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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은영 May 16. 2023

[책을 써보기로 한다] 내 세상 지어 올리기 1

엄마 여성에게 '잘' 사는 것이란

70년대 후반에 출생하고 90년대 초반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대학에 ‘잘’ 가면 되는 것이고, 목표로 한 대학에 간 이후로는 괜찮은 직장에

‘잘’ 가면 되는 것이었다. <사람이 ‘잘’ 산다>의 ‘잘’에 개인의 건강과 안위 또는 행복의 개념이 충분히

결합하기 전이었다. 다양한 기준들의 결합에 의해 만들어지는 복합적인 행복의 맥락이 ‘잘 산다’에 포함

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기득권을 가

진 집단에 의해 정해진 기준에 의해 ‘잘’ 사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정해져 오다 최근 몇 년 사이 비로소

‘나다움’, ‘자기 계발’, ‘자기 이해’, '자기 긍정', '퍼스널 브랜딩' 등 '나'에 중심 가치를 두는 용어가 등장하

고 그에 관련된 개인의 활동과 비즈니스가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제는 단순히 저 사람 집이 잘 살아

서 부러워하던 세상은 아닌 듯하다. 돈이 많다고 멋져 보이지도 않는다. '나'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지 않으면 앙꼬 없는 찜빵같이 심심하고 금방 잊혀진다. 더이상 자본주의 게임에 의해 사다리를

바락바락 기어 올라가기 위한 노력이 절대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우리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물론 만인의 이해관계를 충족시켜주는

만족스러운 시스템이 되는 것과는 별개이다. 적어도 입장과 상황의 다양성을 포용하려고 노력하는

정신이 성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SNS 상에서 펼쳐지는 자유로운 표현들로 매우 다채로운,

또한 예기치 않은 시사점이 수시로 던져지고 있어 사회현상에 대한 저마다의 시각을 셋업하는 데 쓰일

소스가 무궁무진하다.


이처럼 과거에는 다루어지지 않던 영역들이 다루어지는 것은 숨겨져 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구체적으로 보여지고, 문제라고 인식되지 않았던 것들이 해결 대상으로 상정된다는 의미이므로 성숙의

잠재력이 점차 키워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사회구성원 각자가 저마다 생각하는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이 다양해져 그에 따른 담론도 많아졌다. 그것은 '맞다. 또는 그르다.'로 분류할 수 없고 각자의 삶의

방식이 존중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세대별로 보자면 MZ세대는 ‘공정’과 ‘정의’의

가치에 가장 큰 비중을 두며, 삼사십대는 경제적 안정뿐만 아니라 ‘나답게’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한 가치

로 내재화되어 돈의 사용처가 다변화되었다. 오륙십대로 가면서는 '제2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매우

구체적으로 하게 되면서 현재 보유한 자본의 배분 양상이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


공적으로 정의되는 복지의 개념은 ‘잘’ 사는 것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 어차피 배정된 예산 수준하

에서 집행되는 항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아래에서부터 부르짖는 ‘잘’ 살기 위한 요건,

그리고 그 요건을 낳는 가치 지향이 오르고 올라 점차 나아지기를 기대해보지만, 특정 가치 지향도 자본

의 권력에 의해 지원받아야 정당화되지 않는가.


그래서일까. 각자 잘 살기 위한 기발한 노력과 실천이 인터넷상에서 요동친다. 어쩜 이렇게 생동하는

에너지가 굴하지 않고 뻗어 가는지 매일 감탄하곤 한다. 각자의 처지에서 필요한 자기 계발 콘텐츠, 각종

‘테크’류 콘텐츠 등이 서로 고개를 내밀며 더 많은 호응을 받고자 치열한 마케팅 전쟁을 치른다. 무엇이

진짜인지 판별하는 과제는 차치하고, 일단 <‘잘' 사는 것>에 대한 개념을 저마다 세우고 그에 따라 다양한

시도들이 터져 나온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더이상 사회의 권력이 정한 ‘잘 사는 것’을 주입받지 않고

저마다 자유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나의 가까이에서 희망적으로 여길 수 있는 ‘잘 사는 법’에 대한 콘

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어 좋은 참고가 되곤 한다. 또한, 자생적으로 함께 모여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이 목격된다.


이러한 흐름은 사회적 실현 욕구 충천한 엄마여성이 현실적인 제약에도 다양한 시도를 해볼 기회를

준다. 개인의 욕구에 따라 육아와 경제활동의 배분을 다양화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경력 공백기 후

기존의 경제활동 시스템에 다시 편입하는 경우, 조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삶의 그밖의 조건을

조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엄마가 자신이 만족할 만큼의 시간을 육아에 투자하고 조금 아쉬울

지 모르나 그래도 만족할만한 시간을 자기계발 또는 경제활동에 투입하고 있다. 삶의 가치는 경제적

수입으로만 계산되지 않고 "내"가 시간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여러 활동이 가지는 유무형 가치들의 총

합이다.


나 역시 더이상 조직에 취직하지 않기로 하고 창업 후 느슨하게 진행하는 중이다. 가능한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기로 하였고 그에 따라 원하는 수입 수준을 그때그때 조절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내 삶을 구성

하는 요소 모두를 규명하여 균형을 위한 방정식을 세울 수는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주요 변수를 계속

관찰하면서 어느 하나가 유난스럽게 튀어 오를 땐 나머지 변수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다시 적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관리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시대’가 와서 다행이다. 자본주의 게임을 즐기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가치에 집중하며 한편으로는 비즈니스 기획을 살짝 가미하여 나아갈 수

있는 장치들이 생겨난 지금이라서 다행이다. 나에게 맞지도 않는 기존의 ‘앞만 보고 달려가’ 식의 돈벌이

에 맞춰 살지 못한다고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끔은 나의 부족함을 합리화하는

발상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삶의 균형의 내 버전이 이렇다면 이런 것 아니겠는가. 함부로 누가 뭐라 할 수

도 없는 세상이라 그것 또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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