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안 Oct 12. 2022

100km를 달리며 내가 배운 것들 1

 

 10월 9일 새벽 5시100km 트레일 러닝 대회를 완주했다. 하루 전 새벽 6시에 출발했으니 23시간 만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자원봉사자가 주시는 어묵을 한 그릇 먹고 호텔까지 혼자 터벅터벅 걸어왔다. 500미터 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오르막길이고 힘들어서 중간에 한번 쉬었다. 호텔에 들어와 현관 앞에 주저앉아서 젖은 옷가지들과 흙투성이의 신발을 벗어서 대충 정리했다. 샤워실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을 틀었다. 다리 근육통 때문에 욕실 바닥에 앉아서 물을 맞아보았으나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다. 대회를 뛰기 전에 기대했던 성취감은 없었다. 회복을 위해 빨리 침대에 들어가야 했다.

 


10월 7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해서 버스를 한 시간 반 타고 서귀포에 도착했다.  작년에도 이 대회에 참가했었고 일주일 동안 있었기 때문에 이곳 지리가 익숙했다. 작년에 머물렀던 바로 옆 호텔로 잡았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둔 다음 곧장 가까운 이마트로 걸어갔다. 대회를 위해 방수재킷, 양말, 모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저렴한 것을 사려고 했다.  막상 가보니 딱히 방수재킷을 찾기 어렵고 가격도 비싸고 품질은 안 좋아 보였다. 살까 말까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다가 포기했다. 등산 양말만 몇 켤레 사고 나왔다. 작년에는 50km 대회를 뛰었다. 11월 달이라 더 추웠고 한라산 정상에서 약간의 빗발이 내려서 춥긴 했지만 1시간 정도 참고 뛰니 곧 고도가 낮아져서 괜찮았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길 기대했다. 이마트 옆 대회장에 등록하러 가보니 사람들이 많다. 작년에는 450여 명이 참여했었다. 나는 50km를 7시간 20분에 완주하고 상위권으로 들어왔었다. 장비 검사를 받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비행기를 타느라 피곤했기 때문에 대회를 위해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살짝 잠이 들었다가 깨었다. 더 잘 수 없어서 휴대폰으로 날씨를 보았다. 비가 많이 올까 봐 걱정이었다. 일기예보로는 오전에 이슬비가 몇 시간 내리는 정도였다.


 10월 8일 대회날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어제 준비해둔 밥을 데워서 먹었다. 긴장을 했던 것인지 한밤 중에 잠이 깨서 몇 시간 동안 잠에 들려고 노력했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랑 비슷하겠지 하며 마음을 다 잡고 경기장으로 내려갔다. 혹시나 해서 화장실을 한번 더 갔으나 헛일이었다. 6시가 되고 50km에 참가하는 700명과 100km에 참가하는 200명이 한꺼번에 출발하였다. 작년에는 50km 달릴 때는 후발주자로 출발해서 처음 2시간 동안 200여 명 정도를 앞질렀고 몸이 가벼웠다. 올해는 그럴 수 없을걸 알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천천히 뛰었다. 오르막길이 약간이라도 나오면 곧장 걸었다. 50km 선수들도 같이 뛰었기 때문에 나를 앞질러가는 사람들은 50km 선수들이겠지 하며 나는 멀리 가야 하니까 내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했다.

