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인도 #디우 #바닷가마을
#2017년6월3일~5일
열흘간의 우다이푸르 요양 생활을 마치고 다음 도시 디우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디우는 인도 중서부 구자라트주의 작은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의 자랑은 랍스터와 왕새우! 우다이푸르에서 무려 16시간을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지만, 그래도 랍스터님을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영접할 수 있다는 말에 무작정 길을 떠난 것이다. 점심 나절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저녁 8시쯤 아메다바드라는 기착 도시에 도착했다. 하지만 버스가 우리를 내려 준 곳은 터미널이 아닌 그냥 길가. 버스표를 예매할 때 나라얀 아저씨가 미리 이 사실을 귀띔해 주지 않으셨다면 적잖이 당황을 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툭툭 기사와 치열한 가격 협상을 마친 뒤 환승 터미널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환승 터미널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버스와 오토바이와 릭샤가 한데 얽혀서 경적을 있는 대로 누르는 것은 기본이고 역주행은 애교다. 하이라이트는 이상한 곳에 릭샤를 세우고 다 왔다고 내리라고 하는 것이다. 지도를 보여주고 이곳이 아니라고 얘기하니 돈을 더 달란다. 남편과 나는 인상을 팍 쓰고 무조건 약속한 금액인 300루피(약 5,300원)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지인이 미리 귀띔해준 금액인 100루피(약 1700원)보다 이미 3배나 많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결국 5분간의 실랑이 끝에 추가 금액 없이 원래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매몰차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끔 이렇게 '여행자는 호구가 아님'을 명확히 해주어야 한다.
아메다바드는 교통 요충지로 인도 전역에서 모여든 버스의 출발지이자 기착지이며 종착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도 어마무시하게 많고 굉장히 복잡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물어물어 버스표를 예약해 둔 '파울로 트래블'에 찾아가 짐을 맡긴 뒤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는 시원한 에어컨 아래 앉아 카레와 난을 먹으며 버스 출발 전까지 최대한 땀을 식히고 식당 화장실에서 세수도 하면 되겠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버스는 30분이나 늦게 왔고, 기껏 세수한 얼굴을 비롯한 온몸이 다시 땀범벅이 된 채 탑승해야 했다.
밤 11시부터 새벽 7시까지 8시간을 달려 겨우겨우 도착한 디우. 디우 터미널은 굉장히 작았고, 조용했다. 릭샤꾼들도 낯선 이방인을 쳐다만 보고 있을 뿐 타라고 붙잡지 않았다.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편하게 터미널을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남편도 너무 좋다며 디우가 벌써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하지만 현지인들 휴가철인 줄도 모르고 숙소 예약을 안 한 것이 복병이었다. 저렴한 방은 이미 다 찼고, 비싼 방은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 냈다. 결국 3시간을 헤맨 끝에 네 밤을 머물면 조금 할인을 해주겠다는 호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짐을 풀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디우 구경을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덥다. 남쪽으로 더 내려와서 그런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덥다. 게다가 바다 옆이라 습기도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동네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선명한 채도의 컬러를 뜸뿍 뒤집어쓴 아이스크림집 대문과 벽화 광고는 더위 속에서도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고, 잔잔한 바다에 정박한 배들은 상상 속 해적선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이 작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책이랑 블로그에서 봤을 때는 어시장에서 해산물을 사 오면 근처 식당에서 수고비를 받고 요리를 해준다고 했었는데, 아무리 물어봐도 해준다는 곳이 없다. 그래서 일단 아무 식당이나 가서 새우 요리를 먹기로 했다.
인도는 도시마다 술에 대한 분위기가 굉장히 다르다. 어떤 도시는 술병을 들고만 다녀도 경범죄로 처벌이 되는가 반면 디우 같은 도시는 술이 면세여서 아침나절부터 취한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날이 워낙 덥다 보니 우리도 식사 때마다 맥주를 시키는 것이 버릇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어딜 가나 점심은 12시 반 이후 저녁은 7시 이후에만 주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 가거나 이렇게 미리 맥주와 간단한 스낵을 먹으며 기다려야 한다.
도착 첫날 저녁, 우리는 재료가 없어서 안된다는 랍스터는 제쳐두고 두 종류의 새우요리를 시켜 게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간장 양념에 고추와 튀긴 새우를 볶은 첫 번째 요리는 짭짤하니 입에 착착 붙었다. 두 번째로 시킨 순수 새우튀김은 맛은 있었지만 크기가 너무 잘았다. 마치 칵테일 새우를 튀긴 것처럼 말이다. 아 이게 아닌데. 나의 왕새우를 향한 갈망은 그렇게 해소되지 못한 채 쌓여만 갔다.
