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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에 Dec 12. 2020

코로나로 인한 격리생활 14일을 마치며

일상으로의 복귀

한국을 출발하여 중국에 도착한 다음날로 부터, 격리 1일 차로 카운트를 시작했다.

격리 14일 차가 되었고, 오후 4시경에 마지막 절차로 코로나 핵산 검사를 위한 샘플을 채취해 갔다. 샘플 채취는 늘 체온을 체크하던 우주인 복장의 의료진이 직접 격리된 방으로 찾아왔고, 방문 바로 앞에서 의자에 앉은 자세를 취하게 하고선, 코로 샘플봉을 넣어서 채취했다.

사실, 중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 과정에서 거쳐야 했던 코로나 검사를 위한 샘플 채취 때는 ‘코 깊숙한 곳’과 ‘입안 깊숙한 곳’, 두 곳에서 각각 샘플링하였었다. 그때 코와 목구멍에서 전해오는 미묘한 통증의 여진이 잠시 떠올라 걱정을 하던 참이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코 깊숙한 곳’에서만 샘플링하고 끝났단다.

그리고선, 검사 결과에 따라서 내일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참고적으로, 1일에 중국에 도착했다면, 익일인 2일이 격리 1일 차, 15일이 격리 14일 차가 되는 셈이고, 16일 오전에 검사 결과를 최종 확인하고선 목적지로 나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한국에서 연락을 취해오던 지인들이 헷갈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래서 어제 날짜로 다들 고생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었다.


잠시, 지난 14일간의 격리기간을 되돌아본다.

갇힌 공간이라는 심적인 스트레스를 제외하면, 몸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경험상으로 몸과 마음이 따로 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름으로는 스트레스를 관리하려고 큰 줄기의 시간계획을 세워놓고 이행했다. 주로 오전 시간에 줄곧 해오던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했고, 오후 시간에는 스트레칭 등으로 몸풀기와 중국어 공부를 나름 하려 했고, 저녁시간 이후엔 다운로드 해온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는 시간으로 보냈다. 심리적 격리생활을 함께한 가족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챙겼고, 때때로 지인들이 전화나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 와서 나름 세상과 적당한 교류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런데, 중반부를 지난 시점에서 몸이 전하는 알람이 울렸다. 입 안쪽에 작은 수포의 기미가 발견되었다. 이는 평상시 피로가 쌓였을 경우에 몸이 보내던 신호였다. 다행히도 생겨났던 입안 수포는 삼사일이 지난 후에 사라졌다. 그동안은 음식물을 섭취하거나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 작은 수포가 잊지 않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심리적 문제였을까?, 그즈음 해서 수면 패턴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평상시와 격리 중반부까지는 머리만 눕히면 잠에 빠지곤 했던 나에게 수면장애가 발생했다. 뒤척이는 시간이 생겼고, 두서너 번씩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가급적 낮시간 동안의 활동량을 늘리려 했다. 활동이라 해봐야 기껏 해서 좁은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고, 가급적 앉아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하려 했었다.


드디어 중국에 도착한 지 16일이 된 날이 아침이 찾아왔다.

전날 저녁에 짐가방을 모두 정리해 두었던 터라 딱히 아침 일찍 해야 할 것은 없다. 단지 ‘나가도 된다’는 전화가 오기만 기다리면 되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9시에 픽업해줄 사람이 오기로 했고, 나가서 지낼 숙소도 확정해두었다.

9시 반쯤 전화벨이 울렸고, ‘나가도 된다’는 더없이 반가운 메시지다. 14일 동안 방문을 열고 나설 수 없었던 곳을 나서 다른 세상으로 발길을 내딛는다.

광저우의 날씨는 ‘최고 25도, 최저 17도’이고, 올려다본 이 곳의 하늘은 맑고 청명하기만 하다. 차량에 올라, 최종 목적지인 후이저우로 중국에서의 삶을 향해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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