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8.고마워, 우다이푸르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인도 #우다이푸르 #마지막

#안녕 #2017년6월1일~3일

<인도 서북부에 위치한 우다이푸르>

인도 우다이푸르에는 숏다리 닥스훈트와 귀여운 소녀가 살고 있는 닭도리탕 맛집이 있다. 처음에는 모두 닭도리탕을 먹으러 이곳에 온다. 하지만 정작 와서는 조그마한 인도 소녀가 한국어로 부르는 '올챙이 송'에 본래의 방문 목적을 잊고 만다. 꼬리를 격하게 흔들며 바닥에 드러눕는 닥스훈트를 쓰다 듬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이 집 따님에게 헤나를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예삿일. 어떤 이들은 헤나 후 자연스레 주인장 아저씨께 세밀화까지 배우고 만다는 이 마성의 닭도리탕 맛집이 바로 '소니네'이다.

<소니네 마스코드 귀요미 인도 꼬맹이와 세상 다리 짧은 강아지>

이곳은 유명한 맛집답게 닭도리탕 제조 과정이 아주 흥미롭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아저씨는 주방으로 가는 대신 가게 앞으로 나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그리고 쿨하게 닭을 사러 정육점으로 출발. 이것이 바로 닭도리탕 조리의 시작인 셈이다. 그렇게 사온 신선한 닭을 감자 및 양념과 함께 압력솥에 푹 끓인다. 밥도 압력솥에 하기 때문에 다른 집 보다 찰기가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완료되기 위해서는 2시간 정도의 여유가 필요한데 그 시간 동안 손님들은 홀린 듯 헤나도 받고 세밀화도 배우게 된다.

<헤나 여신에게 다소곳이 팔을 맡김>

나도 예외 없이 닭도리탕을 기다리며 헤나를 받았다. 가격은 200루피(약 3,600원). 손재주가 좋은 소니 씨의 따님은 아주 어릴 때부터 독학으로 헤나를 익혔다고 한다. 독학으로 이 정도인데 배웠으면 난리 났을 듯. 나는 덴버 풍선껌 판박이를 팔에 붙이던 어린 시절 이후 몸에 무언가를 그리는 것이 처음이었는데 그래서였는지 굉장히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헤나는 인중에 땀이 맺히기도 전에 끝이 났다. 손끝에부터 팔 접히는 부분까지 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5분 정도. 전문가의 손길은 역시 다르다.

<'이 구역의 센언니, 나야 나' 컨셉의 헤나>

헤나가 끝나고 5분 정도 지나니 닭도리탕이 완성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군침을 흘리며 2층에 마련된 식당으로 올라가 앉으니, 성스러운 압력솥 두 개가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였다. 아저씨는 접시에 손수 닭도리탕과 밥을 덜어 주시고는 '우리 집 염소탕도 맛있어'라고 마지막 어필을 잊지 않으신다.

<와와 압력솥이다. 와와~>

칼칼한 국물이 예술인 닭도리탕은 아주 그냥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고기는 부드러웠고 감자는 속까지 양념이 고루 배 입에 착착 붙었다.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오랜만에 든든히 먹고 있는 것 같다며 행복해했다. 나도 남편 못지않게 열심히 먹방 중이었는데, 좀 전에 받은 헤나가 마르면서 부스러기가 자꾸 밥 위로 떨어졌다. 신경이 쓰였지만 솥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먹는 근성과 투지.

<공연에 나오는 인형을 따로 파는데, 살짝 무서움>

낮 동안 먹부림으로 몸의 기를 보충했으니, 밤 동안은 전통 공연으로 마음의 기를 보충하기로 한다. 공연은 매일 저녁 8시쯤 박물관 '바고르 키 하벨리 Bagore Ki Haveli'에서 열린다. 입장료는 1인당 150루피(약 2,600원)이고, 사진을 찍으려면 카메라 한 대당 150루피를 더 지불해야 한다. 값을 치르고 공연장에 들어가니 먼저 온 지현 언니와 성범 오빠가 우릴 반겨 주었다. 공연의 퀄리티가 좋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그동안 보이지 않던 외국인 여행자들도 많이 모여 있었다. 다들 더워서 우리처럼 숨어 지냈나 보다.

