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출시된 영화 <스티브 잡스>에는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논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워즈니악은 잡스가 어떻게 천재라고 불릴 수 있는지 묻는다. "넌 뭘 하지? 넌 코딩을 못해. 넌 엔지니어가 아니야. 넌 망치로 못질도 못해." 이어서 말한다. "내가 회로를 설계했어. 그래픽 인터페이스는 훔친 거야. 넌 뭘 하지?" 그러자 잡스가 대답한다. "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그러고, 너는 음악가야. 네가 앉아 있는 줄에서 네가 최고지."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가 '천재성을 발휘한 분야는마케팅과 디자인'이라고 평가한다. 워즈니악은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고 그 회로도를 아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다. 잡스는 이것을 보고 팔자고 제안하며 동업을 시작했다. 잡스는 플라스틱을 사다가 워즈니악이 만든 회로도를 보호하고 모니터를 연결해서 일체형 컴퓨터를 만들었다. 동업 초기 잡스의 주요 업무는 기술이 아니라 영업이었다. 그 후 잡스는 픽사로 애니메이션 기술을 혁신하고, 애플로 돌아와서 아이팟, 아이폰, 에어패드를 만들었다. 잡스는 제품 개발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엔지니어들이 '안된다'고 대답하는걸 거부했다. 사용자 입장에서 가장 편리한 제품을 디자인하고 그것을 엔지니어들이 만들어 내도록 영감을 줬다. 잡스는 혁신을 지휘하는 CEO였다. 그의 말대로 그는 우주에 흔적을 남겼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일자리를 위협받을 가능성이 가장 낮은 직업으로 CEO가 꼽힌다. CEO의 중요한 과업은 비전을 제시하고, 회사의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회사의 얼굴로 대내외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일이다. 잡스는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 보며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전략가였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세부적인 일을 능숙히 잘 처리하는 전문가보다 전략가가 더 필요할 것이다.
최적화문제도 풀어주는 인공지능
나는 마케팅을 공부했었다. 마케팅이란 말이 흔히 쓰이면서 마케팅은 '광고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마케팅은 광고, 커뮤니케이션, 제품, 유통, 가격, 경영전략을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분야다. 마케팅은 심리학과 통계학을 토대로 한다. 최근에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면서 통계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경영에 대한 지식을 넓히기 위해 제조업 생산관리도 독학했다. 생산관리에서도 마케팅에서 배웠던 통계지식을 중심으로 관리한다는것이 흥미로웠다.
다음은 이익이 최대가 되는 생산비율을 알아내는 최적화 문제이다.
출처:- 새태 http://saetae.marketing
최적화문제는 재고관리, 주문, 유통경로설등 경영의사결정에 넓게 쓰이기 때문에 쓸모가 많다. 고차원적인 수학계산이 필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계산기가 있다면 낫겠지만 그래도 반복은 피할 수 없다. 다행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셀이 있다면 이 문제를 간단히 풀 수 있다. 엑셀에서 '해 찾기'기능을 추가하고 변수만 입력하면 계산된다.
데이터분석전문가 실기 시험을 치르다가 이 문제가 나오길래 반가웠다. 그러나 문제를 풀려고 하자 짜증이 올라왔다. 엑셀로 하면 간단한 것을 언제 다 코딩하라고 이런 문제를 내는 걸까 싶었다. 시험장에서는 엑셀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제대로 풀지 못했다. 시험이 끝나고 엑셀로 푸는 방법을 브런치에 올렸다.(https://brunch.co.kr/@saetae/139)
1970년대부터 휴대용 전자계산기가 널리 보급되었다. 최근의 전자계산기는 고차 미적분을 계산하고 그래프를 그려준다. 더 간단한 방법은 스프레드시트(엑셀)를 사용하는 것이다. 엑셀은 비즈니스 문제에 특화되어 있어 직장인들이 꼭 알아야 할 지식이 되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엑셀마저도 구식이 되고 있는 듯하다. 최적화문제는 엑셀에서 몇 가지 변수를 선택해야 하는데 인공지능은 문제만 입력하면 답을 내놓는다. 아래 그림은 위의 문제를 구글의 인공지능 제미나이(gemini)에 물어본 결과다.
최적화문제를 인공지능이 이렇게 쉽게 풀어주는 것을 보면 허탈감이 든다. 인공지능이 다 해주면 애써서 공부하고 지식을 익힐 필요가 있을까? 생산관리를 하던 사람은 직업을 잃게되지 않을까?
