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부터 시작한 회고가 2024년에는 잠시 멈췄습니다. 일이 바빠 시간을 못 낸 점도 있었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지난 1년은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새로운 시도들도 많이 했고, 다양한 직군의 사람도 많이 만났습니다. 개인적인 생활보다 업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조금은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1월부터 본격적인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여정을 시작하며 크게 3가지 프로덕트를 만들었습니다. 반응형 웹 디자인, 앱, Saas 등 모든 프로젝트가 새로운 도전이었고 고민할 거리가 넘쳐났던 것 같습니다. 주어진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클론 디자인을 꽤 자주 했습니다. 다른 회사들의 타이포와 여백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더 나은 디자인 방법은 없는지 등 탐구하는 일은 재미있었고 일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았습니다. 잠을 자지 못하니 일을 하는 시간이 꿈인지 현실인지 혼동이 오는 일도 더러 있었습니다.
저희 팀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개발속도도 굉장히 빠른 팀이라 디자인과 기획이 빠르지 않으면 개발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무언가를 수정하고 기획하면 엔지니어분들은 제가 상상한 이상으로 멋지게 구현해 주었기에 일에 중독되었을지도 모릅니다.
2024년 동안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혔던 프로젝트가 무엇인가 하면 앱 프로젝트였습니다. 앱 출시의 총일정은 한 달 반이었는데 기존에 작업하던 반응형 웹과 앱의 사용성이 달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시간은 촉박한데 UI 구조와 시안들은 사용성이나 목표 측면에서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부담감과 스트레스도 상당했습니다. 제가 디자인을 빠르게 하지 않으면 제품일정이 딜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고 침대 위에서 피그마를 켜두고 잠자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은 여행을 가보면 어떨까 제안을 해주셨고, 불안감은 가득했지만 책상 위에 있는 시간이 많아도 아웃풋이 나오지 않았기에 대전으로 떠났습니다.
친구들과 대화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화면 설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펼쳐나갔고, 쉼이 곧 일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휴식과 쉼에 대해서는 고민이지만, 가끔 너무 일이 되지 않으면 쉬어가는 것도 방법이더라고요. 팀원들을 믿지 못했다면 쉴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 더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서로를 진심으로 신뢰한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지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은 고민과 시간을 투자한 것은 핸드오프였습니다. 회사와 사이드 프로젝트를 포함하면 총 6개의 프로덕트와 7개의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프로덕트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점은 커뮤니케이션이었고, 어떻게 디자인하면 엔지니어가 편하게 작업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수많은 컴포넌트와 컬러값을 제작하고 '필요한 컴포넌트가 있다면 언제든지 사용해!'라는 태도로 만드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다는 착각이었죠.
실제 프로덕트를 운영해 보니 컴포넌트들은 많은 부분이 수정이 되었고, 과도한 시스템 제약으로 디자인도 개발도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 실수를 깨달은 이후에는 많은 질문이 차지했습니다. 이 컴포넌트는 디자인 시스템에 들어가는 게 좋은지, 내 디자인의도는 A인데 개발상에서는 A를 어떻게 만드는지 등 프로덕트 엔지니어에게 자주 물으며 팀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죠. 항상 제 자리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프로덕트 엔지니어분은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다"라며 자잘한 수정요청도 꼼꼼히 챙겨주셨습니다. 좋은 팀원과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엔지니어와 친해지면서 구현 방식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핸드오프와 관련된 아티클을 꾸준히 읽고, 피그마에 남겨진 디자인 요청사항 코멘트를 보며 반응형 디자인의 중요성과 데이터별 화면 처리 방식을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에러 상태, 페이지 간 흐름, 반응형 레이아웃 등 이전에는 놓쳤던 부분을 인지하게 되면서, 디자인 의도를 최대한 피그마에 상세히 문서화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아직 완벽한 화면 설계를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서로의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크게 감소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습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의 우선순위와 방향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VOC를 분류하고,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만드는 것이 좋은 사용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프로덕트 이름을 검색하고, 구글 서치와 믹스패널을 통해 통해 사용자가 가장 많이 검색한 것, 리텐션을 확인했습니다. 사용자들의 의견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던 시절이었죠.
초기의 우선순위기준은 단순히 ‘사용성’이었습니다. 신규 유입과 리텐션을 높이기 위해 유저 피드백이 많은 기능이나 페이지를 우선적으로 개선했고, 그것이 곧 좋은 사용성과 직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 모든 피드백이 진실은 아니다
- 사용자가 "A"라고 말하더라도, 실제 불편함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 기존 사용자들의 모든 요구사항을 수용하면 신규 사용자들에게 복잡한 진입장벽이 됩니다.
