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계산의 문제

어쩌다 이렇게 각박한 사람이 되었을까

by 이주희

“남자가 소개팅을 나갔는데 여자가 밥을 사잖아? 그러면 그 남자는 어떻게 느끼는 줄 알아? 보통은 맨날 자기가 밥을 샀는데,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내가 마음에 들었으면 밥을 사나?’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여자 셋이 떠난 북스테이 지지향에서 영주가 운을 뗐다. 그 말을 듣고 한 지인이 생각나 말을 보탰다.

“어 맞어. 내가 아는 어떤 오빠는 ‘여자친구 어떤 면이 좋으세요?’라고 물었더니 ‘밥값을 잘 내서’라는 거 있지. 난 그게 좀 충격이었어.”

이야기는 ‘받는 것과 주는 것의 균형’에 대해 이어졌다. 영주가 며칠 전 만난 언니 얘기를 꺼냈다. 근처 지하철역에서 그분의 일터까지 택시를 탔는데 택시비를 내주려고 도착 시간을 미리 물어봤다는 얘기, 영주의 집이 그분 집과 반대 방향인데도 늘 데려다준다는 얘기였다. 확실히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호의도 대개 받은 만큼 돌려주는 편이었다. 만일 누군가 내게서 많이 받았다고 느낀다면 그건 그 사람이 그만큼 무언가 주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있는 동안의 기쁨이나 나를 알아주는 데 대한 고마움 등 무형의 것이라도 말이다. 가끔 너그럽게 밥을 사기도 하지만 절대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였다.

자기 집과 반대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데려다주는 그녀의 차를 타고 오면서, 영주는 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나였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렇게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해주려는 사람에게 맡기고 나면 장부책에 부채가 쌓인 셈이었다. 그 빚은 언제고 어떤 식으로든 갚아야 했다. 그리고 채무자는 절대 채권자 앞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법. 타인에게 빚을 지지 않으려는 건 그 점이 싫었기 때문이다. 호의를 받아들인 후 내 자유, 예를 들면 채권자가 어떤 제안을 했을 때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자유같은 것이 상당 부분 줄어듦으로. 그리고 그와 반대로 남을 채무자로 만드는 것도 그만큼 별로였기 때문에 내 지출 저울은 항상 바늘의 영점을 맞추고자 무진 애를 썼다.

그런데 남자와 데이트 할 때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호혜 관계에 있어 상대가 나와 밥 먹고 시간을 보내는 일 자체에 가치를 둔다면 나는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세상 모든 남녀관계는 여자가 남자를 목매고 쫓아다니지 않는 이상 그것이 정상이었다. 그래서 엄마 카드를 뺏긴 남자친구가 다시 만나자고 해서 나간 자리에서 점심값을 계산하지 못했던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과 같았다. 그와는 결국 머지않아 내가 치킨 한마리를 산 걸로 끝이 났다.

나무 바닥이 깔린 따스한 객실에서 친구들의 말을 곰곰이 듣고 있자니 그동안 해온 이런 생각이 매우 가부장적임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속해 보호받고 싶다는 생각이 남편의 그늘 아래 안온하게 살고 싶은 전근대적 욕망임음을 얼마 전에 알아차렸던 것처럼. 하지만 처음에 환심을 사기 위해 장부책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숨겼던 남자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들춰보기 마련이었다. 지금의 남편처럼.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그가 채권자의 모습을 드러내면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장부책에는 어디에도 그의 이름 밑으로 된 원금도 이자도 없었으므로.


다음날 아침 브런치를 먹기 위해 찾아간 롯데 아울렛은 온 파주 사람들이 다 모인 것처럼 북적북적했다. 걸어오는 길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번 돈을 ‘쓰러’ 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돈을 지불하고 새로 산 물건으로 그 사람들은 오늘 행복해질까 싶었다.

‘마음으로는 프라다를 사고 싶지만 현실은 매대에 누워 있는 이월상품을 살 수밖에 없어도 괜찮을까?’

하며.

A동 1층에 있던 피아노를 영주가 연주하기 시작했다. 옆 가게 멀버리의 신상 백과 빨간 트렌치코트가 참 예뻐보였다. 그리고 또 바보같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보기에 나는 얼마 정도 지불하고 싶은 대상일까?’

아니, 사실은 ‘대상’보다 ‘물건’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스스로를 물건화 해 가격을 매겨보려는 기상천외한 짓을 했다! 바로 어제 아직도 내가 가부장적 테두리 안에서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 있음을 눈치챘었는데도 말이다.

속이 뜨거워졌다. 이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것도, 손해보지 않고 상처 받지 않고 모든 걸 숫자로 금액으로 가늠하고 타산해보려는 내 지나친 버릇도 참을 수 없어 신물이 올라왔다. 재산 때문에 협의 이혼을 못하겠다며 이혼하고 싶으면 소송을 제기하라던 남편의 말도 떠올랐다. 혼수로 해 온 냉장고며 서랍장이며 쓸만한 물건은 모두 시댁으로 실어가버린 속좁은 그와 지난 일을 가지고 다투는 건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각박해지는 일이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과 싸우다보니 어느샌가 나도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소비를 하러 모여든 사람들이 부지런히 가게 사이를 오가는 가운데 영주의 서툰 피아노 소리가 흘렀다. 일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그녀는 그 공간에서 유일하게 무언가를 생산하는 중이었다. 누가 만들어 놓은 걸 손쉽게 돈을 주고 사는 것보다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드는 편이 행복에 좀 더 가까워지는 지는 건가. 단순한 해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어떤 만남도 처음부터 장부책부터 들이미는 게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간질간질한 설레임과 호감으로 시작됨을, 마음 저 끄트머리 한구석에서 힘겹게 힘겹게 찾아냈다. 하마터면 꽁꽁 언 내 냉정한 마음이 그나마 남아 있던 작은 온기마저 얼려버릴 뻔 했나보다. 휴우.

이 엄혹한 시절이 지나면 내 마음도 봄빛 물들 듯 녹을 날이 있긴 있을까? 바깥에 유난히 따뜻하게 불던 그 날의 바람이 어쩐지 싫게 느껴졌다. 내 인생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데 혼자만 냉기를 놓아버린 날씨를,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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