 시작한 지 3시간 20분이 지났을 때 CP2에 도착했다. 작년보다 20분 늦은 기록이었다. 한라산 영실코스로 여기부터 고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첫 번째 어려운 구간이다. 이때부터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컨디션은 괜찮았고 오늘 밤 12시까지 완주할 수 있을 듯했다. 물을 채우고 당 함량이 높은 과자들을 집어먹고 바로 출발했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올라가던 사람들이 멈춰서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나는 방수재킷이 없었다. 대회 주최 측에서 방한용품을 챙기라고 두 번이나 문자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나는 무시했다. 이 고비만 잠깐 넘기면 될 것 같았다.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산 위로 올라가자 바람은 더 세게 불었다. 몹시 추웠다. 상대편에서 걸어오는 관광객들은 모두 비옷을 걸치고 있었다. 비바람을 맞으며 드디어 어리목 방향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돌밭이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여러 명 따라잡았다. 작년에 현무암 길을 한번 뛰어봤기 때문에 요령이라도 생긴 듯싶었다. 완주를 목표로 하긴 했지만 다른 선수들을 앞지를 때의 우쭐해지는 기분은 여전히 있었다. 내려가는 길에도 추위는 점점 심해졌다. 팔이 시려서 등 뒤로 갖다 대고 체온을 유지하며 뛰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내려가자 CP3에 도착했다. 이제 30km 왔는데 포기하고 싶었다.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물을 채우고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 앉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밖으로 나가 비 맞는 것이 두려웠다. 앞으로 CP4까지는 거의 평지였기 때문에 최대한 뛰어야 하는 코스이다. 처음 10분 정도는 뛰면서 앞에 가는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추위로 인한 고통은 커져갔다. 나는 팔짱을 끼었다가 등 뒤로 팔을 넣었다가를 반복하며 체온을 높이려고 애쓰며 걸었다. 내가 앞질렀던 사람들은 다시 하나 둘 나를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10 킬로면 천천히 뛰어도 한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한참이나 시간이 더 걸려서 CP4에 도착했다. 머리부터 신발 안까지 다 젖어 있었다. CP4에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은 드롭 백을 받아 옷을 갈아입고 죽을 받아먹었다. 나도 죽을 받았는데 손이 떨렸다. 체온을 높이기 위해 뜨끈한 죽을 먹는데 손가락이 제대로 안 움직였다. 자원봉사하시는 분이 나를 발견하고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저체온증이라고 말했다. 오한과 과호흡, 신체기능 저하 등 저체온증 증상이었다. 스포츠지도자 자격증이 있고 해외 고산지대 등산도 해봐서 저체온증에 증상을 대략 알고 있다. 저체온증이 심해지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고 판단력까지 저해된다. 아직 그 정도에 중증은 아니었지만 몸은 경직돼 있었다. 자원봉사자가 종이컵에 뜨거운 꿀물을 타 왔다. 그걸 마시려니 손이 덜덜 떨리는 바람에 다 쏟았다. 자원봉사자가 재킷과 패팅을 걷어와서 덮어주었다. 의자에 앉아서 옷을 세 겹을 껴입고 웅크렸다. 호흡이 거칠었다. 심한 멀미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선수가 들어와서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말을 하는데 대답하기 싫었다. 몸을 움직여야 춥지 않다면서 움직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네가 한번 저체온증 걸려봐라' 싶었다. 그리고 그 선수는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어서 아주 저체온증 걸리고 난리 났다며 큰소리로 통화를 했다. 잠시 조용해서 그 선수는 갔나 싶더니 나에게 하얀 알약을 하나 들이밀었다. 이게 뭐냐고 물었다. 타이레놀이었다. 나는 거절했다. 약을 안 좋아한다고 말했다. 진짜로 나는 약을 안 좋아하고 평소에도 아프면 앓아눕는 편이다. 어떤 책에서인가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항생제, 소염제, 제산제를 먹지 말라고 하는 글을 본 적 있다. 그리고 저체온증에 타이레놀이 효과는 없을 것이고 부작용만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약 먹기를 거부하자 그 선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탄식했다. 나를 챙겨주시는 자원봉사자는 계속 도와주시면서 혹시 이런 대회가 처음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나는 작년에 이 대회에서 50km를 뛰었다고 말했다. 그것도 상위 10% 정도에 해당하는 등수였다고 덧붙이는 말이 혀 끝까지 올라왔으나 참았다. 궁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시간쯤 웅크리고 앉아있었던 거 같다. 몸이 떨리지 않았다. 완주하고 싶었다. 자원봉사자는 입술색이 돌아오긴 했지만 계속 뛸 수 있겠냐고 걱정하셨다. 그리고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말하셨다. 나는 옷과 신발을 갈아 신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일회용 비닐우비를 하나 받았다. 핫팩도 2개를 받았다. 자원봉사자께 너무 감사했다. 땀과 비에 젖어 더러워진 내 몸으로 재킷을 빌려 입었으니 옷이 더럽혀져서 미안했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천막 밖으로 나오며 완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더라도 백록담을 넘어 다음 CP5에서 포기하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우비를 입어서 춥지 않았다. 40km를 달린 상태에서 다시 한라산 정상을 한번 더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선수들한테 부담이 큰 코스에 시작이었다.


  미리 준비했어야 할게 너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보고 배웠어야 했다. 영리하지 못하니까 항상 몸으로 배운다. 대회 때 음악을 들으려고 이어폰을 두 개 준비했다. 배터리가 5시간 밖에 안 가기 때문에 하나는 오전에 듣고 다른 하나는 오후에 들을 계획이었다. 오전에 한라산 올랐을 때 음악을 듣다가 첫번째 이어폰 한짝은 나무다리 사이로 떨어뜨려 잃어버렸다. 다른 한쌍의 이어폰은 갖고 있지만 꺼내기가 귀찮다. 음악을 들으며 즐길 기분이 아니다. 연습이 부족했다. 작년에는 대회 전에 계단 오르기 연습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오르막길에서 사람들을 다 따라잡았었다. 이번에는 대회 한 달 전에 추가 접수를 했다. 한 달 밖에 달리기 연습을 안 했다. 계속해서 나오는 계단을 오르다 보니 또다시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간다. 다른 사람들이 다하는 대로 방수재킷이라도 준비했더라면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았고 조금 더 빨리 움직였을 텐데,... 처음에는 자책하다가 이윽고 미움이 올라왔다. CP4에서 나를 챙겨주시던 자원봉사자가 이런 대회 처음이냐는 말이 떠올랐다. 난 그런 초보가 아니다고 항변할걸 싶었다. 생각이 너무 많다. 올바른 생각을 할 만큼 머리가 맑지 않다. 지금은 그냥 올라가는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백록담에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가파라지고 다시 강한 비바람이 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이 산을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시계를 보았다. 오후 4시가 넘었다. 정상에 오르자 비옷을 입고 있어도 몰아치는 바람때문에 팔이 시렸다. 짙은 비바람에 30미터 앞이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우비 모자가 벗겨지지 않도록 손으로 잡고 걸었다. 이곳에서 오래 있으면 또다시 저체온증에 걸릴 듯했다. 백록담이라는 표지가 보였다. 처음 와보는 백록담이지만 분화구는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는데 비바람이 문제였다. 나와 걷는 속도가 비슷한 두 사람과 같이 걸었다. 바람은 오른쪽 방향에서 부는 듯했고 나는 다른 두 사람 왼쪽 약간 뒤에 붙어서 걷기 시작했다. V자로 대형을 만들어 날아가는 새떼들은 뒤에 있는 새들이 공기의 저항을 덜 받아 리더보다 20%의 에너지를 덜 쓴다. 달리기선수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리더를 쫓아갈 때 페이스 조절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기 때문에 중장거리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 바로 뒤에서 쫓아가다가 마지막에 질주해서 앞지르는 전략을 쓰는 게 흔하다. 다소 교활하고 영리해 보이는 이 전략으로 다른 사람들 뒤에 붙어 간 것은 아니다. 살아서 내려가고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 체력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