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군대 다시 가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
“지금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남편이 지난 주말에 시댁에 안 갔는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는지 목요일부터 계속 전화를 안 받았다.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게 아니라면 개인적인 전화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그지만 아이들이 걱정되어 할 수없이 계속 연락을 시도했다.
이렇게 저렇게 연락을 해 보아도 받지 않아 주말 내내 걱정을 하다가 월요일이 되자마자 어린이집 원장님께 아이들이 잘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있다고 했고, 세희가 “아빠 안 왔어”라고 했다고 하니 남편이 안 오긴 안온 모양이었다. 자기가 제대로 아이들을 돌보지도 않으면서 나에게 계속 아이들을 보여주지 않는 그의 심보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잃고 싶지 않은 것뿐일까. 그리고 아이들도 그 일부일까. 아이들의 안위는 정말 안중에 없는 걸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닭갈비집 사장님인 한 동생을 지난주에 일 년 만에 만났다. 그 동생은 작년에 이혼을 했고, 실은 나도 소송 중이라는 소식을 만난 김에 전했다.
“이번에 실패했으니 좋은 사람 만나면 되지.”
그 말을 듣자 반발심이 생겼다.
“이번에 실패했는데 다음에 잘할 수 있을까? 임용고시도 한 번 떨어진 사람이 계속 떨어져.”
이렇게 나를 걱정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헤어져 달라고 해도 헤어져주지 않는 폭력적 성향의 배우자와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알 수가 없겠지.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는지. 6개월이 넘게 기일조차 잡히지 않고, 그사이 떨어져 지내고 있는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마음도 어떤 모습인지 가늠하기 어렵겠지. 그 마음이란 게 여러 번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다시 얼기설기히게 기운 누더기의 모양이라는 것도. 아직 내 첫 번째 결혼의 실패를 완전히 매듭짓지도 못한 이 마당에 새로운 사람이 무슨 터무니없는 말인가.
그런 걸 생각하기 전에 우선 내 마음속이 허한 가장 큰 이유가 하루 빨리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바로 우리 두 딸, 세희 지희와 한 집에 사는 것. 그전까지 내가 온전히 잘 지내란 어려울 것 같다. 이 시기를 견뎌야 하기에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농담을 하고 웃기도 하지만, 그 어떤 다른 것도 텅 빈 마음을 채울 수가 없다.
사주를 볼 때 그 사람이 태어난 계절과 대운 흐름상 계절의 변화로 해석을 하는 방법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봄생으로 20대까지 여름을 겪고 30대부터 가을을 맞았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 만큼 잉태와 안정의 시기라고들 한다. 나는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며 거짓말처럼 두 아이를 낳았다. 이제는 그 가을 동안 두 아이를 키우며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부분의 것을 해 보았던 뜨거운 여름날은 가고, 30대에 가을을 맞이한 게 얼마나 다행인가.
주변 사람들이 잊을만하면 말을 꺼내는, 다시 불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때가 있긴 있을까?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다시는 누구의 애인도, 누구의 아내는 더더욱 되고 싶지 않다. 누구의 옆이든간에 그런 이름으로 다시 서있다고 상상하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을 믿을 수 없어, 혹여 아이들에게 해가 될지도 모르는 감정적 소모 따위는 애초에 시작도 하기 싫다. 사실 다시 누구를 만나보란 말은 온갖 고생 끝에 겨우겨우 제대한 사람더러 다시 군대 가라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생의 불꽃이 아스라이 져 가는 인생의 겨울이 되었을 때, 나는 그 무엇보다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그렇게 그렇게 조금씩 빛을 잃어가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남은 내 생은, 알맹이 없이 텅 빈 것이 되고 말 것 같다. 사그러드는 불빛이 되기 전에 다시 한 번 활활 타 보아도 괜찮을까? 그러다 얼마 남지않은 누추한 나마저 다 타고 재만 남게되는 건 아닐까, 정말로 괜한 짓이 되지 않을까, 나는 두렵다.
그립다는 말로는 부족한 두 딸, 가까운 미래에 우리 다시 만날 일을 그리는 수밖에 없구나. 나약해지지 않도록, 힘을 내는 수밖에. 나는 세상 누구보다 힘이 센 ‘엄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