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 1차 변론 기일이어서 법원에 갔다. 변론이랄 것도 없었다. 각 측에서 낸 서류를 확인하고 끝이었다. 남편은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 감정을 신청한 모양이었다. 상대측에서 재산 명시를 하며 미비하다고 내게 추가 요청한 서류가 있다고 해서 변론 후 변호사와 법원 밖에서 확인을 했다. 법원 안의 숨막히고 답답했던 공기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그제서야 차가운 겨울 사이로 흩어졌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웃기게도 거기서 요청한 건 남편 이름으로 된 통장이었다. 그는 돈에 눈이 벌게 자기가 신청하는 게 내 서류인지 제 서류 인지도 확인도 제대로 못하나 보았다. 더 웃긴 건 그 오류를 발견한 사람이 오직 나뿐이란 점이다. 그걸 신청하는 남편 측 변호사도, 내 변호사도, 근엄하게 앉아있던 세 명의 판사도 모두 뭐가 뭔지 눈에 잘 안 보이나 보았다. 하긴, 자기 일 아니니까 '그럴 수 있'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법원에서 하는 일이란 게 너무 대충이었다. 기가 막히고 어안이 벙벙했다.
법원에 간 김에 지난달 출석했던 정식 재판의 결과도 떼 보았다. 접근금지 위반과 재물 손괴에 관해 300만 원 벌금형 내려졌던 결정이 집행유예로 바뀌어있었다. 변호사는 '판사를 잘 만났다'며 '작정하고 봐 준 것'이라고 했다. 자신도 변호사를 하면서 몇 번 본 적 없는 드문 일이라며. 나는 얼떨떨했다. 기뻤느냐? 기쁘지 않았다. 판결 결과지를 손에 쥐고도 무슨 말인지 몰라 몇 번이나 되읽었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파악된 그 종이의 의미는 변호사에게 확인을 받고서야 겨우 명확해졌다. 그리고 그토록 어려운 법률 용어가 적힌 판결문이란 걸 손에 들고 있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지 못했다. 법원은 이제 그만 오고 싶다.
토요일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딸들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전남편에게 영상통화를 걸었지만 '외부 일정으로 지금은 어렵고 저녁에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저녁엔 내가 약속이 있었다. 그래서 내일 걸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다음날 아침이 되자 또 외부에 있다며 목요일에나 바꿔주겠다고 한다. 딸들이 보고 싶다. 나를 찾진 않을까?
저녁 약속이 있었다. 소모임 사람들과 제철 굴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와인을 한 병 챙겼다. 세븐일레븐에서 샴페인 행사를 하는데 어플로 재고 확인을 할 수 있대서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들러보았다. 첫 번째는 길을 잘못 찾아 실패, 두 번째 가게에서 드디어 구매에 성공했다. 양 손에 와인을 들고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모습이라니, 누가 보면 되게 술 좋아하나 하고 뭐라 할지도 모르겠다.
모란 근처에 가려던 식당은 만석에 동네 분위기가 흉흉했다. 선회해서 서울의 다른 조개찜 집으로 갔다. 거기도 사람이 줄을 설 만큼 북적북적했다. 삼사십 분을 기다린 끝에 주린 배를 움켜잡고 착석할 수 있었다. 기다림 끝에 먹는 석화와 부추전이 꿀맛 같았다.
한 살 어린 동생이 연락처를 받아갔다.
하지만 도무지 아직 누굴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딸들 사진을 보면 내가 한 번 결혼했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알아서 연락이 안오길 바란다.
어떤 남자든 옆에 같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아직은 혐오스럽다. 전남편이 남긴 이 유산을 언제 청산할 수 있을까?
언제든 내 옆에 누군가 있게 된다면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것도 좋지만
싫어하는 걸 피해 주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이별이란 백가지 좋은 점이 있어도
그 한 가지가 힘들어 헤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일요일 - 영주와 다른 언니 한 분을 같이 만났다. 예전만큼 자주 보지 못해도 영주와는 많이 가깝다.
아침에 이혼 관련 카페 회원 한 분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식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고 있다는 글을 보았다. 구구절절 읽으며 과거의 내가 떠올라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혼의 어려움을 여전히 겪고 있는 나로서 아무 댓글도 달 수가 없었다. 남편이 조울증에 폭력 성향이 있다는 언니도 결혼 생활에 고민이 많았다. 딱히 답이 없으면서도 신점을 아직도 자주 보신다고 한다.
집은 내가 쉬어야 할 곳이다. 거기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찾지 못한다면 행복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혼자 지내는 요즘이 얼마나 귀중한지 안다. 누구를 들이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 이럴지 잘 모르겠다.
연말에 예약해놓은 지지향은 소모임에서 만난 여자 사람 친구와 동행하기로 했다.
그건 괜찮을 것 같다.
쓸쓸하지 않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