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MBC 대학가요제 출전을 회고하며
당시 대학가요제 출품을 위해서는 돌돌 돌아가는 카세트테이프에 음원을 녹음해서 제출해야 했다.
'아.. 그런데 녹음을 당최 어디에서 한당가? 집에서 카세트 테이프에 대고 부르는 건 너무 조잡하고 말이야..'
우린 무작정 대학로로 나갔다.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 녹음할 곳이 보이지 않겠냐며 무계획으로 그냥 나갔다.
'아,, 정말 단순무식.. 그러나 순수했다...'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절박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울랄라 바랄랄라 하다, '학전'이라는 소극장이 눈에 띄었다. 학전 '블루'였고 간판이 파랑이었다. 어쩐지 거기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스물스물 기어 들어갔다. 학전 블루 사무실, 거기에 당도하니 어떤 여자분 한 분이 계셨다. 훗날 그 김실장님께서 우리를 처음 보고 참 순수해 보이고 어쩐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하셨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잘 계시기를 바란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그 값진 추억을 가진 우리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김실장님은 거기 직원분이 아닌데 들르신 것이었고, 우리 이야기를 성의껏 들어주시더나 '누군가'를 소개하여주시는 것이었다! '띠옹~~~!'
알고 보니 동물원 멤버인 '유준열'님이 개인 녹음 스튜디오를 가지고 계셨고, 세상에나 그분에게 우리를 소개해주신 것이다! 지금 생각하여도 비현실적인 드라마 같다.
우린 당시 정말 신문물인 녹음 장비를 만났고, 너무나 질 좋은 음원을 녹음하여 제출할 수 있었다.
이후 참으로 smooth 하게 일이 진행되었다. 당시엔 고마운 줄 모르고 지나갔는데, 인생을 40대 중반 넘어까지 살아오다 보니 당시가 얼마나 수월하게, 그리고 즐겁게 주어졌는지 알겠다. 이후 1차, 2차 심사를 모두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참가자들과의 긴 합숙기간도 아주 흥미진진하게 마포의 모 호텔에서 보낸 후 본선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 MBC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노래를 하는 것이었는데, R&B 아카펠라였던 우리에게 아주 상극으로 안 맞는 것이었다. 보컬이 부각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섬세한 보컬 라인을 다 침범하는 연주였기에 우리는 기백 있게, 건방지게 '저희는 피아노 하나로 가겠다.'며 바락바락 우기며 급히 피아노 연주를 위해 박요한 오빠를 섭외하게 된 크리티컬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다. 그때 우리 건방지다고 참 욕을 많이 먹었는데 당시 주철환 PD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셨던 느낌적 느낌이 있다.
우리는 본선에서 '대상'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어 우리를 도와줬던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었다. 당시의 인연으로 동물원 유준열 님께서 우리의 1집*도 제작해 주신 바 있다. 결과는 상당히 안 좋았지만 말이다. 하핫. (*1집의 음악 리스트)
이 농도 짙은 경험을 같이 한 A, B, C와는 잊지 않고 간간히 만나오고 있다. A는 작곡 쪽에서 상당히 유명세를 가지고 있고, 그 외 멤버들과 나는 평범하게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오늘 만나 우리는 옛이야기로 재미지게 놀았다. 예전에 누구누구가 기분 나쁘게 우리를 깠네, 누구랑 술을 마셨네, 예전에 그 매니저 오빠는 무서웠네 등등 각자 기억하고 있는 다른 것들을 꺼내놓으며 시시덕거렸다. 별 거 없어도 그냥 제일 편한 애들이다. 이 친구들을 만나면 가장 술을 많이 마시게 되는 묘한 라포rapport가 형성된다. '흑주'라는 술이 한창 유행하던 때에 얘네들과 무지하게 먹고 정신을 못 차렸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오늘은 소중한 인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날이다. 내 인생이 가뭄이라 느껴질 때 단비 같은 이런 인연을 생각하며 위안을 얻는다.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