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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은영 Feb 16. 2023

[이야기 놀기] 그 시절 인연은 지금까지

96년 MBC 대학가요제 출전을 회고하며

나에게 그런 경험이 주어지리라곤 생각지도 못하였던 시절에 그저 그 시절 인연을 통해 그렇게 흘러갔던 것 같다. 오늘 그 친구들을 만났다.  


1995년 대학교 입학을 하고 첫 학기엔 어떤 동아리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들지 않고 학과 소모임에서만 매일 같이 술로 살며 하루하루 보내었다. 가무를 소싯적부터 참으로 즐겼던 나는, 학창 시절 장기자랑 때마다 앞에 나가 노래를 부르곤 하였고, 심지어 고3 때 노래방 맛을 알게 되어 '퀸노래방'에 단골로 자주 갔다. 당연히 음악에 관심이 있었기에 음악 동아리를 살펴보던 중, '활천'이라고 하는 공과대학 음악동아리에 1학년 2학기를 시작하며 가입하게 되었다. 중앙 동아리는 너무 멀어 가기 귀찮아서 그랬었나, 가깝고도 정겨운 소규모 동아리가 끌렸다. 


거기서 나는 한 친구(편의상 앞으로 A로 칭한다)를 만나게 되는데, 그 친구는 1학년 때 이미 95 대학가요제에 출품하였다가 2차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어 절치부심, 트렌드를 파악하여 다음 해에 어떤 구성으로, 어떤 장르의 음악으로 출전할지 계획하고 있었다. 럭키하게도, 내가 그 친구 눈에 들어 팀에 합류하게 되었던 것이다. 총 4인의 중창으로 구성되었는데, A친구를 포함한 남학생 세 명은 고등학교 동창들로, A와 다른 친구 B는 절친으로 음악적 교감을 긴 시간 나눠왔던 친구이고, C는 베이스 보컬로 고등학교 합창단에서 꾸준히 훈련을 거쳐온 친구였다. 거기에 꽃처럼 내가 끼어 들어간,,, 것이 아니었고, 결론적으로 잔소리꾼으로 합류하게 된다. 뭐 떠받드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기대한 것은 망할 기대였다 ㅎㅎㅎ. 

아주 내성적인 우리 사랑스러운 친구들은 의사표현을 참으로 않고, 제안도 참 아니하고, 진한 배려 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 그러 그러한 친구였지만, 성질 급한 내가 이것저것 처리하면 되는 것이었고, 음악을 같이 하는 파트너들로서 충분한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만난 우리 넷은 1996년 그 여름날, 작곡, 작사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열심을 다하였다. 


당시 대학가요제 출품을 위해서는 돌돌 돌아가는 카세트테이프에 음원을 녹음해서 제출해야 했다. 


'아.. 그런데 녹음을 당최 어디에서 한당가? 집에서 카세트 테이프에 대고 부르는 건 너무 조잡하고 말이야..' 


우린 무작정 대학로로 나갔다.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 녹음할 곳이 보이지 않겠냐며 무계획으로 그냥 나갔다. 

'아,, 정말 단순무식.. 그러나 순수했다...'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절박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울랄라 바랄랄라 하다, '학전'이라는 소극장이 눈에 띄었다. 학전 '블루'였고 간판이 파랑이었다. 어쩐지 거기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스물스물 기어 들어갔다. 학전 블루 사무실, 거기에 당도하니 어떤 여자분 한 분이 계셨다. 훗날 그 김실장님께서 우리를 처음 보고 참 순수해 보이고 어쩐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하셨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잘 계시기를 바란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그 값진 추억을 가진 우리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김실장님은 거기 직원분이 아닌데 들르신 것이었고, 우리 이야기를 성의껏 들어주시더나 '누군가'를 소개하여주시는 것이었다! '띠옹~~~!' 


알고 보니 동물원 멤버인 '유준열'님이 개인 녹음 스튜디오를 가지고 계셨고, 세상에나 그분에게 우리를 소개해주신 것이다! 지금 생각하여도 비현실적인 드라마 같다. 


우린 당시 정말 신문물인 녹음 장비를 만났고, 너무나 질 좋은 음원을 녹음하여 제출할 수 있었다. 


이후 참으로 smooth 하게 일이 진행되었다. 당시엔 고마운 줄 모르고 지나갔는데, 인생을 40대 중반 넘어까지 살아오다 보니 당시가 얼마나 수월하게, 그리고 즐겁게 주어졌는지 알겠다. 이후 1차, 2차 심사를 모두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참가자들과의 긴 합숙기간도 아주 흥미진진하게 마포의 모 호텔에서 보낸 후 본선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 MBC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노래를 하는 것이었는데, R&B 아카펠라였던 우리에게 아주 상극으로 안 맞는 것이었다. 보컬이 부각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섬세한 보컬 라인을 다 침범하는 연주였기에 우리는 기백 있게, 건방지게 '저희는 피아노 하나로 가겠다.'며 바락바락 우기며 급히 피아노 연주를 위해 박요한 오빠를 섭외하게 된 크리티컬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다. 그때 우리 건방지다고 참 욕을 많이 먹었는데 당시 주철환 PD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셨던 느낌적 느낌이 있다. 


우리는 본선에서 '대상'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어 우리를 도와줬던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었다. 당시의 인연으로 동물원 유준열 님께서 우리의 1집*도 제작해 주신 바 있다. 결과는 상당히 안 좋았지만 말이다. 하핫.  (*1집의 음악 리스트)


이 농도 짙은 경험을 같이 한 A, B, C와는 잊지 않고 간간히 만나오고 있다. A는 작곡 쪽에서 상당히 유명세를 가지고 있고, 그 외 멤버들과 나는 평범하게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오늘 만나 우리는 옛이야기로 재미지게 놀았다. 예전에 누구누구가 기분 나쁘게 우리를 깠네, 누구랑 술을 마셨네, 예전에 그 매니저 오빠는 무서웠네 등등 각자 기억하고 있는 다른 것들을 꺼내놓으며 시시덕거렸다. 별 거 없어도 그냥 제일 편한 애들이다. 이 친구들을 만나면 가장 술을 많이 마시게 되는 묘한 라포rapport가 형성된다. '흑주'라는 술이 한창 유행하던 때에 얘네들과 무지하게 먹고 정신을 못 차렸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오늘은 소중한 인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날이다. 내 인생이 가뭄이라 느껴질 때 단비 같은 이런 인연을 생각하며 위안을 얻는다.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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