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 맞서 충만한 행복을 느끼려면
20대 때 공연기획을 하던 사람을 몇 번 만났는데, 함께 롯데월드에 간 적이 있다. 가든스테이지에서 가족을 위한 공연이 있었는데 우리가 갔을 땐 거의 끝나서 피날레로 배우들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가 그 무대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공연 보는 거 참 좋지? 근데 그거 알아? 지금 박수치고 환호하는 사람들보다 저기 무대에 올라가 있는 배우가 훨씬 행복하단 걸.”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창작의 즐거움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기쁨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탈리아 와인 중에 사시까이아(Sassicaia)라는 고급 와인이 있다. 375ml짜리 작은 보틀 한 병이 십만 원 정도나 해 나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마셔본 사람들은 농밀하고 대담한, 그러면서도 과실향과 바닐라향이 오래도록 유지되는 전통의 강자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사시까이아의 라벨을 위조해 시중에 유통시킨 일당이 검거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여기서 질문 하나. 과연 위조 라벨을 붙인 사시까이아를 마신 모든 사람이 그것이 가짜임을 눈치챘을까? 사시까이아를 처음 먹어본 사람은 열외로 쳐도, 마시면서 긴가민가 넘어가거나 아예 의심하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었으리라.
명품 가방도 마찬가지다. 월급보다 비싼 가방을 선뜻 살 엄두가 나지 않을 땐 홍콩에서 직구한 이미테이션을 들고 다니기도 한다. 명품 가방의 디테일을 잘 구분하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한눈에 척하고 알아채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다. 보통 “예쁘다”, 혹은 “새로 샀어?”라고만 하니 말이다. 정말 명품을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에게는 물론 내 가짜 가방이 금방 티가 날 테지만.
원본이 유명해지고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자본주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있다. 오죽하면 ‘부자의 그릇’을 쓴 이즈미 마사토는 스타벅스가 인기 있는 건 폭신한 소파나 편안한 가게 분위기가 아니라 ‘가격’이 그 이유라고 했을까. 사람들은 비싸면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는 거다. 돈이 정말 많다면 모두가 갖고싶어하는 와인이든 가방이든 충분히 살 수 있을테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돈은 대개 정해져 있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요즈음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나 진위를 구분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원본을 만드는 편이 행복에 훨씬 가까워지는 길이 아닌가 싶다. 그 공연기획자가 말했던 것처럼. 샤넬 가방을 사면 누구라도 콧노래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성 해방을 기치로 샤넬이란 브랜드를 처음 만든 코코 샤넬의 성취감과 그 쾌락을 비교할 수 있을까? 비싼 와인을 돈을 주고 사서 집 셀러에 채워놓으면 당연히 볼 때마다 흐뭇하다. 하지만 진짜 사시까이아를 만드는 농부의 자존심은 함께 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대단치 않은 것이라 해도 무언가 만드는 것, 즉 창작하는 것이 물질적 소유를 뛰어넘는 큰 만족감을 가져다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어떤 이는 물레를 돌려 그릇을 굽고, 어떤 이는 악기를 연주하며, 어떤 이는 글을 쓴다. 그것은 하나뿐인 원본이 되고 그 사람은 비로소 세상에 원본을 더하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이 어찌 고귀하지 않은 일인가.
학기 초 반 학생들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내용을 짧게 적도록 했더니 개중에 꿈이 없거나 그냥 부자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벌써부터 자본주의의 냉엄함을 알아챈 그 아이들에게 비밀 전하듯 소곤소곤 살짝 귀띔해주고 싶다. 행복이란 사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오리지널을 만들며 사는 인생이 진짜 재미진 인생이라고. 그래서 너희도 지금부터 이것저것 만들어보기 시작한다면 그 전과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