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2.두 얼굴의 뭄바이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인도 #뭄바이 #일상

#2017년6월8일~9일


<인도 중부 지역에 위치한 뭄바이>

인도의 여름은 숨만 쉬어도 살이 빠지불가마이다. 아무리 잘 먹어도 방 밖으나가자마자 땀으로 모두 배출되고 만다. 그런데 이 와중에 디우에서 버스로 20시간이 넘게 걸리는 뭄바이에 가야 한다. 처음에는 당연히 저렴한 버스를 예매하려 했다. 하지만 우리는 진심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1인당 11만 원 주고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했다. 참 웃긴 것은 비행기를 타면 디우에서 뭄바이까지 딱 1시간이 걸린다. 이래서 돈이 좋다고들 하나보다.

<경제 도시 다운 비주얼의 뭄바이>

뭄바이 공항에 내려 선불 택시를 타려고 부스를 찾아갔다. 그런데 여행 책자에서 봤던 것과는 다르게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타고 나중에 후회를 했겠지만, 이젠 정신줄 단단히 붙잡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올라왔다. 우리가 선택한 차선책은 우버. 공항을 나가 두리번 대다 보니 우버 전용 탑승장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서둘러 공항 와이파이를 잡아 우버 부르기도 손쉽게 성공! 시원한 에어컨 차량을 타고 호텔까지 가는 데는 선불 택시의 반값도 안 되는 530루피(9,400원) 면 충분했다. 눈탱이 안 맞아 뿌듯한 시작이다.

<깔꼼한 인도의 또 다른 모습!>

영국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뭄바이 유럽이라 착각이 들만큼 멋진 도시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는 인도의 다른 도시에 다 있는 릭샤도 없다. 소음과 대기 오염 문제로 뭄바이 중심부에 릭샤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조금 다르다. 인도 최대의 경제 도시라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피스룩 차림에 백팩을 메고 다닌다. 여성들도 전통의상보다는 주로 청바지나 원피스 같이 개성이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낮에는 구름이 많고 밤에는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가 덜 덥다. 덜 더운 게 35도 안팎이지만 그래도 그 덕에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도시를 쏘다닐 수 있었다.

<금 목걸이에 선글라스로 시선 강탈>

우리는 보통 그냥 걷는다. 여행책의 친절한 추천은 잠시 놓아두고, 지도를 편 뒤 가고 싶은 곳을 고른다. 그렇게 다니다 보면 가끔 길을 잃기도 하고 엉뚱한 골목에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잃어버린 길 위에서, 엉뚱한 골목 안에서 다시없을 특별한 추억들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도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샌드위치 가게에서 우연히 비글미 넘치는 네 명의 뭄바이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자고 했다. 그래서 방금 만난 사이지만 사진이 찍히는 그 순간만큼은 친친 느낌 가득 담아 열정적으로 단체 셀카에 임했다. 하지만 내 팔은 영락없이 짧았고, 그들은 교묘하게도 뒤로 한 발씩 물러났다. 지켜 주지 않아서 고.. 고맙다 얘들아.

<뭄바이의 랜드마크가 된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비글 사 형제와 안녕을 나누고 거리로 나와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Gateway of india'를 찾아갔다. 1911년 영국 왕 조지 5세 부부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9년에 걸쳐 지은 건축물이다. 분명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과 함께 식민 지배 구조를 견고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던 인도 지배계층들의 작품일 것이다. 그저 멋지다고 감탄만 하기엔 씁쓸한 부분이 많다. 그래도 뭄바이에 온 여행자들은 모두 이곳을 찾는다. 바다와 어우러진 웅장한 건축물을 구경하기 위해 말이다. 그렇게 과거는 시간 속에 묻히고, 현재는 무심하게 흘러갈 뿐이다.

