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 남녀의 세계여행 기록
#인도 #디우 #바낙바라어시장
#인도사진관 #2017년6월7일~8일
일찍 일어나야지 다짐을 하고 잠이 들었건만 눈을 떠보니 또 9시다. 습관의 무서움. 주워듣기로는 새벽 6시까지는 가야 좋은 랍스터를 구할 수 있다던데. 너무 늦었나 싶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남편과 서둘러 준비하고 릭샤를 잡아 탔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바낙바라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아침 일찍 들어 선 야채, 과일 시장으로 활기찼다. 복잡한 노점들 사이로 장바구니를 든 여인들이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그녀들의 바구니에 담긴 싱싱한 식재료들이 오늘 점심상에 올라가겠지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야채 시장을 지나 비린내가 이끄는 곳으로 향했다. 길에 나와 계신 어르신들이 가라고 하는 방향으로 열심히 걷다 보니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어시장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미 있던 물고기들도 거의 다 팔린 것 같아 보였다. 그러니 당연히 랍스터는 커녕 랍스터 수염 한 가닥도 남지 않은 상태. 새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역시 오늘도 늦었구나. 남편과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터덜 터덜 밖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동네나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 마을, 재미난 것 투성이다. 알록달록한 경운기를 타고 아빠 따라 장터에 온 세 명의 공주님들이 우리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뜻밖의 환영 인사는 낯선 장소에 대한 경계심을 한방에 녹여 버렸고, 우리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마을 탐방을 시작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사람들이 삼삼 오오 모여 짜이를 사 먹는 작은 구멍가게가 보였다. 짜이 중독자로서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주인장 아저씨께 가격을 물으니 한 잔에 6루피(약 105원)란다. 맙소사. 엄청 싸다. 주문이 들어가자 가게 옆에 서있던 작은 소년이 뜨거운 병에 든 짜이를 작은 유리잔에 따라 나에게 건넨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 뜨거우 짜이를 홀짝홀짝 마셨다. 처음에는 이렇게 덥고 습한데 왜 뜨거운 음료를 마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제는 완전히 알 것 같다. 마시고 나면 정말 뭔가 개운하다. 아재들이 열탕에 들어가 '어~~ 시원하다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듯.
뜨거운 짜이로 속을 확 풀고 항구에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을 구경했다. 우리가 묵고 있는 동네의 작은 통통배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크고 멋졌다. 뱃사람들은 그 멋진 배에 열심히 기름칠을 하고 있었고, 내가 사진을 찍어도 될지 물으니 포즈까지 완벽하게 취해주셨다. 비록 랍스터는 못 만났지만 그보다 더 맛있는 삶의 장면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가 다 끝나갈 무렵 한 집 앞을 지나는데 귀여운 남자아이가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똘똘해 보이는 아이에게 무엇을 만드냐고 물었더니 아이의 엄마가 배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아마도 뱃사람인 아빠를 보고 꿈을 키우고 있는 것이겠지.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말에 수줍게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보던 아이. 이 소년이 자라 세계적인 조선 기술자가 될 것 같은 근거 없는 느낌은 뭘까. 그렇게 된다면 이 사진은 네티즌들의 성지가 되겠지ㅎ
그동안 인도의 다른 도시들에는 개가 정말 많았다. 더위에 지쳐 축 늘어진 개들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개보다 고양이가 많다. 어시장 근처를 어슬렁 거리며 생선을 노리는 놈도 있고, 바닷가 고양이답게 닻 근처에 앉아 한낮의 그루밍을 즐기는 놈도 있다. 팔자 한 번 편하다. 제일 좋아하는 생선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남는 시간은 그늘에 앉아 윤기 나게 털 관리만 하면 되니 말이다. 이곳에서는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인가 보다.
속 편한 고양이를 끝으로 마을 투어가 끝이 났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릭샤를 타야 했는데, 가격이 조금 비싸 로컬 교통수단을 물어물어 타기로 했다. 이 마을 사람들도 우리가 묵고 있는 마을로 나갈 일들이 있을 테니 저렴하게 갈 수 있는 방법도 분명 있을 것이다. 몇몇 아주머니께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물어보니 손으로 어떤 장소를 계속 가리키신다. 손가락 방향을 따라 걸어가니 하얀 버스 한 대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기사로 추정되는 아저씨께 물어보니 마을로 가는 것이 맞단다. 가격은 단돈 10루피(약 180원). 우리는 20루피를 꺼내 손에 쥐고 바낙바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정겨운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는 보통 여자 손님들이 많았다. 우리 뒤에도 꼬마 아가씨 한 명과 두 명의 아주머니가 탑승하셨는데, 아이는 역시나 우리가 궁금했나 보다. 잠시 뒤 엄마로 추정되는 분이 우리에게 말을 거시더니 아이와의 인사를 주선하셨다. 아이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마스떼'라고 인사를 건네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나는 한 장을 찍은 뒤 결과물을 보여 주었고 아이는 세상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인쇄된 듯 아이의 미소가 마음에 쿵하고 찍혀 버렸다. 이게 바로 새로운 형태의 심쿵인가 보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던 캣츠 아이 레스토랑 앞에서 내렸다. 랍스터를 못 산 아쉬운 마음을 왕새우로 달래기 위해서였다. 레스토랑 직원분은 우리가 랍스터를 못 산 것을 눈치채고는 같이 아쉬워해 주셨다. 그냥 여기다 주문해서 만들어 달라고 할 걸. 여러모로 아쉽고 또 아쉽다. 그래도 통통한 왕새우 한 번 더 먹고 친절한 직원분과 사진도 찍으며 신나게 반나절 잘 보내다 숙소로 돌아왔다.
늘 그랬듯 저녁 시간까지는 시원한 방에서 방콕이다. 하지만 호텔 체류 이틀째 되던 날부터 방에서 작은 바퀴벌레들이 자꾸 나온다. 하아. 스트레스. 침대 밑에서도 나오고 화장실에서도 나오고 죽여도 한 두 마리씩 계속 나타난다. 약을 뿌려두면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아 카운터에서 얻어 온 바퀴 퇴치제를 잔뜩 뿌려 두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오늘은 저녁 먹기 전 중요하게 갈 곳이 있다.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머리도 단정히 한 뒤 찾아간 그곳은 바로바로 동네 사진관이다. 가격은 1인당 70루피(약 1,300원). 한방에 팍 찍고 10분 만에 짠하고 인화해준다. 세상 저렴하고 세상 편리하다.
인도의 10분 속성 사진관 체험이 끝나고 여느 때처럼 커리와 아이스크림을 먹은 뒤 돌아와 짐을 쌌다. 정리가 대충 끝나고 일찍 잠자리에 들려는데 바퀴벌레 한 마리가 침대 머리맡에 출몰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그때부터 남편과 나는 100마리가 넘는 바퀴벌레들을 처리하며 밤을 꼴딱 새워야만 했다. 그나마 손가락 한마디만 한 작은놈들이어서 버텼지 큰 놈들이었으면 당장 뛰쳐나와 길에서 잤을 것이다. 정말 끔찍한 밤이었다.
최악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자마자 우리는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디우 공항은 굉장히 작았는데 안으로 들어가려면 군인들이 마중 나와 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어서 오렴'이라고 말하는 듯 뭔가 정다운 느낌이다. 공항은 굉징히 작았지만 인터넷도 잘 터지고 에어컨도 나왔다. 이제 우리는 인도 최대의 경제 도시 뭄바이로 향한다. 그곳은 또 어떤 곳일까. 어떤 곳이든 방에서 바퀴만 안 나오면 행복한 여행이 될 것 같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