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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개복치 멘탈로 두바이 여행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한인마트

#부르즈할리파 #두바이몰 #2017년7월11일~13일


<아랍에미레이트의 연방 국가 중 하나인 두바이>

오후 7시 반 케냐 나이로비 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에티오피아를 경유해 다음 날 새벽 4시쯤 두바이 공항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레이트의 연방을 구성하는 7개국 중의 한 나라로 예로부터 아랍 일대의 상인들이 모여드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래서인지 공항에 게시되어 있는 광고 카피가 예사롭지 않다. 멋지다.


'If china is the door to trade, we're the key.'

'중국이 무역의 이라면, 두바이는 열쇠다'


<짧고 임팩트 있는 광고 문구>

심사를 거쳐 입국장으로 들어오니 시간은 5시 반. 예약해둔 숙소의 체크인이 2시인데다 밖에 다니기 너무 이른 시간이라 공항에서 1시간가량을 더 버텼다. 그동안 빵빵 터지는 무료 와이파이로 부모님께 전화도 한 번씩 드리고, 두바이에 대해 검색도 했다. 중동이면 어느 나라나 석유가 와이파이보다 더 빵빵 터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두바이는 그렇지 않단다. 1971년 이후 석유 수출로 인한 수입이 GDP의 대부분을 차지 하긴 했지만 다른 산유국에 비해 매장량은 매우 적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대신 두바이는 자유무역단지를 조성하고 물류, 항공, 관광 인프라를 갖춘 중계 무역국으로서의 입지를 끊임없이 다져왔기 때문에 지금의 엄청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기름 부자라기보다 무역 부자라고. 아! 그렇구나. 오늘도 여지없이 찾아오는 깨달음의 시간이다.

<뚜벅이 여행자들을 위한 필수품, nol카드>

도심으로 연결된 전철을 타고 숙소 근처 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기계에서 nol카드를 샀다. 두바이 교통카드는 총 4가지 색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여행자들은 레드와 실버를 많이 사용한다.


-실버

사용기간: 5년

카드금액: 6디르함(약 1,980원)/ 최초 카드 구입 시 19디르함(약 6270원)을 무조건 충전해야 함

/이후 최대 500디르함까지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충전 가능

특이사항: 주차 요금 정산 가능/ 환승 시 할인 혜택


-레드

사용기간: 100일

카드금액: 2디르함(약 660원)

특이사항: 탈 때마다 가고자 하는 구간만큼 충전한 뒤 사용/ 2개 존 안에서 이동 시 편도 6디르함(약 1,980원)


<더운데 등에 가오나시까지 짊어져서 더 덥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맡기고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티은행에 갔다. '별로 안 머네'라며 당차게 나왔는데 아침 7시 기온이 45도. 5분 만에 온몸은 땀 투성이가 되고 얼굴을 붉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두바이의 여름은 너무 덥다. 어딜 가나 실내에 들어가면 소름 돋을 만큼 시원하게 에어컨을 쐴 수 있지만 밖은 아니다. 인도도 그렇고 두바이도 그렇고 제발 여름에는 오지 마시길 당부하고 싶다.

<만두를 사고 싶다는 간절한 눈빛>

돈을 찾고 더 이상 어딘가로 향할 힘이 없어 바로 앞에 위치한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갔다. 9시도 안된 시간이라 여기 말고는 갈 곳도 없다. 그래서 할 일 없이 1시간 동안 죽치고 앉아 미드를 봤다. 그리고 가게들이 문을 열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한인 마트가 있다는 동네로 이동했다.

<피곤+더움+무거움+모래바람+눈부심 = 저 표정>

다행히 가게는 문을 열었고, 우리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반가운 한국 식료품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떡볶이, 라면, 햇반, 고추장, 만두, 번데기 통조림(?)을 사고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김치도 1kg이나 샀다. 3일 동안 다 먹을 수 있을까 살짝 고민했지만 지금 이 상태라면 1일 1kg도 거뜬할 듯 하다.