호모 프롬프트의 시대
인공지능이 화두가 되며 지난 몇 년간 코딩 교육이 각광받았다. 기초 코딩을 6개월만 배우면 인공지능 회사에 취업할 수 있다는 학원들이 성행했다. 시대에 뒤처질까 두려운 직장인들이 코딩을 배웠다. 그러나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나온 후, 프로그래머는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직업으로 예측된다. 프로그래머가 하루 종일 코딩을 해도 실제로 쓸 수 있는 코드는 약 100줄 정도다. 챗GPT를 이용하면 단번에 100줄을 코딩하고 그것을 검토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일 하면 기존에 2~3명이 하던 일을 1명이 할 수 있게 된다. 2022년 오픈 AI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코파일럿이라는 도구를 공개했고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졌다. 한 분석에 따르면, 프로그래머들이 이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코딩을 55% 빨리 해내고 있다.
챗GPT-2가 공개되었을 때 프롬프트에 '백인 남성이 하는 일은'이라고 입력하면 "경찰관, 판사, 검사"이란 말이 자동 완성 되었다. 같은 프롬프트에 단어를 '흑인'이라고 바꾸면 "포주, 매춘부"와 같은 말들이 이어졌다. 인터넷에 떠도는 악플을 학습하여 생긴 결과이다. 챗GPT-3는 독이 될 수 있는 응답을 제한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응답품질은 프롬프트에 어떤 질문하는지에 달려 있다. 프롬프트는 모니터에서 사용자의 질문을 기다리는 표시를 말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거부감 없이 기술을 잘 활용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형으로 '호모 프롬프트'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말을 이해하여 원하는 스타일로 그림을 그려주고, 감성적인 시를 쓰고, 수학적 경영문제를 풀어준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에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유능한 인재가 될 것이다.
전문가가 되려는 노력
1903년 창업한 포드는 제조업 혁신을 일으켰다. 비법은 '표준화', '분업', '전문화'였다.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을 잘게 쪼개고 표준화했다. 한 사람은 한 가지 일에만 집중했다. 한 사람은 하루종일 차 문에 나사를 조이고, 다른 사람은 하루종일 타이어를 조인다. 이런 시스템은 자동차 1대를 조립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평균 750분에서 93분으로 단축시켰으며, 1908년에는 60분에 1대, 1914년에는 무려 24초에 1대가 만들어질 정도로 개선됐다. 생산성이 8배 향상된 것이다. 포드의 시스템은 '전문가'시대를 열었다.
인공지능이 가장 대체하기 쉬운 일이 '표준화', '분업', '전문화' 되어 있는 과업이다. 규칙이 명확하고 반복되는 일은 인공지능을 만들기 쉽다. 인간 지능은 연산력과 메모리에 한계가 있는 것과 달리 인공지능은 한계가 없이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인간처럼 지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간처럼 나사를 조이고, 타이어 압력을 체크하고, 테스트에 확인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만들기 어렵다. 인간과 같은 범용 인공지능을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라고 한다. AGI은 인공지능의 최상위단계로 아직은 갈길이 멀다. 우리는(인간) 인공지능 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일을 해야 한다.
201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가장 섹시한 직업 1위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뽑았다. 수학적 지식을 배경으로 코딩을 해서 알고리즘을 만드는 직업이 가장 유망하다고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판사, 변호사, 의사도 인공지능에게 밀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중국에서는 인공지능이 쓴 판결문의 완성도가 70%에 달한다고 평가하였다. 인공지능은 인간 변호사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양의 판례를 다 분석할 수 있다. 환자의 사진을 보고 암을 판단하는 일에서 최고의 의사보다 인공지능의 정확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들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유망하다. 판사가 하는 일은 판결문만 쓰는 것이 아니며, 변호사가 아는 일은 판례만 읽는 것이 아니며, 의사는 암 사진만 판독하지 않는다. 이들은 의뢰인이나 환자의 독특한 상황을 이해하고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도록 돕는 광범위한 일을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은 전문가이다. 질문으로 시작해서 올바른 질문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사람은 전략가이다.
장인, 전문가, 전략가
포드 이전에는 자동차 제조의 처음부터 끝까지 두루두루 잘하는 '장인'이 있었다. 그러나 장인보다는 하나만 잘하는 전문가가 생산성이 높았다. 모든 사람들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에는 협소한 분야의 전문가는 인공지능에 대체될 위험이 크다. 넓은 분야에 지식을 갖추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 애플이 설립된 후 워즈니악을 대체할 수 있는 고급 기술 전문가는 여러 명 채용했다. 그러나 잡스와 같은 전략가는 대체가 어려웠다. 잡스를 쫓아낸 애플은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잡스가 CEO로 복귀한 후 지금의 애플이 되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은 전문가이다. 질문으로 시작해서 올바른 질문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사람은 전략가이다. 인공지능은 전문가는 될 수 있지만 전략가가 되긴 어렵다. 인공지능을 조화롭게 사용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성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