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름으로
2021년 2월 20일 새벽 6시, 다음주 수요일에 있을 2차 가사조사를 앞두고 전쟁터에 나서는 장수의 마음으로 이 결기문을 쓴다.
지난번 가사조사는 개인별로 진행될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남편이 와야 시작한다”고 해서 적잖이 당황했었다. 그때 그때 말로 내뱉기보다 머릿속에서 정리해 글로 적는 게 더 편한 나로서는 했던 일도 이제 와 안했다고 발뺌하는 거짓말쟁이의 자태를 보고 있자니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언제 치고 빠질지를 몰라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형국이었다. 1차 조사가 끝난 후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일주일 간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경찰 조사 때 고소 내용에 더해 스스로 자백한 내용조차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걸 보고 냉정을 잃고 결국 조사관 앞에서 감정적으로 격앙이 되었다. 반드시 지양해야 할 태도다. 얼음장보다 더 차갑게, 마치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 남자의 돼먹지 못함과 그동안 저지른 숱한 잘못들을 조목조목 알려주는 일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자.
나의 목표는 조사관이 남편이란 사람에 대해 정서적,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빠’, 최소한 ‘부적합한 아빠’라는 사실을 실재로 느끼도록 돕는 것이다. 나아가 그녀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당신은 분노 조절이 안되어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학대자’이자 직접 아이들을 서울에서 키우지 못해 온몸이 아픈 칠순 중반의 노모에게 쌍둥이 육아를 죽을 때까지 강요하려는 ‘호래자식’임을 직면하게 해주자. 한 달 500의 월급을 받아도 생활비 한 번 준 적 없고 늘 자신이 가난하며 이혼 소송 또한 재산 때문에 하고 있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임을 그도 알게끔 해주자. 가진건 악밖에 남지 않아 문서에 적혀 있는 혐의조차 부정하는 태도는 결국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부정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할 테다.
중간중간 관련도 없는 사소한 부부 싸움 얘기로 지난번처럼 시간을 낭비하려는 조짐이 보이면 감정 없이 “상관없는 얘기입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로 짧게 대응해 말을 끊겠다. 조사관 역시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임을 믿고, 저쪽이 월월 짖는다고 해서 다 인정해주지는 않을 거라는 기본 상식을 믿어보겠다. 내가 가진 파워풀한 문서 자료를 하나하나 디밀면서 네가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마이너 한 에피소드들은 다 깔아뭉개버리겠다.
그래, 이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아파트 단지에 데려다 드린 걸 가지고 자기가 살고 있지도 않았던 그곳의 접근금지를 어겼다며 치사하게 경찰 신고를 한 게 안그래도 벼르고 있던 마음에 불을 댕겼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의 신이 되어 네 눈물에 반드시 피눈물 나게 하겠다.
똥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 똥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 오로지, 시급히 데려와야 할 두 딸만 생각하고 임하겠다. 너희가 내 손 끝에 닿을 만큼 가까이 왔음을 강하게 느낀다. 좋은 결과를 믿어 의심치 않겠다. 현실은 딱딱한 조사실에 앉아있더라도 이상은 새집 욕실에서 셋이 함께 깔깔거리며 씻는 장면을 떠올리겠다.
토요일 새벽, 아직 많은 이들이 자고 있겠지. 넓은 이 집은 글을 쓰기 썰렁해 옆에 있던 스누드 목도리를 했다. 곧 해가 뜨고 동이 틀 것이다. 우리는 믿어야 한다, 이 어둠이 지나면 반드시 여명이 비출 것임을. 나는 믿는다. 이번 가사조사는 나의 완승이 될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