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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소소한 하루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인도 #디우 #소소함 #일상

#2017년6월6일


<인도 중서부에 위치한 디우>

디우의 꽃, 디우의 심장인 수산 시장은 '바낙바라 Vanakbara'라는 항구 마을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동네에서 가려면 릭샤로 40분 정도를 가야 한다. 날도 더운데 그 먼데까지 가려니 꾀가 나기 시작했다. 랍스터냐 귀찮음이냐를 두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버스 터미널 건너편에도 작은 어시장이 선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는 9시쯤 숙소에서 나와 10분 정도를 걸어 어시장에 도착했다.

<어시장 앞 과일장수 아주머니>

어시장 근처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떠들썩해야 할 어시장은 고요했고, 입구 앞에는 과일 파는 아주머니 한 분뿐이었다. 벌써 닫았나 싶어 조심스레 들어가 보니 파장 분위기였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새우나 랍스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 늦게 온 탓이겠거니 하고 내일 다시 큰 어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시장을 나오자마자 얼어 죽을 만큼 빵빵한 에어컨이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지겹지만 별다른 게 없기에 또 카레와 난을 시키고 망고 주스도 마셨다.

<정녕 랍스터와 새우는 없는 것인가>

더위를 피해 집에서 한나절을 보낸 뒤 저녁쯤 다시 거리로 나와 시장 구경을 했다. 작은 시장이었지만 과일에 옷이며 장난감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흥정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바다를 끼고 걸을 수 있는 멋진 길을 따라 '디우 포트 Diu fort'까지 가기로 했다.

<없는게 없는 디우 장터>

가는 길 곳곳에는 소소한 볼거리들이 가득했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늠름한 나무배는 언제 봐도 정겹다. 고깃배들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바다가 잘 보이는 길을 걸을 수 있다. 가슴이 탁 트일만큼 멋진 바다와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지어진 하얀 감옥은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와 그런지 꽤나 멋진 호흡을 보여준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다가도 본래 건물이 감옥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조금 스산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타는듯한 태양 아래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르는 풍경들>

전 세계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코카콜라의 광고판도 한 번 눈여겨보아주고, 우다다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사탕수수 음료 기계에도 관심을 가져 본다. 나는 가끔 거리에 놓인 사물들이 이유 없이 좋을 때가 있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색감이 쨍하면서도 낡은 존재들을 보면 그리움이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마치 까맣게 잊고 지냈던 내 안의 어떤 모습을 본 듯 말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마는가 보다.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은 나에게 행복을 준다>

여기저기 한눈팔며 걷다 보니 어느새 디우 포트가 눈 앞에 나타났다. 이곳은 디우 성을 지키기 위해 함께 건축된 요새로 포르투갈 식민지 지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먼저 성을 구경하기 위해 입구 쪽으로 다가갔는데 관리인 아저씨께서 오늘은 입장이 끝났으니 내일 오라고 하셨다. 벌써 오후 여섯 시구나. 내일 다시 올 생각은 없었으나 알겠다고 인사를 하고 바다 쪽 요새로 향했다.

<디우 성 금일 영업 종료. 내일 봐요 안녕~>

요새로 연결되는 아치형 입구를 지나는데 누군가 인도의 상징인 은색 도시락 통을 성벽 틈새에 끼워 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처음에는 불 밝히는 등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역시나 아무리 보아도 도시락통이었다. 알고 보니 어떤 가족이 성에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곳에 잠시 두고 간 것. 나중에 성에서 나와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간식을 드시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언듯보면 보석함 같은 느낌적인 느낌의 도시락통>

해가 천천히 바닷속으로 녹아드는 동안 세상은 온통 따듯한 빛으로 물들어갔다. 빛은 오래된 요새의 낡은 담벼락까지도 너그러워 보이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 담벼락에 기대앉아 평온한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잠시 멈추어 있었다. 말이 없어도 편안한 사람과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미소가 지어졌다. 깊고 동그란 미소가 그렇게 해처럼 우리 둘의 얼굴 속으로 녹아들었다.

<세기의 발명품 셀카봉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함께>

오랜만에 챙겨간 셀카봉으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셀카봉은 참 유용하다. 하지만 잘 안 챙기게 되는 물건 중 하나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린 함께 찍은 사진이 많지 않다. 그래도 서로를 찍어준 사진들은 많이 있으니 아쉬우면 나중에 합성이라도 해야겠다.

<아저씨 무슨 생각 하시나요?>

요새 담벼락에 앉아 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아저씨를 지나 저녁을 먹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날씨는 더웠지만 여러모로 기분은 상쾌했다. 가는 길에 자전거 타는 동네 꼬마들도 만났다. 낯선 생김새의 우리가 신기했는지 쓱하고 다가와 손을 흔든다. 아이들이 손을 흔들면 이상하게도 마음에 살랑바람이 분다. 아이들의 인사는 봄보다는 여름에 어울리는 바람이다. 더위가 한창인 이곳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런 바람 말이다.

<자전거를 탄 귀여운 꼬마 형제>

첫날 다녀온 식당에 들러 칠리 새우를 한 번 더 사 먹고,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든 저녁의 문턱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그래도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어릴 적 소풍을 다녀온 날은 꼭 일기를 길게 쓰곤 했다. 바로 그날처럼 다시 한번 긴 일기를 쓰고 싶어 지는 날이다.

<디우의 하늘은 매력적이고 다채롭다>

방 안 가득 에어컨 바람을 가두고, 시원하게 샤워를 한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 입고 침대에 누워 다운 받아 둔 미드를 보다 보면 어느새 잠이 솔솔 온다. 솔솔 오는 잠 사이로 내일은 일찍 일어나 어시장에 가서 꼭 랍스터를 사야겠다 다짐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잠꼬대 반 맨 정신 반으로 주문을 외우며 잠들어야겠다. 아주머니 랍스터 세 마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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