<식당 문 열기 기다리며 잠시 숙면>

두 손 가득 묵직하게 장을 보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어서 빨리 체크인을 하고 다 먹어치워야지! 하지만 신나게 집으로 뛰어가고 있는 마음과는 달리 다리는 한인 마트 근처의 한인 식당으로 향했다. 이 동네에 한식 뷔페집이 있다는 내용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봤기 때문이었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10시 반쯤 호텔 안에 위치한 식당으로 갔는데 12시 부터 영업이란다. 배도 너무 고프고, 잠도 쏟아지는데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하다니. 고민된다. 하지만 매콤한 각종 찌개와 반찬과 부침개들을 상상하니 꼭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앞 소파에 앉아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뒤 가게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뷔페의 흔적. 의아했지만 그냥 자리에 앉았고 한국인 사장님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신다. 역시나 메뉴판에도 뷔페는 없다. 너무 옛날 블로그를 본 것일까. 완전 대실패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 배가 고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육개장과 곰탕을 시켰다. 가격은 한 그릇에 2만 원. 태어나서 이렇게 비싼 국밥은 처음 먹어본다. 이 돈이면 한인마트에서 푸짐하게 장을 보고도 남을 돈인데!!

<깔끔한 세탁실을 갖춘 3일 우리집>

피로가 불러온 판단 오류는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들어온 순간, 모든 우울함이 날아가 버렸다.

<아파트 통으로 빌리는데 5만원이면 충분>

푹신한 소파와 벽걸이 TV를 갖춘 넓은 거실, 포근한 침실과 깔끔한 부엌, 밀린 빨래를 해결해줄 세탁실과 옥상에 위치한 수영장까지! 하루 5만 원에 대략 24평은 되어 보이는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김치와 짜파게티의 꿀 떨어지는 조합>

우리는 짐을 내려놓자마자 한숨 푹 잔 뒤 김치와 함께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와 진짜 김치 핵 꿀맛.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뒤 세탁기에 빨래를 넣었는데 몇 분 열심히 돌다가 멈춰버린다. 리셉션에 연락 하니 수리 기사님을 바로 보내 주었고, 기사님은 기계가 완전히 망가진 것 같다며 세탁기를 교체해주시겠다고 했다. 읭? 교체?ㅋ 살다 살다 세탁기를 통째로 교체해주는 곳은 처음이다. 두바이는 서비스의 품격도 남다르다.

<인스턴트 떡볶이라도 맛만 좋다>

두바이 두 번째 날 아점은 내 사랑 떡볶이. 소스까지 다 들어있는 반조리 식품이라 단맛이 조금 강했지만 그래도 맛있다. 완전 대박 맛있다. 어릴 적 즐겨 보던 만화 '꼬마 자동차 붕붕'의 주인공 붕붕은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지만 나는 고추장 향기를 맡아야 힘이 솟는 것 같다.

<돈 쓰기에 최적화 되어 있는 두바이몰>

우리는 한식으로부터 뚜벅이의 걷기 에너지를 가득 충전받은 뒤 서둘러 두바이 구경에 나섰다. 우선 세계 최초 '무인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전철을 타고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 Burj Khalifa'를 보기 위해 '두바이 몰 Dubai Mall'에 갔다. 쇼핑몰의 규모는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컸다. 쇼핑을 하다 힘이 들면 작은 차량을 타고 몰을 돌아다닐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돈을 쓰기 위해 최적화된 환경이었다.