- 단순한 피드백 수용이 넘어 사용자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주는 요소에 집중해야 합니다.
2. 집중해야 할 사용자는 하나다
- 프로덕트를 운영하다 보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등장합니다. 실제로 돈을 지불할 사용자와 서비스를 직접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사용자도 많은 차이가 존재하죠. 여러 타겟을 동시에 만족시키려 보면 오히려 본질을 잃기 쉽습니다.
3. 가치 중심의 설계
- 제가 느끼기에 좋은 사용성이라고 만든 기능이 실제 사용자에게 가치를 주지 못하면 좋은 사용성이 맞을까?라는 고민이 많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사용하기 쉬운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비즈니스의 가치와 사용자 경험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많은 것을 실패하고, 배웠지만 사용성에 대한 고민은 여전합니다. 배운 것을 실질적으로 개선해 성과를 낸 적이 없어 더 그렇습니다. 사용하기 쉬운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도 사용자의 반응이 없다면 그것을 좋은 사용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만들고 있는 게 맞을까요? 2025년에는 배움에 대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제품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출시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프로덕트의 본질적 가치와 차별성을 살리는 데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만드는 방식은 발전했지만, 수익성 있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데 연달아 실패하면서 큰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제품과 회사에 깊이 몰입해 있었기에, 프로덕트의 실패가 곧 개인의 실패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더 경험 많은 디자이너가 이 회사에 있었다면 달랐을까?", "이 회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시니어 디자이너가 필요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의 늪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팀원들과의 갈등은 없었지만, 내면의 갈등은 컸습니다. 빠른 속도에 취해 프로덕트의 깊이를 놓친 것, 일에 몰두하느라 수많은 기회를 놓지는 않았을지 걱정도 됩니다.
최근 인터뷰를 보고 피드백을 받았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얀님은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이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톤 앤 매너가 좋고, 경력 대비 뛰어난 실행력과 디자인에 대한 집요함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만, MVP 중심의 빠른 실행 방식에 치중하다 보니 홀로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고도화하는 경험이 부족한 것으로 보입니다."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의 업무 방식을 생각해 보니, 속도에 집중하느라 디자인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이 참 많이 아쉬웠습니다. 화면 설계에 대한 속도보다 도메인과 퍼소나에 대한 이해를 중요하게 여겼으면 제품의 뾰족함을 찾아 성공했을지도 모르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2024년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풍성했던 해였습니다.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여러 직군의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시각과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월부터 시작한 SNS 활동은 1년 만에 1,200명의 팔로워를 얻었고 40회 이상의 커피챗을 통해 5명의 소중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포트폴리오 밋업과 회고 모임 진행, 콘퍼런스 운영진 참여, 인프콘, DAN24 등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엄청난 에너지와 반짝임이 느껴집니다. 그 엄청난 에너지를 한 몸에 받다 보면 신이 나서 "아 이 직업을 하기 잘했다!"며 가슴이 콩닥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이 직업을 너무나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디자인 이야기부터 프로젝트를 만드는 과정 등 각기 다른 관점과 깊이를 나누며 '나는 어떤 식으로 디자인해야 할까?', '저분은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고 고민하는구나 대단하다'라는 배움과 반성으로 반짝임을 즐겼습니다.
고민이 생길 때마다 혼자 끌어안고 있기보다는 관련 경험자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초반에는 '정말 이렇게 커피챗을 요청해도 될까?'와 같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저를 찾아와 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력에 대한 고민은 시니어 디자이너에게, 프로덕트 방향성과 투자 관련 궁금증은 VC 또는 PM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점차 좋은 대표님들과의 인연이 닿게 되었고 제품을 바라보는 관점과 서비스 운영 방식뿐만 아니라 프로덕트를 알리고 리텐션을 유지하는 영업 방식 등 많은 것들을 배워나갔습니다.
2024년에는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치열하게 달려온 한 해였습니다. 지독하게 밤을 새우며 일을 하고, 다방면의 사람들과 반짝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로 재미있었습니다. 일을 더 재미있게 즐기고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끝없이 공부하고 나아갔습니다. 믿음직한 동료와 일본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외주를 받아 모든 돈으로 동생에게 오마카세를 사주기도 하고, 좋은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의 만남도 새록새록합니다. 소중한 사람들 덕분에 모든 순간이 의미 있었을지도요.
2021년은 성장을 외쳤고,
2022년은 반성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2023년은 조금 단단해졌다고 적었는데
제게 2024년은 정말 열정적이었던 한 해였네요.
저와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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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회고 : https://blog.naver.com/sae-yan/222614147005
2022년의 회고 : https://brunch.co.kr/@saeyanso/1
2023년의 회고 : https://brunch.co.kr/@saeyanso/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