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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의 수도자 Jan 09. 2024

카리스마 있는 창업가의 나쁜 리더십

리더십, 셀프 마케팅, 혁신

미국에서 '드롭아웃'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는 대학을 중퇴한 한 창업가의 드라마틱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2023년 5월 이 창업가는 초대형 사기극을 벌인 혐의로 11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어떻게 이 젊은 창업가는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있다는 실리콘밸리, 월스트리트, 미국 정부를 다 속일 수 있었을까?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창업가

2003년 19세였던 엘리자베스 홈스는 스탠퍼드를 중퇴하고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10대 때 잠을 줄여가면서 공부를 하였다. 중국어를 잘해서 대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는 대학 수업을 예외적으로 허락받아 청강하기도 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총명한 학생이었다.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한 홈스는 1학년 때 싱가포르에서 보건의료 봉사활동을 하였다. 당시 동남아에는 사스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유행이었고 그녀는 면봉으로 후강을 비벼서 시료를 채취하는 일을 도왔다.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직접 발명을 한 많은 성공적인 창업가의 이야기처럼 그녀는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 그녀는 피 한 방울로 통증 없이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비전으로 회사를 세웠다. 회사를 세우자마자 실리콘 밸리의 투자사로부터 600만 달러(약 70억 원)라는 큰 돈을 투자 받았다.

    그녀의 첫 아이디어는 팔에 패치를 붙이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최고의 엔지니어를 고용한 이후 그것은 불가능한 걸로 밝혀졌다. 그녀는 패치를 포기하고 카트리지라는 좀 더 현실적인 방안으로 돌아섰다. 당뇨병 환자들이 매일 혈당을 검사하는 것처럼 손가락 끝에서 소량의 피를 얻고, 그 결과를 서버로 보내 연구실에서 분석한다는 개념이었다. 그녀는 박사학위를 받은 엔지니어들을 고용해서 '에디슨'이라는 로봇을 개발하고 그것을 축소한 '미니랩'이라는 장치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장치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엔지니어들은 피를 더 많이 채혈하면 장치를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으나 그녀는 피 한 방울을 고집하였다. 삼성전자와 라이벌 TSMC는 더 작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나노 기술에서 경쟁하고 있다. 반도체는 작을수록 전력을 적게 소비하면서, 안정도와 속도는 올라간다. 그러나 피검사는 빅데이터와 같다. 피의 양이 많을수록 정확해진다는 뜻이다. 테라노스는 검사 의뢰가 들어오면 희석해서 양을 늘리고 지멘스의 장비를 이용하는 속임수를 썼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투자를 받아냈다. 혁신이 없는 걸 숨기기 위해 그녀는 공포와 통제로 회사를 운영하였다. 새로 들어온 직원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의를 제기하면 곧장 해고하는 식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능한 변호사도 고용하였다. 직원들에게 기업비밀 유지 계약서를 들이밀며 사인을 하게 하고 이것을 무기화하였다. 유능한 직원은 사기 행각을 알고 떠났고 무능한 직원들만 남으며 점점 혁신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테라노스에서 초기에 제품을 개발을 하고 특허를 냈던 수석 과학자 이언 기버스는 압력을 못 이기고 자살을 했다. 리처드 퓨즈와 같은 잠재적 경쟁자는 테라노스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수십억씩 법률 비용을 들다가 결국 무릎 꿇었다.

    2011년 홈스는 약국 체인점인 월그린과 제휴를 맺었다. 체인점 점포마다 테라노스의 장비를 들여놓고 즉석에서 피검사를 한다는 아이디어였다. 월그린의 의료장비 전문가는 테라노스가 정말 기술을 갖췄는지 깊은 의심을 했지만 월그린의 경영진은 무시하였다. 그들은 홈스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미국 국방부 4성 장군인 매티스까지 홈스에게 설득당한 상태였다. 매티스는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장병들의 건강을 위해 홈스의 장비를 쓰도록 지시하였다. 하지만 국방부의 의사였던 슈메이커 중령은 테라노스의 기기가 법적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홈스는 매티스 장군에게 불만을 털어놓았고 슈메이커 중령은 장군에게 호출당하여 질책을 당하였다. 테라노스의 장비는 기준미달이었기 때문에 국방부에 납품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스는 국방부에 납품하고 있다고 홍보하며 혁신의 근거로 사용했다.

    2013년 테라노스는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떠오르는 기업으로 소문이 났다. 포춘은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를 40억 달라로 평가하였다. 홈스는 회사 지분의 50%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단번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사무실에 방탄 유리를 설치하고, 5명이 넘는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혁신이 전혀 없었지만 테라노스에는 투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저명인사들이 앞다투어 테라노스를 위대한 기업이라고 증언하였다. 창업가 홈스의 강력한 카리스마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홈스의 리더십 자질들

창업가가 '확고한 신념으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경쟁심을 발휘한다'면 어디서든 환영받을 것이다. 홈스는 이 자질들을 바탕으로 성공한 사람이란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고, 이 이미지는 더 큰 돈과 저명인사의 보증을 끌어들였다.