<서점에 진열 되어 있던 고급진 책. 가격이 무려 약 119만원이나 함..>

쓸 돈이 없었던 우리는 이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시원하게 탁 트인 서점에서 영어 공부용 소설 한 권을 구입하게 되었다. 강요는 아니지만 저절로 무언가를 사고 싶게 만드는 이곳의 분위기는 정말 묘하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장난감 가게에서 스타워즈 주인공들과 신나게 사진을 찍고 나오는데 저 멀리 작은 벤치에 앉은 피노키오가 눈에 띄었다. 전에 피렌체에서 봤던 제페토 할아버지의 작업실이 떠올라 다가가니 같은 가게가 맞다. 제페토 할아버지 체인점 CEO셨군요ㅋ 반가운 마음에 피노키오와 사진을 찍으려는데,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다크는 광대까지 내려와 있고 눈빛은 아련 아련. 마치 고향을 그리워하는 듯한 중년 남성의 포스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뭔가 안쓰럽다.

<정말 자유로워 보이는 포즈다>

1200개가 넘는다는 상점 정글을 헤치며 걷다 보니 저 멀리 시원하게 떨어지는 인공 폭포가 보인다. 폭포에는 물줄기를 따라 온몸을 활짝 편 사람들의 형상이 더해져 있었는데, '자유'라는 컨셉을 참 잘 표현한 것 같았다. 광활한 쇼핑의 공간을 헤매다 지칠 때쯤 잠시 눈을 쉬게 해 줄 좋은 쉼터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파트 전단지 같이 나온 부르즈 할리파>

하지만 이곳의 핵심은 따로 있다. 바로 총 높이 829.84m에 빛나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 '부르즈 할리파'. 위로 갈수록 뾰족한 피라미드 형태로 만들어진 이 거대한 건물은 3일에 한 층씩을 쌓아 올려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튼튼하긴 한 거겠지. 내심 걱정된다.

<두바이에서 인도네시아 음식과 베트남 음식 먹음ㅋ>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상태에서 부르즈 할리파를 올려다보려고 시도했다가 건물에 반사된 빛에 눈이 멀어버리는 줄 알았다. 아, 두바이 햇볕 너무 강하다. 해가 지면 건물 앞에 위치한 분수에서 멋진 쇼가 펼쳐진다길래 간단히 인증샷만 찍고 실내로 들어가 밤이 오길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분수가 잘 보이는 식당에 앉아 저녁도 먹었다. 메뉴는 태국식 볶음밥과 베트남 쌀국수. 음식은 맛있었지만 가격이 170디르함(약 56,100원)이나 나왔다. 앉아서 여유롭게 분수쇼를 보고 싶은 마음에 들어갔는데 실내에서는 음악 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는다.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두바이다.

<낮 보다 밤이 더 멋진 부르즈 할리파>

결국은 밥을 다 먹고 다시 밖으로 나가 분수쇼를 기다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은 저렴하게 푸트코트에서 사 먹을걸. 여행 중 이렇게 돈과 관련된 자잘한 판단 오류는 정신건강에 굉장히 해롭다. '그 돈을 쓰지 않았더라면 무엇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 텐데'와 같은 찌질한 자책과 후회를 계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항상 동행인이 거든다는 사실이 더 문제다. '네가 날려버린 기회비용으로는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지'라며 나도 다 아는 이야기를 계속 꺼내며 개복치 같이 연약한 멘탈을 공격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빠직 하고 멘탈이 깨져 버리는 것이다.

<매일 밤 펼쳐지는 두바이의 분수쇼>

하나 둘 조명이 들어오고 쇼를 알리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낮보다 더 멋진 부르즈 할리파를 배경으로 150m 높이의 물줄기가 하늘을 수놓는다. 아름다운 여행의 장면들은 늘 그렇듯 조각난 멘탈 사이를 파고들어 위로가 되어준다. 그리고 조금 더 단단하게 아물 수 있도록 보듬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멘탈은 여행의 보호 아래 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변모되고 있다. 무른 땅이 비 온 뒤 단단해지는 것처럼 깨지고 붙기를 반복하다 보면 나의 개복치 멘탈도 언젠가는 다이아몬드 멘탈이 되겠지. 그러니 앞으로도 여행의 힐링을 뒷심 삼아 열심히 깨져봐야겠다. 많이 깨져본 놈이 단단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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