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부터 왔는지, 소송으로부터 왔는지 모를
3월 첫 일주일은 무난했다. 첫날 Zoom으로 만났을 때 채팅을 너무 많이 하고 까불던 남자아이들도 막상 만나보니 귀여웠다. 중간중간 헤매고 실수가 있었지만 앞으로 같이 지낼 반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다행이었다.
교감선생님 눈에서 나오던 레이져는 결국 다른 선생님의 일을 맡아서 해 달라는 부탁이 되었다. 어떤 분이 아파서 병가를 쓰시게 된 게 이유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교감선생님이 연신 “아유, 이걸 못한다고 해서...”라고 하시는 걸 보아 극구 그 일을 못하겠다고 버틴 분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연계돌봄교실이 내 교실을 쓰지 않게 된 데다 당장은 육아시간도 필요 없는 나는 내 사정을 정확히 말 않는 대신 무슨 일이든 열심히 돕기로 했다. 그것이 나중을 위해 좋을 것 같았다. 교장선생님이 일을 맡기는 자리에서 무척 고마워하시며 “아이들 때매 연가 쓸 일 있음 언제든 말해. 사정 봐 테니까.” 하셨다. 학기 중 연가라니? 내가 하기 될 일이 그렇게 중차대하고 어려운 일인가 하는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나는 아직 연가를 쓸 아이들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다음날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교무실로 내려가 업무 설명을 들었다. 돌봄교실과 코로나19 방역 관련 봉사자 위촉과 계약서 등의 서류를 챙기고 기안하는 일이었다. 체계적인 설명이 아니라 공문 쓰는 것으로부터 유추를 해야 해서 잠시 머리에 과부하가 걸렸다. 하지만 이내 ‘돈과 관련되어 있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봉사자 분들과 어쩌면 연락을 종종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임을 파악했다. 교감선생님은 일일이 연필로 기안문을 적으시면서도,
“이것 봐. 이렇게 하면 되는데 굳이 못한다고...”
라고 하셔서 저 말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궁금하게 했다.
교실에 와 가장 시급한 위촉 관련 기안문을 쓰려는데 처음에 업무 배정이 안되어있던 터라 기안 후 지정할 ‘과제 카드’가 나이스 상에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나이스 담당 선생님이 마침 동학년이어서 문의를 했더니 과제카드 지정은 행정실장님께 권한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행정실장님께 메세지를 보냈더니 다시 행정실의 남자 주무관님께 여쭤보라고 하셨다. 교직원만 백 명 가까이 되는 큰 학교, 올해 새로 온 나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낯설고 어려웠다.
주무관님께 최대한 공손하게 맡은 업무를 한번 더 설명드리고 그에 맞는 과제카드를 달라고 했다. ‘방과후학교’ 카드를 주셨다며 다른 게 더 필요한지는 모르겠다는 답변 메시지가 왔다. 나는 ‘더 필요한 게 생기면 말씀 드릴게요.’했다. ‘주말 잘 보내세요’라는 친절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주무관님이 나도 잘 보내라고 답장을 했다.
퇴근 직전에야 교감선생님이 얘기하신 위촉 기안 윤곽을 완성했다.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검토를 받고 퇴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상태로 교감선생님께 보여드렸다. 또 주말 잘 보내시라는 따뜻한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퇴근 십분 전이었다.
다섯 시에 맞춰 필라테스를 가고, 힘든 한 주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초밥을 먹었다. 와인앤모어에서 앨런스콧 쇼비뇽블랑을 한 병 사고, 딸기 스무디도 테이크아웃했다.
집에 돌아오자 딸들 생각이 났다. 기존 어린이집에 계속 다니는지 궁금해 3월 2일에 원장에게 연락을 했었는데, 4일에서야 연락이 되었다. 같은 어린이집을 올해도 계속 오기로 했단다. 얼마 전 수료 기념으로 옛날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원장은 이렇게 내게 몰래 사진을 보내주고 연락한다는 걸 남편이 몰랐으면 한다고 했다. 아이들 보러 가는 것도 원장이 처음에 어려울 것 같다고 해서 참고 안 가고 있는데, 엄마가 아이들 보는 게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숨겨야 하는 일인가 싶어 화가 났다. 그녀에게 내가 어떻게 어린이집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는지 그 경로를 설명하며 안심시켜주려 애쓰는 내 모습이 싫었다.
예전에 남편이 아이들 목욕시킬 때 쓰려고 사둔 입욕제를 풀어 뜨끈한 물에 몸을 담갔다. 자려고 누웠는데 세어보니 둘째 지희는 마지막으로 본 지 6개월이 넘었다. 왜 엄마가 아이들을 볼 수 없는 걸까. 곧 부모 조사인지 뭔지 하게 되면 아이들을 법원으로 데리고 와 볼 수 있을거라 했는데 왜 법원에서는 아직도 전화가 없는 걸까. 아이들 없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데 죄책감이 느껴졌다. 내 사정을 말하지 못한 채 학교 일을 보험 삼아 열심히 하기로 선택한 것도 잘한 일일까 걱정이 들었다. 다른 작가분의 브런치를 읽는데 고 이윤설 시인의 ‘오버’가 눈에 들어왔다. ‘태어나 참 피곤했다’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 박혔다.
나는 너무 피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