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바이러스야. - 스미스씨 from 영화 '매트릭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기원을 알 수 없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노래인데요, 왜 두꺼비에게 헌 집을 주고 새 집을 뺏어가나요! 으잉?! 좋은 것 다 뽑아 먹고 또 새 집을 탐하다니. 인간이 돈에 눈이 멀어 자본주의 게임에 혈안이 되어 세상 곳곳을 파헤쳐놓는 꼴을 보면, 영화 ‘매트릭스’의 아래 대사가 떠오르곤 합니다.
“너희는 포유류가 아니었어. 지구상의 포유류는 자연과 본능적으로 조화를 이루는데 너희 인간들은 아니야. 한 지역에서 번식을 하고, 자연자원을 소모해버리지. 그리고는 생존을 위해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이 지구에는 똑같은 방식을 가지는 유기체가 있는데, '바이러스'야. 인간은 질병이야. 지구의 암이지."
- 영화 ‘매트릭스’ 중에서
인간의 속성을 너무 정확하게 짚어내어 이 대사를 듣는 순간 폐부를 찔리는 느낌이었어요. 너무 적절한 나머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대사입니다. 스미스 요원이 기계로부터 해방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시온’에 관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모피어스의 뇌에 침투하는 약물을 투입하고 모피어스는 뇌가 침범당하지 않도록 사투를 벌이는 그 시간 동안 스미스가 모피어스에게 인간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바이러스’와 비교되는 신박함, 참으로 딱이다 했습니다!
한편, 영화 ‘아바타’는 모든 생명체가 동일한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음을 경이로운 시각적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 각인시켜 줍니다. 나비족의 ‘판도라’ 행성의 생명의 중심인 한 나무가 쓰러지며 다른 생명들도 연쇄적으로 쇠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2022년 12월에 아바타 속편이 개봉되는데, 물의 세계까지 결합되어 과연 어떤 세계관을 보여줄지 너무 기대가 되어, 개봉 소식이 뜨자마자 예매를 해놓았습니다.
우리 인간의 욕심에 의한 자원의 ‘갈취’는 염치없이 계속됩니다. 인간의 소유욕의 대상물로서 자연을 ‘자원’으로 명명한 것이지요. 조금 얻어 써도 미안한 마당에 끝까지 캐내어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석유’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까요? 자본주의 시장에 들이 붓기 위해 지속적이고도 과도하게 석유를 채굴해온 것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 영향의 일부를 일단 소개해 볼게요.
석유 및 가스개발을 위한 접근도로, 시추 플랫폼, 파이프라인의 건설은 삼림을 파괴하고, 생산이나 운송 중에 석유 및 폐수가 유출되면서 수질 등 환경을 오염시킵니다. 특히 아마존 원시림 지역에서 무분별한 채굴은 생물다양성 파괴,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거주지의 훼손 및 건강의 위협(수질오염으로 인해 암이나 그 외 질병 발생률의 증가)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마존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국가들이 환경보호를 위해 보호조치를 한 때 취했다가도, '빈곤'을 이유로 다시 개발의 유혹에 빠져 버리곤 했습니다. (참고자료: 아마존 서부지역의 석유개발에서 환경과 원주민 문제) 또한, 석유와 천연가스 탐사를 위해 폭음을 동반하는 공기대포를 무차별적으로 터뜨리면서 해양 생태계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고자료: 남아공 해저 매일 8천 번 충격파…'소음'에 고래는 쉴 수 있을까)
요즘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단상이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욕망은 사회적 공헌, 사회적 가치, 복지 등에 투입되는 자본의 양까지 한정시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파괴한 환경과 인간의 정서, 그 외 여러 물리적, 정신적 훼손 등을 되돌리기 위해 아무리 자본이 투입된다 하여도, 그것의 완전한 회복에 이르기까지 돈이 투입될 수 있는 추진력이 발휘될 수 없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투입이 경영 자본의 이미지 향상에 도움을 주거나, 자본의 이해관계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회복에 방점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시시각각 치고 들어오는 변수에 의해 언제든지 멈춰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돈놀음에 존속되어서는 안 되는 세계이거늘.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정말 이치에 맞지 않게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게임에 적극 참여하다가 결국 '올인'하고 다 털리게 되지 않을까요? 혁신적인 기술을 통해 상상초월의 수익을 거두어들임과 동시에 환경의 회복까지 가능해지지 않는 한 말이지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지구가 잉태한 동등한 존재이기에, 어느 것이 다른 것을 대상화하고 파괴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요?
장회익 교수는 '온생명' 개념을 탄생시켜, 인간과 자연, 개체와 집단의 이분법적 구분을 떠나 만물은 상호 의존하며 보완한다는, 즉 전체로서 생명을 유지함을 이야기하셨어요. 신체 각 부위에 번성하는 암세포처럼 온생명의 각 부위를 점유하며 번영을 누리는 인간의 비정상적임을 설명합니다.
사실 현실 세계로 눈을 돌려 보면, 타성에 젖어버린 우리네 방식에서 벗어날 방법을 떠올리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예견되는 환경위기는 지구를 받치고 있는 축대가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가져왔던 것을 과감히 포기하여 지구상의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대전환에 돌입하는 것을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될 것입니다.
어떤 생각과 믿음을 가지는 것부터 우리의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아래의 명언을 공유합니다.
“생각을 먼저 지배하는 것은 우리들이지만, 그다음에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는 자신이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보는 것이다.”
“생각이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고 그것들은 다시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
- 브라이언 트레이시 (대중 연설가이자 자기 계발 작가, 80 권이 넘는 책의 저자)
마침.
<라라레터>에 실었던 저의 글을 현재 시점 기준으로 내용을 추가하고 편집하여 올립니다. <공부해서 나 주기>에서는 '환경'과 '시민의식'을 주제로 키워드를 하나하나 탐색하고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이 글이 가장 그 취지에 맞아 떨어집니다. 추후에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댓글로 제안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