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개인적인 근육 이야기도 포함하였어요 :)
내 몸을 내가 써서 하고 싶은 운동을 좀 한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특히 ‘운동’이라는 영역에서 여성들에게 누가 뭐라고들 많이 했었습니다.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로 제동이 많이 걸렸죠. 그 넓디넓은 운동장 전면을 거의 다 차지하고 놀았던 것은 ‘남자아이들’이었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여자 아이들’은 기껏해야 피구, 또는 고무줄 뛰기를 운동장 한편에서 하곤 했죠(참고로 필자는 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세대입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의 여성 선수 비율이 34%였고, 2020 도쿄 올림픽 참가 여성 선수 비율이 48.5%로 사상 처음 남녀 성비가 거의 1:1이 되었어요. 현재 여러 스포츠 분야에 진출해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편견의 허들을 넘고 여기까지 왔을까요?
요즘 TV를 보면 흐뭇합니다. 운동 예능은 남자들만 해왔던 선례를 깨고 등장한, ‘노는 언니’, ‘골 때리는 여자들’, 코미디언 김민경이 진행하는 ‘오늘부터 운동뚱’, 최근의 ‘마녀 체력 농구부’까지, 2020 도쿄올림픽에서 활약한 여성 선수들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마음에 지핀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도쿄올림픽 배구 4강에 진출한 여자대표님의 경기에서 보인, 피지컬 파워, 여성 리더십, 팀워크, 플레이 빌드업 과정 등은 같은 여자들을 흥분시키며, 나도 도전하고 부딪히고 싶은 뜨거운 심장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했죠.
대략 4년 전 즈음부터였을까요. 예쁜 몸매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운동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한 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주목받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각종 매체에서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마녀 체력>(2018)을 쓴 이영미 작가는 30대 말에 고혈압 진단을 받았지만, 지금은 철인 3종 경기 15회, 마라톤 풀코스 10회 완주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10여 년 다져 온 체력은 단단해진 겉모습뿐 아니라 생활, 성격, 인간관계, 게다가 다가올 미래와 꿈마저도 놀라울 정도로 바꿔버렸다.” 이것은, 그간 억눌려왔던 활동의 범주가 우리의 겉모습, 생활, 성격, 인간관계, 미래의 계획까지도 제한하여 왔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겁니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김혼비, 민음사, 2018)는 축구를 잘하고 싶어서 근육을 키우고, 축구하는 데 거추장스러워 머리를 짧게 자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 나도 하고 싶었는데!’하며 기회를 놓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사회가 여성의 몸에 지운 기준에 갇혀 운신의 폭이 운동장 한 켠일 수밖에 없었던 그때는, 피부가 많이 타지 않는, 흉터로 남을 상처가 많이 생기지 않는, 종아리나 팔뚝이 근육으로 두꺼워지지 않는 운동이 우리 여성들의 운동인 줄 알았죠. 그런데 얼마 전 ‘골 때리는 여자들’의 언니들이 근육이 생겨 다리가 굵어졌다며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씨익 웃으며 쾌감을 느꼈습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들이 자신만의 강력한 표현을 위해 힘과 근육을 우선적으로 갖추는, 그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활동에 나의 몸을 최적화시켰습니다.
이런 흐뭇한 장면들이, 한 때 매체에서 활용된 한 캐릭터로서만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런 걱정을 불식시킬 만큼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도 이미 강력한 추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성 스포츠 예능의 인기가 올라감에 따라 인천의 모 축구클럽의 입단 문의가 5배 이상 증가하였다고 하니 말이죠.
솔직히 이 좋은 걸 여러분도 같이 했으면 하는 사심이 마구 분출되어, 제 사적인 경험을 마구 방출하여 여러분에게 뽐뿌질 해보렵니다.
어머니께서 테니스를 좋아하신 덕에 저는 일찍이 중학생 시절 잠시 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체육을 좋아했기 때문인지, 테니스가 가지고 있는 요소요소가 제겐 매력적이었나 봐요. 잠시 했지만, 당시 라켓에 공이 제대로 맞아 쭉 뻗어 나갈 때의 그 ‘감’이 잊히지 않고 두고두고 남았었어요. 테니스란 소위 ‘폼’이 중요한데, 폼을 계속 갈고닦아 자신에게 맞는 폼이 정착이 되었을 때 에러율을 줄이고 원하는 힘, 속도, 방향을 구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 폼이 제대로 잡히지도 않았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번씩 라켓에 공을 뻥뻥 맞춰보곤 했어요.
