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그 많은 소설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주 독서 모임에서 난데없이 이런 질문을 받았다.
"누나는 아이들 가르칠 때 뭘 제일 중요하게 여겨요?"
어려운 질문이었다.
처음엔 뭔가 근사한 답을 해야 할 것 같아 순간적으로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았지만, 결국 입 밖으로 나간 대답은 맥이 빠질 만큼 단순했다.
"그냥 많이 놀려. 노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서."
우리 반에는 숙제도, 단원 평가도 없다. 대신 체육은 안 빠지고 꼬박꼬박 하려고 한다. 지난 창체 시간에는 교실 책상을 다 밀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짐볼 굴리기 피구를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많이 뛰어놀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들만 그럴까?
요즘 김영하의 '다다다'를 읽고 있다.
'보다', '말하다', '읽다'를 묶어놓은 이 책 중 '읽다' 파트에는 '사람은 왜 소설을 읽는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
소설은 정보 획득이나 자기 계발 같은 뚜렷한 목적 없이 읽는다. 우리는 왜 소설을 읽을까?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하나같이 나름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절대적으로 선하지도, 절대적으로 악하지도 않다는 거다.
정말 악하기 그지없는 주인공도 그 사람의 과거와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게 바로 소설의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유정의 악인을 다룬 여러 소설은 읽을수록 소름이 돋는다. ‘햄릿’은 실수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만 그보다는 그의 고뇌에 독자는 더 공감한다.
착하고 바르기만 한 주인공이 평탄한 삶을 사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악하고, 어느 정도는 선한 구석도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기서 결국 자기 자신의 조각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저런 상황이었다면 나도 저러지 않았을까 하는 감정 이입이 바로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다.
소설 속 인물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는 놀라움, 그게 바로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레미제라블'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장발장을 단순히 과거에 빵을 훔쳐 감옥살이를 했던 좀도둑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소설은 그의 과거 모습, 그리고 은촛대 사건 이후 변화된 그의 삶을 차례대로 비춘다. 그가 출소 후 그 이전과 다른 운명을 살게 된 건 어떤 계기로든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180도 변했기 때문이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이 물고기와의 사투 끝에 아무런 소득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그의 마지막 모습이 헛되다고 할 수 있는가? 때로 예상치 못한 비참한 결말에 이른다 해도 주인공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게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그렇다.
'내 삶'이라는 소설에서
나라는 사람은 지금 어디쯤 와있는지,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운명은 어떤 장르에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를 상상하다 보면
이미 40년 가까이 살아온 가슴이 이내 다시 두근거린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그 이야기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대할지에 따라 달라질 거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운인지!
설령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결말을 맞는다 해도,
그간의 내 이야기를 들어온 여러분은
이런 내 인생도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는 데에 고개 끄덕여 주시리라 믿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어른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쓰고, 노래하고, 춤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뭔가를 만들거나, 연극 무대에 오르거나, 사진을 찍는 등 무언가 생산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평소에는 '해야 할 일'에 체크 표시를 해가며 쫓기듯 일상을 보낼지라도, 주말이면 누군가의 결혼식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더라도, 온전히 나의 즐거움을 위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또 정말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생각하는 도덕이란 무엇인지를 구체화하는 데는
여러 이야기를 접하는 게 도움이 된다.
나는 '완전한 행복'에 등장하는 엄마와 '밝은 밤'의 할머니, ‘고래’의 금복 사이에서 누구라도 될 수 있고, 앞으로 어떤 엄마가 될 지 그 수많은 이야기를 거울삼을 수 있다. 내가 보고 읽은 그 많은 소설은 몸 속 어딘가에 남아 그 이야기를 알기 전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다고나 할까?
이렇게 스스로를 알아차리기 위해서 책을 읽고
시간 나는 대로 글을 써 나가려고 한다.
아마도 나의 온전한 즐거움은
많은 부분 글쓰기에서 나오는 것 같다.
여러분은 언제 마지막으로 노래하고, 춤추고, 쓰셨나요? 오직 당신을 위해, ‘당신답게’ 보내는 그 시간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사실 비슷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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