<머리에 불을 올리든 뭘하든 예쁜 인도 여자들>

뒤편에 앉은 악사 분들이 노래와 연주로 공연의 시작을 알리면 훈남 훈녀 MC들이 나와 힌디어와 영어로 짧은 설명을 곁들여 준다. 그리고 본격 공연 시작.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줄지어 나와 뱅글뱅글 돌며 예쁜 치맛자락을 팔랑인다. 머리 위에 불을 얹고 말이다. 흥겨운 리듬이 점점 클라이막스로 향해가면 그녀들은 얼굴 가득 개구진 미소를 머금고 다 같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을 한다. 그리고 그 흥은 고스란히 관객에게로 옮겨와 박수와 환호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얘들아 돌아 돌아. 꺄르르르르>

이후 한 시간 동안 춤, 연극, 인형극 등 다양한 공연들이 펼쳐졌다. 공연자들은 매 순간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듯 보였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되어 감동이 되었다. 관객 참여형으로 이루어진 꼭두각시 공연 때는 귀여운 남자아이가 인형과 찰떡 호흡을 보여주어 모두가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기대 이상으로 완벽했던 공연이 끝나고 어둠이 내린 거리를 걸으며 남편이 감탄을 내뱉었다. 아마 이번 공연 관람으로 남편은 인도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여행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나 보다. 그 점에 있어서는 나도 이하 동문이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우다이푸르의 전통 공연들.귯!>

우다이푸르를 떠나기 전날 우리는 마지막으로 야미 요가에 한 번 더 들렀다. 가서 샌드위치와 주스를 마시며 체스를 뒀는데 주인장이 우리가 내일 떠난다는 것을 알고는 아이스크림에 즐거운 여 되라고 메시지를 적어 선물로 주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그는 '모든 손님을 신처럼 대하는 게 나의 신념이야'라고 말했다. 어딜 가나 도처에 인생 철학자들이 존재하는 인도. 나는 그의 대답이 정말 인도 답다는 생각을 하고, 선의에 대한 답례로 문 앞에 달린 종을 힘차게 울려 주었다. 종을 울린다는 것은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야미 요가는 사랑입니다♥>

이제 펀자비 가게에 갈 차례다. 이틀 전 치수를 재고 옷감을 골라 맞춤 펀자비 하나를 주문 해 두었기 때문이다. 옷이 잘 만들어졌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가게에 들어서니 아저씨가 왜 이리 늦게 왔냐고 하신다. 사실 어제 찾으러 왔어야 했지만 닭도리탕 먹고 공연 보느라ㅎ 무튼 처음 산 펀자비도 약간 큰 듯해 수정을 맡겼었는데, 아저씨는 그것까지 쿨하게 내 사이즈에 맞추어 새로 만들어 두셨다. 사실 첫 번째 옷은 한 번 입고 나갔던 것인데... 아저씨는 이미 그 옷을 잘 다려 밖에 걸어 두셨다. 양심조금 찔리긴 했지만 이곳은 인도니까 나도 인도식으로 조용히 감사 인사를 남기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목 늘어난 난닝구 티 입어도 멋진 라몬>

원하는 시간에 체아웃 할 수 있게 게스트하우스 측에서 배려를 해주셔서 점심쯤 짐을 챙겨 방을 섰다. 그동안 뿌리가 생기도록 누웠던 침대를 등지고 영원히 그곳을 나오려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우리는 리셉션으로 가 남은 숙박비를 마저 계산하고 라몬과 기념을 찍은 뒤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전날 버스표를 예약 해 두었던 나라얀 아저씨의 여행사로 향했다.

<정들었던 우다이푸르의 호수 앞에서 마지막 인증샷!>

짐을 여행사에 잠시 맡긴 뒤 지현 언니와 성범 오빠를 만나 마지막 점심을 함께 했다. 밥을 먹으면서 그동안 그렇게 만났음에도 같이 찍은 사진 한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직원에게 부탁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언니 오빠는 다시 위쪽 지방으로 올라가고 우리는 아래 지방 바닷가에 위치한 '디우'라는 동네로 향한다. 이렇게 헤어지지만 언젠가 또 만날 날을 어렴풋이 기대한다.

<넷이 찍은 유일한 사진. 소중 소중.>

그렇게 끝없는 빈둥거림과 힐링으로 가득했던 열흘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지치고 힘들었던 인도 여행에 급속 충전을 선사해준 우다이푸르. 이곳이 아니었다면 인도의 매력을 알지 못한 채 다음 나라로 무리하게 이동했을지도 모른다. 우릴 보듬고 달래 인도에 머물게 해줘서 고마워, 우다이푸르.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안녕!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7.우다이푸르 시간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