2012년 출산을 하고 이사를 했는데, 이사 간 아파트의 제가 사는 동 바로 앞에 테니스 코트가 떡 하니 있는 게 아니겠어요? 당시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장 시작하지 못했지만, 침을 줄줄 흘리며 탐내고 있다가 2014년 1월 2일 드디어 테니스와 다시 만났더랬습니다. 출산 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몸은 체중도 많이 나가고, 근육이나 관절이 저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상태였어요. 테니스 레슨은 고작 20분 동안만 하는데요, 그게 ‘고작’이 아니더라고요. 쉬지 않고 20분을 내리 빠른 잔걸음으로 좌우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릅니다. 처음엔 일 이분만 지나도 미칠 지경이었어요.
‘날으는 돈까스’로 불렸던 내가 이렇게 한심한 퍼포먼스를 보이다니!
마음은 저만치 달려가지만 몸이 언제 이렇게 된 것인가 싶어 솔직히 너무 많이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내 의지와 근육을 믿고 무조건 계속했어요. 그런데 저 혼자였다면 아마 중간에 포기했을지 몰라요. 그 테니스 코트에는 동네 언니들이 많았어요. 다 같이 잘 치지도 못하면서 깔깔대고, 좋아지면 ‘좋아졌다.’ 칭찬해주고, 치는 모습을 서로 촬영해주어 복습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는 등, ‘우리의 팀워크’가 하루하루 버텨가게 해 주었다고 생각해요.
어느 날, 제가 처음으로 테니스 스커트를 사서 입는 날이었어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못 입고 코트로 나갔더니, "너 스커트 도착했는데 왜 안 입고 왔어?!” 하며 격려해준 언니들 덕분에 다시 갈아입고 와서 첫 개시를 할 수 있었어요. 안 그럼 계속 처박아두고 있었을 거예요. ‘테니스를 칠 때 굳이 그 짧은 스커트 운동복을 왜 입고 할까?’, ‘왜 여성성을 강조하고 보기에 민망한 모습을 보일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게 아니었어요. 운동도 폼나게, 멋있게 차려입고 하면 더 즐거웠어요. 운동과 연결되는 모든 총체적인 문화를 즐길 때 더 흥이 나는 것이었어요. 누구 보여주자고 입나요? 나의 제2의 정체성을 멋있게 그려가기 위한 연출인걸요.
뜨겁고 치열한 여름을 세 차례 정도 보냈을 거예요. 선크림이 땀에 다 녹아 흘러내려도 다시 바를 틈도 없이 게임에 게임을 거듭했죠. 얼굴은 기미로 가득 차고, 땀구멍이 커지고 쳐졌어요. 팔・ 다리는 여름만 되면, 발 부분만 하얗고 나머지는 초코칩 쿠키 색으로 짙게 ‘구릿빛으로!’ 탔어요. 오른쪽 팔꿈치 관절과 손목 관절은 늘 잔잔하게 통증을 수반하고 있었지만 즐거움을 위해 충분히 안고 지고 갈만한 것이었어요. 그러한 시간이 4년, 5년 계속 흘러가면서 제 오른손은 왼손보다 1cm가량 더 넓어져 있었고요, 오른 손등의 혈관들은 여러 가닥 불룩 불룩 나왔죠. 오른팔이 왼팔보다 훨씬 두꺼워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가끔씩 거울을 보고 화장품을 바를 때 투박한 제 오른손이 눈에 띄어 깜짝 놀라긴 했는데, 순간 그것이 ‘남성적’ 요소라고 인지함에 따른 것이었겠죠. ‘아니야, 이건 나에게 훈장과도 같은 것이야.’라는 생각으로 이내 그 불편함을 떨쳐내곤 했어요. 오히려 두꺼워진 팔, 그리고 테니스를 위해 늘 스쿼트 자세를 하여 돌처럼(?) 단단해진 허벅지는 제 자랑거리가 되었어요.