<자비로운 타지마할 팰리스>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가 세워진 광장의 건너편에는 유럽의 성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호텔이 있다. 이름부터 남다른 '타지마할 팰리스 Taj mahal Palace'. 책에서 보니 이곳의 설립과 관련된 이야기가 흥미롭다. 인도 식민지 시절 고급 호텔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설립자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분노하여 스스로 인도 최고의 호텔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바람대로 이 호텔은 인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고급스러운 호텔이 되었다. 1층은 쇼핑몰이기 때문에 내부가 궁금한 사람은 들어가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호화로운 호텔에 들어가기에 조금은 허름한 여행자 복장이었지만 설립자의 취지 때문인지 입구 직원들의 미소와 환영인사까지 받으며 부담 없이 구경하고 나올 수 있었다.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워프로 나왔다는>

화려한 상류층의 생활을 구경했다면 이제 보통 사람의 생활 속으로 들어갈 차례이다. 남편은 열심히 구글 지도를 보더니 액세서리 거리가 있는 것 같다며 가보자고 했다. 좁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가방이며 신발이며 장신구들이 가득이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디자인들에 눈이 휘둥그레 졌지만 남편은 마치 못 올 곳에 온 것처럼 내 손을 잡고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참새를 방앗간 쌀자루 안에 넣었다가 한 톨 먹으려는 찰나 멀리 날려 보내주는 격이다. 아깝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중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별다른 계획 없이 아무 골목이나 걷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뭄바이의 극적인 단면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서너 살이나 됐을까. 작은 아이는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지도 못한 채 거리에 누워 잠을 잔다. 집이 없어 비닐 한 장으로 만든 지붕 아래 다섯은 족히 넘는 가족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지나가는 이들은 바라본다.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들 사이로 빽빽하게 자리 잡은 파란색 지붕의 판자촌을 본 일이 있다. 과거 파란색은 카스트의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들의 것이었다는데, 지금의 파란색은 판자촌 지붕에 가득하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도시 외곽에는 그 유명한 '도비 가트 Dhobi Ghat'가 있다. 그곳은 엄청난 규모의 빨래터인데,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대표적인 빈민가이다. 가볼까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그들의 삶이 치열하다는 것쯤은 생생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도 최대 경제 도시 뭄바이의 또 다른 모습이다.

<궁전 같은 이곳이 대법원>

하지만 골목을 조금 벗어나면 지나치게 잘 정돈된 거리와 건물들이 나타난다. 특히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건물들은 해리포터를 연상케 할 정도로 뛰어난 외관을 자랑하는데 이런 건물들은 보통 법원이나 국가 기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한 번은 대법원 앞을 지나는데 길가에서 오래된 타자기로 열심히 무언가를 작성하시는 아저씨들을 보았다. 아마도 법원에 제출하는 어떤 서류는 꼭 이런 식으로 작성해야 하는 법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인도에만 있을 것 같은 흥미로운 직업이다. 이 장면을 남겨 두고 싶어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건치 미소까지 뽐내 주시는 아저씨.

<아저씨의 불꽃 독수리 타법이 인상적임>

다리가 아플 때는 바닷가 방파제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잠시 쉬면 된다. 비록 바닷바람이라 온몸이 끈끈해지는 단점이 있지만 불볕더위 속에서는 그마저도 시원하다. 우리도 현지인들 틈에 자리 잡고 앉아 저 멀리 세워진 고층의 빌딩들을 바라본다. 조금 전 만난 장면들 때문인지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훌륭한 건물들 사이사이, 내가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짭짤 끈끈한 바닷 바람이 불어오는 마린 드라이브>

오늘의 마지막 구경은 뭄바이의 패션 거리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같은 곳인데,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옷가게들이 어마어마하게 늘어서 있다. 건너편에 양말이나 벨트, 장난감, 시계 등을 판매하는 작은 노점들이 가득인데, 남편은 그곳에서 120루피(약 2,100원)에 벨트 하나를 구입했다. 좋은 점은 저 가격에 사이즈까지 맞춤으로 조절해준다는 것이다. 네팔 이후 벨트를 잃어버려 줄줄 흘러내리는 바지를 노끈으로 동여 매고 다녔는데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동대문 시장을 연상케하는 뭄바이의 패션 시장>

내가 바라본 뭄바이는 참 극적이었다.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들로 귀부인 같은 매력을 뽐내다가도 어느 한순간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왁자지껄한 인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미래 도시를 닮은 빌딩 숲에 들어서면 인도 최대 경제 도시의 위엄이 느껴지는 반면,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 가득한 빈민촌을 지나치면 그들이 지닌 고질적인 문제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쩌면 인도인들은 이 모든 간극을 그들의 종교 안에서 겸허히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극적인 공존이 뭄바이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지나가는 여행객의 얕고 좁은 식견으로는 끝없이 복잡한 뭄바이가 조금은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도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음속 깊이 담아 갈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1.뜻밖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