다음날 점심에는 새우 커리를 주문해 보았다. 해산물이 풍부한 바닷가 마을에만 발달된 메뉴로 통통한 새우에 제대로 된 인도 커리가 더해져 아주 만족스러웠다. 피시 앤 칩스인 줄 알고 주문한 '핑거 피시 앤 칩스'는 빙어를 튀겨 놓은 것 같은 물고기 튀김과 감자튀김이 함께 나오는 그런 메뉴였다. 감자튀김은 언제나처럼 맛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고기 튀김은 바다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비린내 킹.
이렇게 살짝 비릿비릿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상콤 발랄한 것이 땡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3대인가 4대째 대대손손 한 자리에서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장인의 가게를 찾아갔다. 우리는 매일 저녁 이곳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사실 그다지 맛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 팔고 있는 라임주스가 대박 맛있다. 아이스크림 맛집으로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라임주스 맛집으로는 강강강추하고 싶다.
이틀간 계속 새우를 탐하고 있고 맛도 좋았지만 내가 생각한 비주얼은 이게 아니었다. 정말 손바닥보다 더 큰 대왕 새우를 버터에 자글자글 구워 먹는, 바로 그런 비주얼! 어딜 가면 그런 새우를 만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트립 어드바이저를 켰고 주변 식당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캣츠 아이 레스토랑 Cat's eye restaurant'을 찾아가기로 했다.
캣츠 아이 레스토랑은 마을에서 릭샤로 30분 정도 떨어진 나고아 해변가에 위치해 있었다. 밥 먹기 전 잠시 바다 구경이나 할 목적으로 해안선을 따라 걸었는데, 해수욕을 즐기던 인도인들이 신기하다는 듯 우릴 쳐다본다. 급 동물원 원숭이가 되자 새삼 또 부담스럽다. 결국 바다 산책은 10분 만에 끝이 났고,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진 해변을 가로질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레스토랑은 에어컨이 없었다. 치명적이었지만 왕새우를 위해 참기로 했다. 메뉴판에는 랍스터도 있었는데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 수산시장 가서 사다가 조리를 해줄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은 즉슨 내가 사 오면 해줄 수도 있다는 것?!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새우와 랍스터를 사 오면 요리를 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한다. 오. 드디어 가이드북에서 이야기하던 그런 식당을 발견한 것이다. 내일은 무조건 수산시장행 예약이다.
일단은 당장 사 올 수 없으니 왕새우 한 접시와 피시 앤 칩스를 주문했다. 피시 앤 칩스의 피시는 새끼 상어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식감이 정말 부드럽고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은 지가 얼마 만인가를 복기하며 전투적으로 흡입을 하는데, 드디어 왕새우가 등장했다.
먹음직스러운 붉은빛의 왕새우가 오동통한 속살에 윤기 좔좔 버터를 바른 채 접시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남편과 나는 테이블에 놓인 새우를 바라보며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마리를 집어 올려 앞접시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정해진 운명처럼 커다란 새우 한 마리가 내 입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그동안 매일 닭과의 전쟁을 치러왔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맛있다. 일단 이게 닭 맛이나 커리 맛이 아니어서 좋았다. 살면서 늘 식사 기도를 해왔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를 넘어 감동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동네로 돌아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거리에서는 결혼식 행진이 한창이었다. 인도의 혼인 예식은 화려하게 치장한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온 동네를 돌며 결혼 사실을 알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보통 3일 동안 예식이 이루어진다는데, 결혼식이 화려해야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평생 수입의 20%를 쓸 정도로 성대하게 치른다고 한다.
한 무리의 사람이 지나가고 다시 고요가 찾아온 골목을 따라 숙소로 돌아간다. 덥고 귀찮지만 오늘도 우리는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했다. 그 덕에 왕새우를 먹고, 우연히 결혼식을 보았다. 별 것 아닌 일들이지만 그런 것들이 모여 여행이 된다. 아마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 나의 여행을 되짚어 보면 잡동사니가 주렁주렁 달린 낡은 리어카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잡다구리한 소소함이 몸서리쳐지게 좋다. 주렁주렁 달린 추억들을 하나하나 들춰보며 키득거릴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