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전소를 기다리며

그 전소 끝에 꼭 기적과 같은 일이 있기를

by 이주희

아이들과 인사도 못 한 지 삼 주나 되었다. 지지난 주에 이어 지난 주말도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아 남편이 애들을 보러 가지 않은 줄 알았다. 딸들을 그냥 시댁에 방치할 정도로 이제 관심이 없어졌나 싶어 급하게 아이들을 서울로 데려올 계획을 세웠다. 이런 생각이 처음 든 주말부터 월요일 오후까지 아이들 옷이며 매트, 낮은 식탁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것을 구했다. 내 부풀었던 마음만큼 많이도. 실은 남편이 대구로 내려가지 않은 게 아니라 시부모님과 함께 아이들과 제주도를 갔다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계획은 다시 보류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애써 고요했던 내 마음에는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갔다.


작년 여름, 처음으로 남편의 접근금지를 신청하며 아이들과 떨어질 것을 예상했었다. 다만 그게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을 뿐. 그때는 나부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악귀가 씐 듯 손버릇이 나아지지 않는 남편을 피해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어쨌든 내가 살아야 후에 아이들도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별거해 나간 후에도 매일의 루틴을 지키며 일과를 소화했지만 나에게 “나쁜 엄마”라며 얼마나 숱한 비난을 해댔던가. 그래도 난 그곳에서 나갔어야 했다.

지금 남편의 관심이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 두 딸을 마음대로 데려왔다간 또다시 경찰서를 드나들며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진땀을 빼며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만 해도 두 아이를 데리고 오려니 그 인간이 우리 앞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새 접근금지 처분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접근금지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그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 4월 12일 저녁 8시도 되지 않은 시각, 아이들을 빨리 자라고 다그치던 남편은 첫째가 혼자 양치를 하다 침대 시트에 치약을 조금 묻혔다는 이유로 “에이 씨!”라며 충동적으로 아이 쪽에 대고 베개를 던졌다. 거기엔 만약 맞았다면 얼굴을 다칠 만한 온 힘이 담긴 속도와 힘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다행히 딸 얼굴에 맞진 않았지만, 이런 일 이외에도 여러 녹음과 녹화본이 있기에, 또 이미 전과도 있기에 신고를 하려 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그라고 해서 나를 상대로 이런 종류의 거짓 신고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안 그래도 작년부터 있지도 않았던 일로 경찰에 고소해 학교에도 소송 사실을 알리게 하고 나에 대한 접근금지 처분도 받아낸 그였다. 그 후 자신이 살고 있지도 않은 집에 이삿짐을 옮기며 가까이 간 것을 두고 또 두 차례 신고하는 등 아이들과 함께 있지 않아도 그는 나를 꾸준히 괴롭히고 있다. 아이들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로 나를 괴롭히는 가장 큰 한 가지이고 말이다. 아직 아이들을 포기 못 했다면 더 길길이 날뛰며 온갖 모함을 다 할 그였다.

그래서 나는, 당근마켓을 통해 양손 가득 업어온 아이들의 옷이 담긴 쇼핑백과 세탁하려고 펼쳐둔 낮잠 이불을 뒤로하고, 결국 다시 원래 자리에서 법원의 결론을 기다리기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홀로 자유를 찾아 남한 땅에 왔으나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는 새터민의 마음이 지금 내 마음과 비슷할까. 사랑하는 여인을 되찾기 위해 온갖 시련을 딛고 하데스를 만나 그녀를 구하게 되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뒤돌아보며 다시 죽음의 세계로 그녀를 보내야만 했던 오르페우스의 심정이 나와 비슷할까. 아이들이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면 당장 데려오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없다.

변호사에게 계획을 다시 바꿔 이전처럼 아이들과 떨어져 있기로 한 결정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떻게든 데려와 키워야 양육권에 유리하다'고 강조해왔다. 까딱하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그쪽이 유리해진다는 말도 늘 세트로 했었다. 아이들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내 진짜 마음과는 반대로, 자꾸 어떻게든 데려오라고 권하는 그에게 왜 지금은 데려오지 않는 편이 나은지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찬찬히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으며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성과 감성이 양쪽에서 잡아당긴 결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쭉쭉 찢어져버렸다.


변호사에게 내 설명은 어쩌면 화재 현장에서 두 아이만 온전하기를 바란다는, 그런 기적을 바라는 말과 다름없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무엇에 홀린 건지 모르게 몇 년째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화는 그의 몸 밖으로 발산되는 정도를 넘어 그 자신을 태우고 있다. 나는 보인다. 불길에 타들어 가는 그의 모습이. 그는 혼자 타지 않고 결국 그의 집도, 그의 가족도 다 태우고 말 것이다. 후퇴를 모르고 점점 커지는 그 불길 앞에서, 나는 그저 그 모든 것이 다 타고 재가 되기를 기다리며 바라본다. 지금 내 눈앞에서 활활 타고 있는 그의 모든 것이 전소한 후 아이들만 온전히 데리고 나올 수 있기를. 부디 나의 소망이 현실이 되기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는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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