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40km, 포기하면 고통은 멈추지만 후회가 남는다
저녁 6시 10분 CP5에 도착했다. 비가 오고 흐린 탓에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한라산을 두 번 올라갔다 내려왔기 때문에 힘든 코스는 끝났다. 남은 40km는 비교적 평탄한 코스였다. 라면을 하나 받아서 몸을 녹이려고 실내로 들어갔다. 발목이 많이 아팠다. 길이 젖어 있어서 하산하는 길에 발목이 여러 번 꺾였다. CP4에서 갈아 신은 신발은 이미 다 젖어 있었다. 옆 사람에게 신발 안 젖었냐고 물어보니 방수가 된다고 했다. 라면을 먹는데 맛은 알 수 없었다. 한라산을 내려올 때 봤던 여자분이 들어왔다. 백록담에서 발을 다쳤다고 한다. 경기 포기를 선언했다. 대회 관계자는 차가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해드 랜턴을 머리에 쓰고 켜보았다. 밖으로 다시 나오는데 갑갑했다. 젊지도 않은데 왜 사서 고생을 한단 말인가?
시작하자마자 한라산 둘레길로 들어갔다. 길은 비교적 평탄했다. 대회 종료시간은 내일 오전 11시 이기 때문에 이제 걷기만 해도 완주할 수 있었다. 발목이 아파서 걷기로 했다. 어두웠고 땅은 질척거렸다. 혼자였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대회 준비를 하겠다고 몇 주전 치악산으로 새벽 등산을 갔었다. 새벽 4시에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는데 해드 랜턴을 두고 와서 핸드폰 불빛을 켜고 걸었다. 칠흑같이 어둡고 바람이 많이 불고 아무도 없는 산길로 들어가는 길은 께름칙했다.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 핸드폰 불빛을 비춰보기를 몇 번 했다. 산속에서 동물을 만나는 것보다 사람을 만나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다음 CP6까지는 11킬로였다. 중간에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 나왔다. 내 뒤에서 두 명의 건장한 남성이 뛰어서 앞질러갔다. 이제는 사람들이 앞질러가도 당연한 걸로 여겨졌다. 빠른 걸음으로 걸었지만 도통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 보니 보름달이 떠 있었다. 구름이 끼어있었는데도 보름달은 밝았다. 숲 속이 아니라면 해드 랜턴 없이 보름달에 의지해서 걸어갈 수 있을 듯했다. 시계는 보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었는데 CP6에 도착했다. 이동식 가스난로가 있어서 몸을 녹였다. 의자에 선수들 10명 정도가 모여 있어 나도 들어가 앉았다. 선수들 대부분은 최소 45살 이상인 것 같았다. 마라톤 동호회에는 중년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100km 대회에 이렇게 중장년이 많을 줄은 몰랐다. 옆 사람에게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이제는 걷지도 못하겠다고 했다. 나와 같은 상태인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CP7으로 향했다. 다시 고도를 300m 정도 높여야 한다. 평소대로였다면 작은 뒷산에 가볍게 올랐다가 내려오는 높이였다. 다리는 무거웠다. 느렸지만 쉬지 않고 올라갔다. 왼발 오른발 끊임없이 반복했다. 이번에 올라가도 내려갔다가 다음 CP8에서 한번 더 올라가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사는 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 반복이지 하며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려고 했다.
매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해서 새로울 것이 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6시가 되면 퇴근한다. 그렇게 며칠을 버티면 희망이 보이는 목요일이 오고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한다. 한 달이 지나면 공과금을 내야 한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서 저축해야 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난 1년 중 평균 20일밖에 기억을 못 한다고 한다. 나머지는 모두 반복적인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항상 노력해야 한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기 때문에 나를 계속 앞으로 내 던져야 한다. 좋든 싫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강요하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세상이 정한 규칙에 잘 순응하고 재능을 받은 사람들은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멸시당한다. 사는게 원래 부조리 자체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지. 100km는 언제 끝날까?
CP8에 도착했다. 서귀포 시내에 가까워졌는지 평지였고 CP천막이 넓었다. 짜장 범법을 하나 먹기로 했다. 테이블에 앉아보니 앞에는 젊은 커플이 있었다. CP4에서 저체온증으로 앉아 있을 때 나보다 뒤늦게 도달했는데 벌써 와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저체온증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저체온증 걸린 사람이 무식하게 반팔만 입고 달린 나 말고 또 있었을까 싶다. 배번호를 보고 나를 알아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CP4에서 나를 돌봐주었던 자원봉사자에게 내가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는 걸 알려주길 바랐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과자를 두어 개 챙겨서 다시 출발했다.
CP9 만 통과하면 내리막길이고 결승점이다. 걸어가면 5시간이 더 걸리고 동이 틀 것이었다.
서두르려고 했지만 오르막 경사가 심했다. 이제는 발목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고 허벅지 근육들이 심하게 당겼다.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걸을 수는 있었다. 이미 90km쯤 지났다. 마지막 남은 10km는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뛰어보았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열 보를 넘기지 못하고 다시 걸었다. 4명에 한 무리가 나를 다시 앞질러갔다.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 힘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다시 머릿속에 질문이 떠올랐다. 왜?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헛웃음이 나왔다. 난 항상 그런 식이다. 나는 인생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왜라고 질문했고 도망갈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도망쳤다. 결승점까지 가도 나를 반겨줄 사람은 없었다. 내가 힘들었다고 하소연해도 이해 못 할 것이다. 완주를 해야 하는 건 내가 그러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의 선택으로 시작한 대회이니 끝을 보면 그걸로 된 것이다. 도망치지 않으려고 앞으로 걸었다.
새벽 4시 반 서귀포 시내로 들어갔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길을 잠깐 헤매기도 했다. 5시 10분에 출발지점인 월드컵경기장으로 들어섰다. 먼저 경기를 마친 선수들과 대회 관계자들이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고 박수를 쳐주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고마웠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사진작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마지막에는 뛰어서 들어가지만 나는 결승선까지 걸었다. 왼쪽 주먹을 쥐고 파이팅 하는 자세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묵을 먹고 바로 호텔로 들어갔다. 아! 이제 젖은 신발을 벗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