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중학교 때 나는 왕따였다. 반 정도는 자발적이었다. 말 그대로 공부를 하느라 친구를 사귈 수 없었으니까. 학교에서 조금만 늦게 와도 시계를 보며 “뭐 하다 이제 왔어?”라고 다그치는 엄마가 늘 집에 계셨다. 초등학교 때 친구가 우리집에 오거나 전화를 걸면 ‘공부에 방해되기 때문에 앞으로는 하지 말라'고 그 친구에게 타이르셨다. 그런 훈계를 들은 친구들은 정말 다시는 전화를 하지도, 나를 찾아오지도 않았다. 책상 속 비밀 일기는 어느 날 내 동의 없이 자취를 감추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교우 관계에 대해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전교 1등이란 타이틀을 부모님께 가져다드리면 그런 규제들이 풀어질까 기대해 보았지만, 그놈의 1등을 하고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이렇듯 정상적으로 친구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채 중3쯤 되자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부모님께 대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같은 반 혜영이가 다가왔다.
그 시절 사실 다른 아이들은 내게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 마주쳐도 그랬다. 가끔 누가 말을 걸어주기라도 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외로움은 병이 되어 날로 깊어갔다. 그러던 중 나를 알아봐 준 유일한 친구가 바로 혜영이였다.
더이상 엄마의 간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우리는 단짝이 되었다. 사는 곳이 가까워 하교를 같이 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주변이 없는 내가 주로 듣는 편이었다. 혜영이는 나 말고도 다른 친구가 많았는데 나는 오로지 혜영이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3 말, 우리집이 이사를 갈 예정이어서 나는 고등학교를 중학교와 좀 먼 곳으로 지원해야 했다. 내가 지원할 곳은 보통의 우리 중학교 졸업생이라면 잘 지원하지 않을 정도로 제법 거리가 되는 신설 여학교였다. 혜영이는 자기집이 이사 갈 것도 아닌데 나를 따라 그 학교로 지원을 했다.
‘좋아. 혜영이와 같이 고등학교를 다니며 왕따 시절은 다 잊어버리는 거야!’
그때 했던 다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 학교에 지원을 한다고 해서 다 붙는 건 아니었다. 학생 수급 상황에 따라, 또 주소지에 따라 떨어질 수도 있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결과를 열어보니 다행히 우리 둘 다 그 학교로 배정을 받은 게 아닌가! 너무너무 기뻤다. 나에겐 오직 혜영이뿐이었고, 우리가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고교 생활은 벌써 충분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우리는 다른 반에 배정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이전처럼 자주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도 아침 9시에 등교해서 오후 2시 반에 하교를 했기 때문에 많이도 함께 놀러 다녔다. 우리는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간다’란 말에 속은 이해찬 세대였다.
발이 넓은 혜영이답게 주변 친구들을 통해 남학생도 종종 만났다. 하루는 어쩌다가 혜영이와 나, 그리고 남학생 둘과 노래방을 가게 되었다. 아마 그 당시 유행했던 세이클럽 채팅을 통해 만났던가 했던 것 같다. 혜영이가 둘 중 한 명을 보고 “쟤 잘생기지 않았니?”라고 물었다. 나는 그냥 어찌할 줄을 몰랐다. 노래가 코에서 나왔는지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게 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 그 혜영이가 점찍은 남학생이 노래방 문 앞에 서 있다가 내게 연락처를 묻는 게 아닌가. 이것 참 알려주기도 그렇고 안 알려주기도 그렇고 난감했다. 혜영이의 눈치를 살폈다. “네 마음대로 해”라고 말하긴 했지만, 입이 삐죽 튀어나온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그때 매정하게 연락처를 안 주고 돌아서는 게 맞았을까. 혜영이의 말처럼 그 남학생이 정말 괜찮은가 싶은 생각이 들어 그 애 손바닥에 펜으로 삐삐 번호를 적어주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연락이 왔다. 그는 후에 내 첫 키스의 주인공이 되었다.
너무 애석하게도 똑같은 일이 고2쯤에 우연히 한 번 더 일어났다. 혜영이가 멋있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 훤칠한 미남이 또 내 남자친구가 되었다. 이번에는 소개를 받았던 것 같다. 그 애가 혜영이를 먼저 만나고 잘 안 된 뒤에 내가 소개를 받았는데 이어졌던가. 하여튼 그랬다.
이 시절을 생각할 때 예전엔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중학교 말쯤 혜영이에게서 구원을 느꼈듯, 그 남자애들이 내게 어떤 새로운 구원이 돼주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고등학생의 믿음에서 비롯된 일이었을 뿐. 동성인 혜영이와는 다른 무언가를 해줄지도 모른다는 예감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 같은 걸 해보았다고 할까나. 물론 그 두 번의 일로 인해 혜영이와는 완전히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아직도 그 ‘구원’에 대한 이미지는 완전히 파쇄되지 않고 남아 때로 나를 현혹한다. ‘이 사람이라면 내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주지 않을까?’, ‘이 사람과는 정말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하고. 하지만 이혼을 목전에 앞둔 지금, 비관적이게도 나 스스로가 누군가와 함께 살기 어려운 종류의 사람이 아닐까 하는 진단을 내려본다. 어디 나만 그런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 그렇게 산다. 사이좋은 부부가, 화목한 가정이 여러분 주위에는 얼마나 있으신지.
아, 그런데 어째서 내가 누군가의 구원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니 난 늘 목이 말랐고, 그래서 받으려고만 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마셔도 마셔도, 왜 난 늘 목이 타는 걸까. 그 물이 진짜 물인지 끊임없이 시험해 가며.
혜영이가 이 글을 볼 수는 없겠지만 그 시절, 마음에 상처를 준 일을 사과하고 싶다. 그 애는 원했던 대로 현모양처로 잘 살고 있을까? 소박하지만 가장 어려울지도 모르는 그 꿈을, 나와는 달리 잘해 나가고 있을까. 완벽히 홀로였던 나를 구원해 주었던 따뜻한 너라면 어디서든 잘하고 있겠지. 네 덕분에 이십년이 지난 지금, 나도 조금이나마 ‘주는 사람’이 될 순 없을까 고민해보네. 미안하고... 정말 고마웠어, 혜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