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인도 #우다이푸르 #시티팰리스
#2017년5월30일~31일
우다이푸르 라씨 골목에 흘러든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우리가 나타나면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자연스레 인사를 해준다. 그것도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어디 가요?'라고. 이렇게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무리 중 유독 귀여운 존재들이 있었으니, 바로 '고마워와 친구들'이다. 네 명의 어린 소녀들로 이루어진 이 무리는 매일 오후 4시쯤 동네 어귀에 세워진 트럭에 올라가 논다. 그때 우리가 지나가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안녕~'을 외치고 쪼르르 달려와 'My name is?'라고 이상한 질문을 던진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름이 뭐냐고 묻고 싶었던 것. 그래서 내 이름을 말해주고 '니 이름은 뭐니?'라고 되물었을 때 그녀는 '고마워'라고 했다. 사실 '거마오'였는지 '고마오'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고마워'와 발음이 매우 유사해서 그냥 그렇게 외우기로 했다.
어제는 정말 순수한 게으름으로 방 안에서 하루를 홀랑 보냈다. 그로 인해 생성된 약간의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오늘은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그래 봐야 오후 2시지만 말이다. 그동안 지나다니며 다음에 한 번 가보자고 말만 했던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수박 주스와 커피 그리고 팬케이크를 주문해 간단히 점심을 먹고 글 쓰기에 돌입했다. 그렇게 2시간 정도 카페에서 몸을 식힌 뒤 뜨거운 태양 아래로 다시 길을 떠났다.
우다이푸르에는 '시티 팰리스'라는 하얀 성이 한채 있다. 우리는 매일 밤 이 아름다운 성에 주황빛 등불이 가득 해지는 장면을 지켜봤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그곳에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전 도시들에서 이런 역사 유적은 보통 비싸고 볼 것 없는 곳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딱히 할 것이 없어서, 큰 맘먹고 300루피(약 5,300원)라는 거금을 투자해 성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매표소에 준 공책만큼 커다란 입장권을 들고 별 기대 없이 성으로 들어서는데, 오 생각보다 웅장하다. 멋진 제복의 군인 아저씨들이 지키고 있는 입구를 지나니, 오랜 세월에도 고고한 매력을 잃지 않은 하얀 성벽이 나타났다. 대리석과 화강함으로 지어진 이곳은 인도의 강렬한 햇볕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중문을 들어서면 성 가장 아래층에 작은 상점들이 쭉 들어서 있다. 인도의 궁전들은 이렇게 성 입구나 내부에 왕족과 귀족 전용 쇼핑몰들을 갖추고 있다. 델리에서 방문했던 붉은 성도 외부에서 성 안으로 진입하는 길이 모두 쇼핑몰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자리에 앉아 원하는 물건을 가져오라고 하면 즉시 대령했겠지만 그러면 달콤한 '쇼핑의 맛'을 못 볼 테니 가까운 곳에 전용 공간을 마련해 두었던 것. 이렇게 궁전 안에 마련된 상점에는 당대 가장 비싸고 유행하던 사치품들이 모였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 판매소가 되었지만 말이다.
우다이푸르의 시티 팰리스는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지어졌으며 중세 유럽과 중국의 기술이 녹아든 독특한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겉에서 바라본 성은 유럽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가니 외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공간이 펼쳐졌다.
벽면은 주로 모자이크 형식의 타일 세공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림 자체가 이국적이고 예쁘기도 했지만, 핑크와 하늘색 그리고 녹색을 적절히 사용한 색감의 매치가 완전 매력적이었다. 성 안의 길들은 보통 좁았는데, 그 길을 따라 가면 신기하게도 중앙의 넓은 정원 같은 공간으로 연결이 되곤 했다. 아름다운 미로 속을 헤매는 몽롱한 기분이었다.
