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자 모두 유죄
지난주에 이어 아침에 또 피부과를 다녀왔다. 샤넬주사는 일주일 간격으로 세 번에서 다섯 번 맞으면 그 효과가 6개월은 간다고 했다. 기계로 맞는 방법과 사람이 직접 놓아주는 방법이 있는데 덜 아프고 균일하게 약제가 들어갈 것 같아 기계로 맞았다. 한 땀 한 땀 ‘드르르륵, 콕’ 하기를 수십 번. 피부를 침으로 찌르는 거다 보니 한 부위가 끝날 때마다 의사 선생님이 피를 닦아주셨다. 양 볼과 턱, 이마까지 다 하고 나자
“잘 참으셨어요.”
라는 칭찬과 함께 끝이 났다. 참는 데는 예전부터 일가견이 있었다. 마스크를 다시 끼자 채 마르지 않은 피 냄새가 끼쳐왔다. 그래도 작년에 맞았던 리쥬란 힐러보다 훨씬 맞을 만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사춘기가 오면서 거울을 자꾸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요리보고 조리봐도 예쁜 구석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얼굴이었다. 작은 할머니를 닮아 개구리처럼 튀어나온 입, 원래도 작은데 도수 높은 안경을 써서 더 작아 보이는 눈, 기다란 얼굴, 넓은 이마...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룡점정으로 뭐 먹다 묻힌 것 같은 윗입술 위의 손톱만한 점까지. 반에서 예쁜 아이들 중심으로 친구들이 모이는 게 못마땅했다. 나도 끼고 싶었지만 끼기가 너무 어려웠다. 집 형편상 예쁜 옷도 별로 없어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그 때 깨달았다. 예쁘다는 건 일종의 ‘권력’과 같다는 걸. 그 안에 있는 ‘나’란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도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이후 4년에 걸쳐 교정을 하며 툭 튀어나온 입은 안정감 있게 들어갔다. 교정이 마무리가 되어가던 중3 때 즈음 같이 과외를 하던 남학생이 새벽에 집 우유함에 편지를 놓고 갔다. 아침 산책을 하고 오신 아빠가 그 편지를 먼저 발견했고 나는 생전 처음 있는 일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아름다움이 남자를 새벽에 우리집으로 오게 만드는 힘이 있단 걸 그 때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 남학생은 알고 보니 얼굴을 엄청 따지는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그 애가 고등학교 진학 후 사귄 여자애는 우리반에서 제일 예뻤다. 그래서 ‘예전에 얘가 날 많이 좋아했다’라고 다른 애들에게 이야기하면 ‘걔가 왜 널 좋아해?’하며 반문했다. 입이 들어가긴 했지만 그때도 여전히 밋밋한 얼굴이었었나 보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안경을 벗었다. 소프트렌즈를 주구장창 끼고 다녔다. 눈이 뻑뻑해지고 시력은 금방 안 좋아졌지만 상관없었다. 구불구불 옥수수수염 같은 머리카락도 싫었다. 집에서 머릿결에 좋다는 바나나팩을 만들어 한시간씩 했다. 고2 때 처음 매직스트레이트가 나오자 마치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쌍꺼풀 테이프를 눈매에 맞게 얇게 잘라 붙이는 기술이 날로 발전했다.
그랬는데도 한 날라리 동급생은 “네 몸에 내 얼굴이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했다. 내가 키가 크고 깡마른 체구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냥 날씬함이 부럽다고 하면 되지, 얼굴 얘기는 왜 붙여가지고... 아무튼 내 화장 기술은 장족의 발전을 했고 나중에는 한시간씩 화장을 하고 나서야 흡족한 마음으로 외출을 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이어진 미용에 대한 관심은 현재 진행형이다. 30년 가까이 이렇게 살았더니 이제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시네요’, ‘아가씬 줄 알았어요’라는 말은 심심찮게 듣는다. 지금은 또 ‘한 물 간 퇴물’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기도 하다.
이렇게 외면에 치장을 하며 얻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 했던 건지 생각해본다. 다른 사람의 사랑? 관심? 그게 다였을까.
사실은 초등학교 때 나를 ‘못난이’라 부르며 같이 놀아주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일종의 복수를 꿈꾸지 않았었나 싶다. 외모를 보고 다가온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싶은 악녀의 꿈을. “미인이시네요”하며 먼저 말을 건 남자에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다니 글러먹으셨네요’라며 괴로움을 안겨주고 싶었던 은밀한 속마음을. 지금의 가꿔진 나는 어차피 ‘진짜 나’가 아니기에 누구도 ‘진짜 나’를 알게 되면 사랑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등등.
어렸을 적 갖게 된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가 그림자가 되어 나에게 ‘시간이 날 때 얼른 관리 받아야지?’라고, ‘또 못생겨져서 따돌림 당할래?’라고 자주 말해왔었나 싶다. 나아가, 나처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쯧쯧쯧’ 소리가 나오게 한다던가.
이제라도 알았으니 이 짓을 멈출 수 있겠느냐, 묻는다면 그렇게는 하지 못할 것 같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최소한 어릴 적 컴플렉스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 ‘너는 왜 안 가꾸는 거야?’라고 묻는 것만큼은 조심할 수 있지 않을까. 빌게이츠 부인은 하나도 안 예쁘던데, 빌게이츠는 도대체 뭘 보고 결혼했을까. 아, 이게 아니지 참. 아무튼 이제 그런 어두운 마음가짐은 버리고 그냥 내면도 외면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싶다. 누가 나더러 예쁘다고 다가오면 그것대로, 외모에 끌려 다가오는 게 아니라면 또 ‘내면을 중시하는 진중한 사람이구나’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노 모어 팜므파탈.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