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두바이 #알파히디역사지구 #골든속
#올드속 #BAQ #2017년7월14일~15일
두바이 인공섬 주메이라 해안에는 멋진 돛 모양의 '버즈 알 아랍 Burj Al Arab'호텔이 있다. 이 호텔의 하룻밤 숙박료는 가장 저렴한 것이 1천 달러(약 115만 원). 실내는 온통 24k 금으로 장식되어 있고 호텔 지하에는 해저로 연결된 레스토랑도 있다. 이렇게 두바이는 세상 모든 화려한 것들의 집합소이다. 미래 도시에 온 듯 각양각색의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고, 랜드마크에는 언제나 '최고' 또는 '최초' 타이틀이 붙는다. 거리를 둘러보면 모닝 다니듯 슈퍼카들이 가득하고 어딜 가나 고급스러운 장소와 물건과 서비스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모든 것이 비싸겠거니 했고, 이것이 두바이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두바이의 여러 단면 중 하나에 불과했다. 우선 이곳의 역사를 보기 위해 찾아간 두바이 박물관. 박물관 건물은 1799년에 지어진 '알 파히디 요새 Al Fahidi Fort'로 과거 왕궁이나 감옥으로 쓰이다가 1970년에 와서 현재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입장료는 3디르함(약 990원)으로 굉장히 저렴하다. 입구에 들어서니 사막 도시답게 모래로 채워진 요새 앞마당이 펼쳐졌다. 마당에는 실제로 사람을 실어 나르던 옛날 배들과 당시에 사용했던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글거리는 두바이의 태양을 참아내며 도르래가 달린 우물 앞에서 사진도 하나 찍고 안까지 살뜰하게 꾸며 놓은 아랍식 전통 가옥도 구경했다.
실내에는 진주 파는 상인들의 모습부터 향신료 가게, 식료품점, 학교, 당시의 골목까지 어찌나 세밀하게 잘 재현해놨는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여기서 조금 더 관람에 몰입하고 싶다면 마음에 '상상 패치'를 하나 붙여주면 된다. 그렇게 남편은 18세기 아랍의 상인이 되어 낙타를 끌고 먼 여정에 오르고, 나는 식료품 가게 주인이 되어 거리의 편지 읽는 아저씨 옆에서 오지랖을 부려보는 것이다. 상상의 도움을 받으면 조용한 박물관에도 어느덧 소란스러운 생동감이 가득해진다. 나만 볼 수 있는 소란이지만 말이다.
즐거운 생활상 구경이 끝난 뒤 나타난 파란빛의 낯선 방. 뭘 표현해 놓은 것일까 위를 올려다봤더니 배 한 척이 천정에 둥둥 떠있다. 벽에 해초와 물고기들이 그려져 있는 걸 보니 바다 속이구나! 어쩜 아이디어도 좋다. 컨셉을 깨닫자마자 나는 마치 아가미라도 생긴 것처럼 바닷속을 마음껏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에도 우리나라 해녀처럼 물질을 하는 해남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물속에서 해산물도 잡고 진주도 찾는 일을 하는데 빨래집게 같은 것으로 코를 집은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전문가 스멜.
모든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렇게 볼거리 가득한 박물관이 천 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믿기지 않는 일이 또 일어났다. 옛날 집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으로 유명한 '알 파히디 역사지구 Al Fahidi Historical'로 이동하던 중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상점 하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가게의 이름은 'BEIN AL QASRAIN'.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이 가게에는 각종 기념품부터 화장품, 옷, 신발, 생활용품, 장난감 등을 팔고 있었는데, 가격이 장난 아니다. 전품목 10~20디르함(약 3,300원~6,600원) 파격 정찰제!
신생아용 옷 두 벌에 모자와 양말까지 들어있는 세트가 무려 10디르함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대략 3,300원인 셈이다. 남자 속옷 5개입 한 세트도, 예쁜 샌들 한 켤레도, 여벌 옷이 들어간 바비 인형도 모두 10디르함. 컬러가 좀 난감했지만 립스틱도 깔 별로 8개 세트가 10디르함. 여기서 조금 더 퀄리티가 좋으면 20디르함(약 6,600원)을 받는 것이다. 뭐지 이 태평양 같은 혜자스러움은.
비록 두바이몰 같은 세련됨은 없지만 비교불가 가성비를 자랑하는 두바이의 혜자몰. 만약 내가 단기 여행자였다면 진짜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도 잔뜩 해서 한 보따리는 샀을 것이다. 규모는 다르겠지만 아랍 부자처럼 돈 쓰는 재미를 느껴보기 원하신다면 이곳을 꼭 방문하길 강력 추천한다. 위치는 '알 파히디 스트릿 Al Fahidi Street'에 있는 KFC 건너편이다.
