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는 없다

내가 쌓은 대로 거둘 뿐

by 이주희

쌍둥이가 돌, 두 돌이 될 때까지는 내 밥 챙겨 먹을 시간은커녕 화장실 갈 틈조차 잘 없었다. 그러니 집에 쌓인 쓰레기를 버리러 갈 시간도, 밖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그런 잔 심부름을 대신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는데, 이름하여 ‘김집사’였다.

‘집사’라는 이름처럼 자질구레한 일을 대신해주는 게 이 서비스의 핵심이었다. 쓰레기 버려주기, 분리수거 대신해주기, 약 사 오기, 슈퍼에서 장보기, 가구 옮겨주기 등 다양한 서비스가 천 원부터 이삼만 원 사이에 제공되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쓰레기 버리기와 물건 사 오기뿐 아니라 때로 카페에서 커피를 사다 주는 심부름도 자주 이용했는데 정말 너무 편리했다. 집 안에 앉아서 손가락을 까딱하여 얻는 그 편리함이란! 나 대신 그런 잡다한 일을 해주는 대타 한 명이 늘어난 느낌이었달까? 남편은 생활비 한 푼 주지 않는 주제에 그런데 돈을 쓴다고 뭐라 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손을 안 대고 코를 푸는 것 같은 그 느낌 이 마음에 무척 들어 자꾸 이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인생의 어려운 일을 다 대신해줄 대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하여 나는 오로지 기쁨만 맛볼 수 있다면. 하지만 나의 기쁨처럼 나의 슬픔 또한 내가 쌓아 올린 일 때문일 때가 대부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도망갈 수 없다.


이제 아이들을 데려오면 꼼짝없이 혼자 육아를 도맡아 할 나로서는 ‘육아 대타’가 없다는 게 큰 걱정이다. 급할 때 친정 부모님이 올라오실 수 있지만 나와 동생을 키우느라 수고한 두 분께 웬만해선 또다시 손녀를 돌 보는 수고를 하시게 하고 싶지 않다. 주변에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도 제법 있다. 하지만 그들의 육아도 힘들 걸 알기에 정말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 아이들까지 거기에 얹고 싶지 않다.

딱 한 명 육아 대타로 생각나는 분이 있긴 있다. 처음 두 딸이 태어나 고 몇 개월간 나와 같이 몇 개월간 키워주신 산후도우미 분이다. 같은 동네에 사시고, 세희 지희보다 두 살 많은 쌍둥이 형들을 가까이서 보신 경험이 많으셔서 요령이 좋으시고 다른 누구보다 마음이 놓인다. 예전에 분식집을 하셔서 음식 솜씨는 또 얼마나 좋으신지!

그럼 뭐하나. 일단 데려와야 가끔 대타를 구하든 말든 하지. 새로 개원 한 단지 내 어린이집 입소를 벌써 몇 번째 미뤘는지 모르겠다. 문화센터 여름학기 신청일도 달력에 적어놓았는데, 여름학기에는 아직 어떤 수업도 같이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언제쯤 두 손 잡고 같이 발레 수업 들으러 갈 수 있을까.


대타는 없다. 나 대신 슬픔에 맞서 줄 이도, 나 대신 두 아이를 키워줄 이도. 내가 결정하고 거기에 책임지는 편이 훨씬 깔끔하지 않은가. 도움을 받았을 때 되돌려 줘야 할 게 무엇인지 계산하는 편이 김집사를 이용한 후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것보다 내게는 훨씬 어렵다. 그래서 새로 이사 온 집에 김집사 서비스가 아직 되지 않는 게 그렇게 아쉬웠으려나?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지만 집 앞 쓰레기 정도야 뭐 어떤가.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아이들이 오고 난 후 내 일상은 자잘한 서비스들의 도움이 가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매끼 만들기 어려운 반찬은 반찬가게에, 청소는 관리사분에게 등등. 그래 도 두 아이 키우는 건 내가 도맡아 하려고 한다. 척척 만능으로 쉽게 그런 건 당연히 기대하기 어렵겠지... 혼자 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나도 자주 두렵다. 하지만 그냥 해 보는 거다. 엄마니까. 내가 선택한 내 길이니까. 기다리면 꼭 너희는 내게 올 테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몰라도 상관없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남편이 동호수를 아는 지금 집에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몰라서 내 마음대로 아이들을 보러 갈 수도, 데려오기도 어렵가는 걸, 부디 판사님만은 아시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빼앗긴 마음에도 봄은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