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를 하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다시 차를 타러 가는 길에 주차장 맞은편 산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에 살았던 오피스텔 창밖으로 보이던 그 산이었다. 그리 높지도, 그렇다고 너무 낮지도 않아서 7층 내 방에서 마음을 탁 트이게 해 주었던 고마운 산이 거기 있었다. 작년에 그 방 뷰에 반해 계약을 하고 들어간 게 현충일이었으니 나는 그 산의 여름 모습부터 겨울 모습까지만 보았던 셈이었다. 연한 연둣빛을 띈 봄 산의 모습은 그래서 낯설고 아름다웠다. 여름의 완연한 푸르름으로 가기 전, 조금은 수줍은 듯한 조심스러운 연녹색이 완연한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봄은 내가 태어난 계절이자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긴 겨울에서 만물이 깨어나고, 적당히 따뜻해 옷차림이 가벼운 점이 좋다. 하지만 이번 봄은, 넘치는 시간만큼 제대로 즐기기가 어렵니다.
어제는 세월호 사건이 있은 지 7년이 되는 날이라고 했다. 애써 입밖에 내고 싶지 않았던 그 일이 한 학생의 입을 통해 터져 버렸다.
“선생님, 오늘이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날이래요.”
“응, 6년 되었나?”
“7년이래요. 바다에 언니 오빠들이 많이 빠져서 죽었대요. 진짜 슬프죠?”
겨우 열한살이지만 그 사건의 무게를 안다는 듯 그 학생이 말했다. 6년이 아니고 7년이었구나. 어느새 조금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무리 끔찍한 일도 시간이 지나니 무뎌지나 보았다. 또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끔찍했기 때문에 일부러 외면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이번 내 봄은 어느 때보다 오락가락을 많이 하고 있다. 채은이가 낸 일기장 검사를 하고도 명렬표에 동그라미를 하지 않아 “채은아, 일기장 냈어?”라고 묻고, 같은 질문을 다시 민준이와 지윤이한테도 던지곤 했다. 그러면 지윤이는 “선생님, 또 검사하고 동그라미 안치셨어요?” 하며 웃어넘겼다. 급식에 블루베리가 나오면 나는 입으로 그 과육을 씹고 맛을 느끼지만 머릿속으로는 아침마다 두 딸에게 블루베리를 챙겨주던 장면을 상상했다. 그렇게 두 아이가 맛있게 블루베리를 씹어먹는 장면, 더 달라고 하는 말 등을 떠올리다보면 이 모습은 점점 커져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블루베리를 먹을 수가 없어졌다.
엄마이지만 엄마일 수 없고, 일기장을 검사했지만 검사했는지 정확하지 않고, 블루베리를 먹지만 완전히 먹는 그곳에 있지 않은, 영혼을 어딘가 빼앗긴 것만 같은 나에게도 봄이 온 걸까? 어제 같은 오늘을, 오늘 같은 내일을 보내다 보면 6주년인지 7주년 인지도 모르게 둔감해진 세월호 사건처럼 나와 떨어져있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지금보다 덜 예민해질 수 있을까.
하루 중 수시로 마음속 댐에 모아놓은 눈물을 집에서 혼자 글을 쓰는 이 시간에 그나마 방류하곤 한다. 푸른 산이 아름다운 봄날에 그렇게 마음속 댐에 눈물을 모으는 나인지라, 이 봄을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마도, 두 딸을 눈앞에서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상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에 둔감해지는 날은 오기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