이처럼 제 몸은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한 상태가 되어갔고, 퍼포먼스가 잘 나올수록 저의 또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아갔습니다. 제가 가진 물리적 힘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그것을 테니스의 폼에 반영하고, 최대한 잔발을 뛰어 공과 나와의 거리를 최적화하고, 끝까지 공을 보고 원하는 공격을 하는 이 콤비네이션은, 감히 말씀드리건대, 스스로 가장 멋져 보이는 시간을 선사합니다. 파워풀한 샷을 보낼 때, 상대가 그 샷이 어디로 올지 파악하였어도, 제 샷의 힘 때문에 받아치지 못할 때, 상대의 샷을 순발력 있게 대응하여 오히려 나의 공격이 먹혔을 때, 상대가 전혀 알 수 없는 코스로 순간적으로 공을 보내어 속수무책인 모습을 볼 때, 불꽃 서브로 서브 에이스를 먹일 때,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가 적절하게 배합된 동작들을 구사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이건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올해로 만 9년을 채웠네요. 중간에 허리 부상으로 쉬기도 했지만 꾸준히 쳐오고 있네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오른 팔의 근육은 살짝 웅웅 거립니다. 그런데 이제 이 통증은 저의 일부입니다. 하면 할수록 늘어가는 실력은 제 플레이를 한층 다채롭게 해줍니다. 그 과정에서의 희열은 말도 못합니다.
운동하면서 자신이 가진 힘이 어디까지인지 한번 느껴보세요.
운동하면서 안타까움 또는 환희의 포효도 질러보세요.
못 해 본 것이니 해보시라는 것이 아니고요, 해보시면 ‘내가 살아가는데 내 몸의 극히 일부만 써왔구나. 이렇게 다 써보니 느껴지는 게 너무 풍성하다.’라고 느끼게 될 것이라 확신해요. 그러나 꼭 기억해주세요.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몸에 적절하게 올바른 자세로 해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혹시 다치면 회복이 오래 걸리는 연령대이신가요? 조심은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겁은 내지 마셔요. 제가 알고 있는 많은 언니들이 병원 다니시면서도 계속 열심히 운동하십니다. 결국은 낫고, 운동하면서 낫습니다.
제가 가입되어 있는 한 클럽에 60대 언니들이 많이 계신데요. 갱년기를 어떻게 보내셨는지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곧 맞닥뜨리게 될, 사춘기보다 무섭다는 "갱년기"에 대한 마음의 준비 차원에서 말이지요.
언니들께서 하나같이 말씀하셨어요. "갱년기 그거 우리는 모르고 지나갔어. 갱년기 오면 테니스 레슨 받음 돼~!" 생리적인 현상은 불가피하게 겪으셔야 했지만, 우울증은 하나 모르고 갱년기를 지나오셨다고 합니다. 우아~~!! 너무 다행인 거예요. 운동 하나 확실히 하고 있으니 말이죠. 특히,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닌 운동들은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는 힘으로 더 큰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여러분, 응원의 마음을 정말 가득 담아 이 글을 썼습니다. 2023년 계획 세우실 때, 꼭 운동 부분을 고려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자!!
[참고자료]
[Tokyo 2020]여성 선수 48.5%로 역대 최고, '성비 불균형' 지웠다
[커버스토리-운동하는 여자들]“격한 운동에 남녀가 따로 있나요”
'운동하는 여자들'을 위한 책 추천 BEST 4 : 네이버 포스트
[D:방송 뷰] 스포츠 예능에 불어온 여풍, 지나가는 바람 안 되려면
'다음의 삶을 고민하는 레터' 라라레터(linktr.ee/lala.letter) '15호'에 실었던 글을 내용을 추가하고 재편집하여 실었습니다. // 나의 다음의 삶, 다음 세대의 삶을 지탱하여 줄 가치에 대해 공부하고 정리하는 과정으로 삼고 있습니다. 라라레터에 실었던 글들을 재편집하여 모두 업로드한 후에는, '환경', 그리고 '시민의식'을 키워드로 세부주제 별로 글을 써나가보려고 합니다.
'리브스토리즈'라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링크 모음을 통해 연결되어 보아요!
(유튜브 핸들 @live.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