열심히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는데 신기한 차림새의 현지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인도 여자들은 노출이 제한되어 있어 긴바지에 전통 의상인 사리를 두르고 다니는데, 그녀들은 길이도 짧은 원피스를 입은 것이다. 아마도 이곳보다 분위기가 자유롭다는 남쪽 지방에서 왔을 것이다. 거기서는 핫팬츠도 입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인도인데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다니. 신기하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오래된 창문으로 가득한 방이 나타났다. 우리는 잠깐 쉬어갈 생각에 창틀에 걸터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으로 아름다운 피촐라 호수가 햇볕에 반짝이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과거의 공간에 가만히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시간마저 거꾸로 흐르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의 주인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눈을 감고 그때의 소란스러움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장소에 대한 설명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상은 풍부해질 수 있으니까.
가장 높은 층에는 정원과 작은 분수 그리고 온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커다란 창이 나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도시가 노란빛이라고 생각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흰색에 가깝다. 그동안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보아오던 풍경과는 또 사뭇 다르다. 푸른 하늘과 하얀 건물은 도시가 하늘 위에 지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더위 때문인가 점점 시간과 공간이 뱅글뱅글 도는 기분이다.
시티 팰리스에는 우리 말고도 현지 여행객들이 많았는데, 여자들은 다들 자신들이 가진 것 중 가장 예쁜 '사리'를 골라 입고 온 것 같았다. '사리'는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아름답다. 화려한 컬러감은 물론이고 반짝이는 장신구들이 햇볕에 반짝이면 깊고 큰 눈의 여인들이 마치 여왕처럼 보인다. 나는 가족과 함께 방문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될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흔쾌히 좋다고 했고, 나는 지나치며 늘 감탄만 했던 인도 미녀와 사진을 찍게 되어 신이 났다. 비록 내가 오징어가 된다고 해도 말이다.
꼭대기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중간중간 다양한 박물관들이 배치되어 있어 모든 공간을 꼼꼼히 살피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중 은 박물관이 유독 흥미로웠는데, 그곳에는 현대의 메이크업 박스 같은 꾸미기 풀세트 상자가 전시되어있었다. 모두 은으로 제작 되었으며, 빗부터 거울까지 굉장히 다양한 구성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외에도 은으로 만든 아기 침대는 호화의 끝판왕을 보여 주는 듯했다. 인도 사람들의 은 사랑이 금 사랑 못지않았나 보다.
시티 팰리스의 또 한 가지 매력을 꼽자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들 수 있다. 다양한 컬러의 유리가 햇볕과 만나 흰 대리석 바닥에 알록달록 무늬를 남기는 것을 보면 마음이 나른해진다. 무엇보다 유럽의 건축양식을 가져와 인도만의 독특한 분위기로 바꾸어 놓았다는 그 점이 멋진 것 같다. 그들은 무역을 통해 흘러든 다양한 문화가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하다.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더욱 풍성해지는 법. 나의 좌우명인 호치민의 명언 '내 안의 변치 않는 한 가지로 만 가지 변화에 대처한다'가 인도의 문화에도 해당하는 것 같다.
정신없이 과거의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니 배가 고파왔다.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기승전밥ㅎ 인간의 본능은 이렇게 무섭다. 오늘은 시티 팰리스 앞에 위치한 피자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피자 전문점이라고 해서 혹시나 고기가 들어간 메뉴가 있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채식주의 피자집이라고. 슬프다. 그래도 시티 팰리스 덕에 오랜만에 입장료 뽕 뽑은 느낌이라 뿌듯하다. 현지인에게도 외국인과 동일한 요금을 받는 공명정대함까지 매우 마음에 든다. 과거에도 성문 근처에 있는 8개의 아치 밑에서 왕이 가난한 사람들 몸무게를 금이나 은으로 달아 그 무게만큼 금과 은을 나누어 주었다던데, 옛날부터 공명정대함이 태평양 급이었던 것 같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파도 파도 매력만 나오는 우다이푸르. 인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