아이쇼핑의 흥분이 채 가시기 전 양파 같은 매력의 두바이는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릴 유혹했다. '알 파히디 역사지구 Al Fahidi Historical'는 전통 가옥들이 모여있는 민속촌 같은 곳인데, 진짜 분위기 깡패다. 아랍 느낌 물씬 나는 사막 빛 골목과 집 사이로 카페며 커피 박물관 같은 볼거리들이 가득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볼거리들을 모두 그냥 지나쳐야 했다. 왜냐? 다들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문한 날이 금요일이었는데, 커피 박물관은 원래 이날 문을 닫는다고 쓰여있었다. 하지만 다른 가게들을 왜들 그러신 거죠. 다들 너무 더워서 휴가라도 가신 건가요.
상점 안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역사지구 거리를 마음껏 활보할 수는 있었기 때문에 남편과 그 옛날 아랍 사람이 된 듯한 기분으로 산책을 즐겼다. 담장에는 멋진 그라피티들이 가득했고, 버려진 손수레 하나까지도 그저 멋져 보였다. 날만 안 더웠다면 아마 두 시간은 족히 머물다 왔을 법한 역사 지구. 덥지 않은 어느 날 꼭 다시 한번 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더위에 지칠 대로 지쳤지만 아직 우리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토마토 같이 익은 얼굴을 하고 마지막으로 선착장을 구경하자며 걷고 또 걷는데 옆으로 재래시장인 '올드 속 Old Sok'이 보인다. 오, 이런 곳은 또 가줘야지. 매력에 이끌려 빨려들듯 시장에 들어섰는데 장사꾼 중의 장사꾼들이 마구 손을 뻗어 온다. 인도보다 더 화려한 말솜씨와 끈질김으로 손님을 붙잡은 노련함이 예술이다. 무시하며 지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두바이의 재래시장은 정말 블랙홀 같은 곳이었다. 역시 무역 강국의 후예들 답다.
'이따 오겠다. 이미 샀다.' 등의 말로 겨우 장사꾼들을 떼어냈는데 열 걸음도 못가 터번과 스카프를 파는 한 아저씨에게 또다시 붙들리고 말았다. 아저씨는 아주 능숙한 손놀림으로 남편의 머리에 터번을 올린다. 그리고는 거울을 보여주겠다고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로 우릴 이끈다. 아, 쾌적하다. 한참 더위에 지쳐 있던 우리는 차갑고 보송보송한 에어컨 바람에 일단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 틈을 타 아저씨는 총 세 가지 버전으로 터번을 스타일링해주셨고, 남편은 거의 사기 직전까지 가고야 말았다. 지갑 열뻔;;
사실 두바이 재래시장의 물건들은 그냥 지나치기 아까울 정도로 저렴하고 질이 좋았다. 아랍풍의 예쁜 전통 의상도 10디르함(약 3,300원)이면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선물용으로 많이 사는 손지갑 같은 것들도 5디르함(약 1,650원)정도였는데, 흥정만 잘하면 더 싸게 살 수도 있다. 다만 말발이 그들보다 좋아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ㅋ
더운 날씨에 하루 종일 돌아다닌 것도 모자라 집까지 걸어간 우리.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다음 날 숙소 체크 아웃을 한 뒤에도 짐을 맡기고 저녁 7시가 될 때까지 두바이를 온통 헤집고 다녔다. 시간이 짧으니 초인적인 힘이 솟아나나 보다.
다음 나라로 향하는 비행기가 새벽 출발이라 시간을 때우기 위해 방문한 곳은 '골든 속 Gold Sok'. 인근 국가 인도 사람들도 몰려와 금을 산다는 두바이의 유명한 금시장 되시겠다. 도착하자마자 일단 휘황찬란한 쇼윈도에 넋이 한 번 나가 주시고, 눈이 부셔서 쳐다 보기도 부담스러운 금 축구화와 야구공에 나갔던 넋이 돌아오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한약방 거리에서 한약 냄새를 습습하고 들이마시면 건강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듯 금시장 거리에서 금빛을 와와 하며 쳐다보니 부자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이 많은 금이 다 어디서 나는 거람. 저런 금팔찌 차면 팔목 무겁고 참 좋겠다ㅋ
마지막으로 두바이 선착장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역 근처로 가려했지만, 배가 엉뚱한 곳에 멈춰 서서 실패. 하지만 바다 위에서 두바이를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멀리서 보아도 무언가 왁자지껄 소동이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두바이. 과거 각국에서 무역하러 찾아온 상인들과 소문 듣고 한몫 잡으려 몰려든 사람들로 붐비던 이곳은 21세기에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무역 상인들은사업 하러 온 사업가들이 되었고, 한 몫 잡으려 몰려든 사람들은 관광객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두바이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며 호화스러운 것들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옛날 무역 도시처럼 여전히 저렴하고 질 좋은 서비스와 물건을 통용하고 있는 이곳. 이렇게 뚜렷한 양면이 공존하는 두바이만의 매력이 이 나라를 다시 한번 찾고 싶게 만드는 은밀한 비밀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