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신성인의 의로움과 행복함
사계절 내내 추운 아이슬란드에서는 역사적으로 고래가 식량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가축을 기르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해주는 주요 자원이기도 했다. 밍크고래 한 마리가 잡히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한 달 동안 먹을 것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을 때 아주 큰 매혹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살을 그토록 긴 시간 동안 내어줌으로써 많은 이의 걱정을 덜어주는 고래의 살신성인이 성스럽게 느껴져서였다.
금요일 수업을 마무리하며 2주간 학교에 나온 소감을 나누어보았다. 대체로 반응들이 좋았다. 작년보다 학교를 좀 더 자주 나와서 그런 것 같았다. “1,2,3학년 때 선생님은 성격이 나빴는데 4학년 때 선생님은 성격이 좋아서 다행이에요.”처럼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하는 애들도 있었다.
등교 첫날부터 가정통신문에 엄마 사인을 받아오라고 한 데에다 대고 “집에 엄마 없어요”라는 말대꾸를 한 태영이라는 아이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다른 애들은 모두 제출한 개인정보 동의서를 혼자만 내지 않았다. 하교 후 할머니 사인을 받아서 네시쯤에 학교로 다시 가지고 오기로 했는데 끝내 오지 않았다. 잊어버린 걸까.
소감 말하기를 줌으로 하기로 한 시간에 예령이가 들어오지 않아 끝나고 전화를 했다. 잊어버렸단다. “2주간 학교 와보니 어땠어?”라고 물으니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어요.”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도 수업 시작 후 문 밖에서 남의 반 노크하듯이 멀뚱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길래 내가 문을 열어주었다.
“밤에 늦게 자?”
“네... 한 새벽 1시에 자요. 엄마랑 수다떨다가요.”
“아, 그렇구나. 혹시 엄마가 늦게 오시니?”
“네. 11시 돼야 오세요. 그러고 다음날 1시에 나가세요.”
예령이가 하교하면 엄마는 집에 안 계신 셈이었다. 겉보기엔 세상 쿨한 걸크러쉬 느낌이었는데 아직 그 정도로 엄마가 좋은 나이였다니, 아이는 아이구나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났다.
불 꺼진 텅 빈 집에 저녁거리로 산 샌드위치를 가지고 들어오니 이렇게 아이들이 보고 싶을 수가 없었다. 두 딸들이. 남편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더니 ‘지금 바쁘다’고 조금 이따 한단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싶어 걱정이 되었다. 나중에 연결되고 보니 벌써 자려고 침대에 누운 모양이었다. 그마저도 신도시 아파트의 네트워크가 고르지 못한 이유로 채 삼 분을 못 채우고 끊겨버렸다.
태영이 소매에 며칠 동안 지저분하게 묻어 있던 얼룩이 눈 앞에서 계속 지워지질 않는다. 시니컬해 보여도 엄마를 매일 밤 안 자고 기다리는 예령이의 마음도 신경이 쓰인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정작 내 아이와는 영상통화도 오래 못하고 있으면서. 그냥 내가 죽어서, 내 살 한 점을 부모님의 살핌이 필요한 태영이에게 주고, 다른 또 한 점은 엄마와의 시간이 필요한 예령이에게 주고, 그러고 싶다. 그렇게 내가 살신성인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면.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나를 희생해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방법이란 사실은 없다는 걸 안다. 그저 이처럼 사는 것이 버겁고 피곤한 날에 내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밍크고래의 꿈일 뿐. 그럴수록 더 힘을 내야 하는 걸, 지금의 나는 잘 안다. 학생들에게 지금처럼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현실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아보고, 무엇보다 학교 생활에 재미를 붙이게 말이다.
우리 딸들은...... 우선 변호사에게 임시 양육권 신청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언제쯤 정식으로 신청을 할 건지. 부모 조사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이렇게 머뭇거리는 건지 아니면 바빠서 그런지를 물어보는 것부터 해야겠다. 주말에 늘 이런 질문이 떠올라 난감하지만 이메일이라는 좋은 방법이 있으니 정중히 메일을 쓰자.
무기력과 슬픔이 자꾸 나를 무너뜨리려 하지 않게, 주말 동안 나를 잘 돌봐야겠다. 슬프면 애써 지나치지 말고 좀 울자. 좀 울면 어떤가. 눈물이 나오면 울지 뭐. 울어도 돼, 슬퍼해도 돼. 괜찮아, 다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역시 밍크고래가 죽으면서 행복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자신은 죽어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충분한 기쁨에, 행복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