯤 저녁을 먹으러 또 마실을 나선다. 모두가 문 닫고 한식은 안 판다고 내걸 때 자신의 루프탑에서는 닭도리탕을 판다며 당당하게 자기 PR을 하시던 '가네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동네를 지나다니다 사장님을 만난 건 운명이었다. 6시쯤 식당에 가니 우릴 알아보고는 닭도리탕은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두 시간도 기다립죠. 암요.

<원숭이한테 구경 당하며 닭도리탕 먹기.>

닭도리탕을 기다리며 노을이 내려앉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한창 감상에 젖어있는데 어디선가 하나둘씩 원숭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덩치가 나만한 원숭이 한 마리는 마치 사람처럼 노을을 감상하는 루프탑 물탱크 위에 앉아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원숭이와 사이좋게 멋진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주문한 닭도리탕이 차려졌다. 맛은 닭도리탕보다는 감자탕에 가까웠지만 허해진 몸에 고추장 국물이 들어가니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고봉으로 쌓아준 밥을 국물에 쓱싹쓱싹 비벼 뚝딱 해치우고 나니 어느덧 어둠이 찾아왔다.

<야경이 끝내주는 우다이푸르>

후식은 루프탑 꼭대기에서 보는 아름다운 우다이푸르의 야경. 하루 종일 조용히 잠들어 있던 성과 마을에 나지막한 불빛들이 분주히 밤나들이를 준비한다. 그들의 분주함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어 가트를 찾아갔다. 가트는 '터' 정도의 의미를 가진 말인데 강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는 곳을 말한다. 아름다운 밤 가트에는 우리처럼 여행을 온 현지인들이 가득이었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사진도 찍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는 모습이 정겨웠다. 은근슬쩍 한국의 친구와 가족들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좋은 거래였다. 그런데 맛이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판에 가지런히 놓인 망고를 발견했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망고가 인도의 국과란다. 그리고 지금이 딱 망고 철이라 엄청 싸고 맛있다는 사실! 평소 같았으면 깎아 먹을 도구가 없어서 포기했을 텐데 희한하게도 숙소에 과도가 준비되어 있어서 냉큼 6개를 구입했다. 신이 나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망고를 깎아 먹었는데 잘못 샀는지 별로 맛이 없었다. 맛이 없어도 2개나 먹어 치우는 아이러니함은 뭘까. 배탈도 다 낫고 사기 치려는 사람도 없고 호객꾼들도 잦아드니 뭐든 맛있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덕에 하루빨리 인도를 뜨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어느덧 인도식 생활법에 익숙해지고 있는 우리. 모든 여행자들이 인도를 힘들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이라 말했던 이유를 이제 조금씩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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