1. 위대한 비전

테라노스의 이사회는 미국의 명망있는 정치인이 포진해 있었다. 국무장관이었던 조지 슐츠, 냉전을 종료하는데 기여한 헨리 키신저가 있었다. 트럼프 정권에서 다시 국방 장관이 된 매티스 장군도 이사회에 들어왔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인 보이스도 이사회에 있었다. 보이스는 의뢰인에게 한 시간당 1000달라의 보수를 청구한다. 이 저명한 인물들은 의료장비나 유체공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이 인물들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런 인물들이 이사로 있는 회사에 문제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 기사를 썼고, 포춘에서는 홈스의 사진을 잡지 표지에 실었다.

    이 인물들이 홈스에게 빠져든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비전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바늘 공포증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피 한 방울로 수백 가지의 질병을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홈스는 테라노스의 장비를 미국 내 모든 가정에 보급하겠다는 미래를 제시했다. 누구도 아픈 사람이 제때 질병을 발견하지 못해서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성공한 인물들일수록 돈과 명예가 있어도 건강하지 않다면 소용없다는걸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홈스의 비전에 크게 공감했다. 홈스는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설득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2. 낙천주의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와 같은 실리콘 밸리의 전설들은 모두 20대에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을 했다. 홈스도 스탠퍼드 대학을 중퇴했다. 실리콘밸리의 한가운데 있는 스탠퍼드를 졸업하면 세계적 테크 기업에 직행하는 걸로 유명하다. 홈스가 스탠퍼드를 중퇴한 것은 전설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녀의 자신감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홈스의 영웅은 스티브 잡스였다.  2011년 10월 스티브 잡스가 죽고 곧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가 나왔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전기이다. 홈스는 잡스의 전기를 읽고 잡스의 흉내를 냈다. 터틀넥을 입고 케일 셰이크를 즐겨 마셨다. 그리고 잡스가 자신의 우상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혁신의 대명사인 잡스는 안된다는 대답을 거부했다. 잡스는 멋진 제품을 상상하고 엔지니어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을 이끌었다. 홈스도 안된다는 말을 거부했다. 또한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요다의 말을 자주 써먹었다. '하든지 말든지야, 해보겠다는 것은 없어'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는 낙천주의는 창업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3. 경쟁심

맥도널드 형제로부터 사업과 이름까지 빼앗은 레이 크록은 '비즈니스는 쥐가 쥐를 잡아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 크록은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것은 재능이나 교육이 아니며 투지'라고 주장했다. 사업뿐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경쟁심은 성공으로 향하는 중요한 자질 중 하나 일 것이다. 그러나 경쟁심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홈스는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잘 작동하지 않는 테라노스의 장비 대신 지멘스의 장비를 이용하는 속임수를 썼다. 정치권에 만든 인맥으로 FDA의 인허가를 회피했다. 회사 내의 양심 있는 직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해고했다. 테라노스가 진짜 기술을 가진 것인지 의심하는 기자는 미행을 시키고 고소로 협박했다.

    경쟁이 혁신의 원천이라고 보는 것이 자본주의이다. 미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공정거래법을 만들었고 경쟁을 장려한다. 홈스의 경쟁심은 성공할려는 투지로 보였다.

아름다움은 피부 한 꺼풀에 불과하지만, 추함은 뼛속까지 파고 든다.
-도로시 파커
일레자베스 홈스와 테라노스


기업이 할 일은 마케팅과 혁신

나는 한 창업 경진 대회에서 사람들이 이미지 메이킹하는걸 보았다. 한 고등학생 참가자는 본인이 전교회장이라고 말하면서 밤 11시에 회의를 해야 한다며 노트북을 들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사업가라는 다른 한 명은 자신이 창업진흥원 원장과 친해서 진흥원에 컨설팅을 가끔 해준다면서, 내일 아침 6시에 뉴욕과 화상회의를 해야한다고 과시하는걸 들었다.(내가 아는한 창업진흥원은 그렇게 운영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이미지를 꾸며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창업 관련 기관에서 누군가 '창업가는 반드시 사기를 당한다'라고 주장하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사업을 하려고 좋은 거래를 찾다보면 그만큼 사기를 당하기도 쉬워진다.

    겉모습을 꾸미고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마케팅의 일부이다. 마케팅 노력의 핵심은 좋은 인상을 만들고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케팅은 사기가 아니다. 마케터는 약속한 것을 고객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홈스가 흉내 냈던 잡스도 인격적으로는 그렇게 훌륭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잡스는 매우 냉정하고 거침 없는 말과 행동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잡스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현실 왜곡의 장이 일어난다고 한다. 홈스는 잡스 만큼 사람들을 설득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사업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마케팅과 혁신'이다. 홈스는 혁신을 일으키려고 애쓰는 잡스의 기업가 정신은 따라 하지 않았다. 홈스는 안에서는 직원들이 자신에게 충성하도록 만드는데 히스테리적으로 집착하고, 밖에서는 성공적인 사업가 이미지 만들기에만 집중했다. 그녀는 전직 장관과 장성을 이사회로 끌어들이고, 오바마 정부의 행사에 초청 받아 강연하고, 포춘 잡지의 커버를 장식하며 성공한 듯 했다. 그러나 혁신이라는 기업의 알맹이가 없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홈스가 진짜 혁신을 일으키는데 집중했더라면 그녀가 제시한 비전의 일부라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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