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하나에 울고 웃으며 현실을 잊고 오늘을 보냅니다
2021년 프로야구가 며칠 전 개막했다. 작년에 우승을 하고 집행검을 뽑았던 고향팀 NC 다이노스는 우승 기념으로 개막전 관객 무료입장을 해주기로 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막일에 전국적으로 내린 비 때문에 그 약속이 지켜지지는 못했다.
야구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였다. 겨울에 쌍둥이를 어렵게 임신한 후 세 시간의 통근 거리 등 여러 가지가 걱정되었던 바, 휴직을 결정하게 되었다. 쌍둥이란 이유로 운동도 별로 권장되지 않아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고 난 후 혼자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누워있거나 TV를 보는 게 다였다. TV와 친하게 지내다 보니 매일 일정한 시간에 방송되는 야구에도 자연스럽게 발을 들이게 되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신생 팀인데도 NC는 상위권을 달리고 있었다. 옆동네 부산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싶지는 않아 딱히 ‘내 팀’이 없던 차에 고향팀의 선전은 반가웠다.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에 집중하고, 한 이닝을 집중해 보다 보면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오늘 졌다면 설욕을 위해 내일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번에 만난 한화가 너무 못해서 스윕을 하고 나면 다음번 한화를 만날 때도 스윕이 기대됐다. 그렇게 내 배는 무럭무럭 커져갔다.
2018년도에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야구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2019년도에는 아이들을 재운 후 내 방에 숨어서 보았다. 남편의 손찌검은 나아지지 않았고 언제 화를 폭발할지 몰라 되도록 아무 말도 섞지 않으려 애썼다. 통근 거리 세 시간의 학교로 복직을 하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학교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 나는 말할 사람이 분명 필요했다. 하지만 그에겐 더 이상 그런 걸 기대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잠에 들고나서 TV를 켜면 보통 9회 말이거나 게임이 끝난 적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꼬박꼬박 게임 스코어를 매일 확인해나갔다. 그렇게 하며 ‘내일은 꼭 이기자’라던지 ‘저쪽 팀이 너무 잘하네’라는 등의 생각을 하고있노라면 주체하기 어려운 슬픔이 조금은 산란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작년 여름에 별거를 해 나가며 60인치 TV를 오피스텔 방에 들였다. 야구 시청용이었다. 별거 한 달 후 남편이 부동산 계약 관련으로 길에서 내 손목을 잡고 비틀었는데, 그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경찰에 가서 접근금지를 신청했다. 돈이 걸리니 학교에까지 전화를 거는 그가 무섭기도 했고, 어차피 저쪽도 소송 얘기를 꺼내는 마당에 이제는 미루지 않고 이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어느 정도 들어서이기도 했다. 접근금지 처분이 떨어지면 아이들은 곧 육아 휴직에 들어갈 남편이 보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당분간 아이들을 보지 못할 터였다.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나는 그 큰 TV로 매일 야구를 보았다. 1회부터 9회까지.
그것은 어쩌면 내 슬픔을 유예하는 방식이었다. 매일 쌓이는 결과를 눈으로 확인했고 다음 경기를 기다렸다. 우리 팀이 이기는 걸 보려면 아무리 슬퍼도 최소한 다음날 일어나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TV를 켜야 했다. 경기를 보다 홈런이 터지거나 운 좋게 경기를 이기기라도 하는 날은 최소한 무엇이라도 잠시 즐거워할 ‘거리’가 생긴 셈이었다.
진행되지 않는 소송의 더딘 걸음에 맞서 인간인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데에 야구가 없었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그렇게 작년 리그가 우리 팀의 우승으로 더없이 기쁘게 끝이 나고, 해가 바뀌어 2021년 리그가 새로 시작했다. 그런데도 아직도 기일조차 한 번도 진행되지 않은 이 상황은 아무리 코로나 시국이란 걸 고려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마음에 골병이라도 들라는 말인가? 그렇게 잦은 폭력 상황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조차 시키지 않더니 이혼한다는 것도 이렇게나 질질 끄는 국가에 마음 같아선 소송이라도 걸고 싶다.
지금도 야구 경기를 틀어놓은 채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우승팀의 저주’인지 올해 시작이 영 시원찮다. 여전히 나는 당분간 매일 경기를 보며 결과에 희비 하겠지. 그렇게 오늘과 내일을 살겠지. 그래도 새로 뜨는 해가 작년만큼 무겁지는 않다. 다가오는 가을에는 우리 두 딸과 함께 가을 야구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야구 말고 글쓰기도 있으니, 이 두 가지로 단단히 무장을 한 채 아직도 한참 남은듯한 이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 봐야지 뭐. 야구 말고는 별로 재밌는 일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힘내자고 한 마디 건네고 싶다. 우리 씩씩하게 하루하루 버텨 보자고. 버티다 보면 어떤 경기에서는 대차게 이기지 않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