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니다."
올림픽 공원을 돌며 산책 단짝에게 '클럽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려다 결국 하지 못했다.
"뭔데요? 사람 궁금하게."
그래도 몇 달 동안 같이 이야기 엄청 많이 한 사이니 좀 부끄러워도 물어볼까.
나이 마흔이 다 됐어도 클럽 가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
"요새 클럽 다시 열었잖아. 가 보고 싶어서."
역시나 면박이 돌아왔다.
"누나, 안 돼요. 입구부터 뺀찌 먹어요."
자기도 몇 번 안 가봤다면서 '아서라'고 말렸다.
"올해는 아직 삼십구잖아. 내년이면 앞에 4자가 달린다구! 그럼 더 못 가지 않을까?"
나도 이런 내가 웃겨 걸으면서 자꾸 웃음보가 터졌다.
일종의 오기 같은 것도 생겼다.
'어떻게든 한 번 다녀오고야 말겠어!'
뭐 이런.
코로나 상황이 다시 하루하루 심각해지더니 결국 급하게 지난 주말부터 모든 음식점이 9시에 문을 닫게 되었다. 계속 늘어나는 확진자와 공무원으로서의 나의 신분을 상기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던 나는
지난 금요일이 밤 12시까지 밖에서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시간임을 인지하고 나서는
결국 거리로 나섰다.
클럽은 아무래도 너무너무 스피커 소리가 큰 데다 담배 연기도 심해서,
나이가 있어도 들어가기 조금 더 수월할 것 같고,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다 올 수 있을 거 같아
압구정의 한 라운지를 찾았다.
밖은 올해 최악의 한파였고
그날따라 택시는 잡히지 않아 약속 시간보다 무려 한 시간을 늦게 도착했지만
'마지막 밤'이라는 명제는 어쨌든 나를 거기에 데려다 놓았다.
아이 낳기 전에 라운지를 딱 한 번 가봤었나?
그때와는 또 좀 달라져 있었다.
아니면 내가 갔던 곳과 그냥 운영 방식이 다른 건지도 모르겠다.
즐겁게 춤추는 사람보다는
서로 이야기하려고 온 예쁘고 잘생긴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신기하게 2000년대 나이트클럽처럼
직원들이 여자분들을 각 테이블로 끊임없이 데려다줘서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하게끔 애를 쓰고 있었다.
거기서 내가 누군가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안녕하세요."
일행이 먼저 와 이야기하고 있던 테이블에 늦게 온 내가 합류했다.
12시 영업 마지막 날답게 가게 안에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어서 오세요. 뭐 좋아하세요?"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가 물었다. 뭘 마시고 싶은지 골라보라는 얘기였다.
"아, 전 샴페인 좋아하는데. 우선은 물부터 주세요."
헐레벌떡 뛰어오느라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여기 있어요. 저는 이름은 ㅇㅇㅇ이고, 나이는 꽤 많아요."
"저희 결혼 얘기하고 있었어요."
아, 결혼.
그래. 만인의 관심사지. 머리가 아파왔다. 그때 그가 말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전 한 번 갔다 왔어요."
순간 머리가 뎅 했다.
‘이렇게 쉽게 말한다고? 처음 만난 사람한테?’
그 말을 듣는 동시에 내 마음에 채워져 있던 빗장도 일거에 내려졌다.
"저도요."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그날 저녁 내내 그 테이블에만 머물렀던 게.
사실 상관없었다. 누구를 만나러 온 게 아니어서.
그냥 서울에 어린 미남 미녀가 서로 눈치를 보며 춤을 추고 적당히 큰 음악소리가 나오는 그 장소에
나도 함께 있다는 자체가 충분히 즐거웠다.
그는 나보다 조금 더 짧은 결혼 생활을 했고,
그다지 아내를 열렬히 사랑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합의 이혼으로 빠르게 서류는 정리되었으나
며칠 전 재산을 갖고 소송이 다시 들어온 상태였다.
우리는 그 공간에서
아마도 가장 나이가 많은 남녀일 거라는 데 동의했다.
이혼을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감정을 서로 털어놓으며
오랜만에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며 대화했다.
굳이 자신의 과거를 감추지 않는 모습에서
그가 멋있었다.
그건 요즘 내가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었으니까.
우리의 이야기는 길어졌고,
오늘에 와서는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호감을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따 저녁에 그를 세 번째 만난다.
나의 친구와 그의 친구가 함께.
단 5일 만이다.
너무 빠르다. 조바심이 난다.
예전의 뭘 모르던 어릴 때처럼
마음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행동하다가
망치고 싶지 않다.
잘하고 싶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 금요일이 크리스마스다.
그래서 고민이 된다.
성탄절은 행복한 연인들의 전유물 같아서.
아직 거기 내 자리는 없을 것 같은데,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먼 훗날 올해를 돌아봤을 때
아직 분수에 맞지 않는 즐거움을 억지로 누리려 애쓰기보다는
그간 살아온 내 모습을 돌아보는
차분한 연말이었다고,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실제로 요즘 자꾸
십여 년 전의 일이 부끄러워 이불 킥을 하곤 한다.
영어를 잘 못하던 학원 친구를 돕겠다고 먼저 단어 시험을 보자고 한 적이 있다. p와 f 발음도 잘 못하던 친구라 걱정이 컸다. 그런데 당시 학교에서 일하느라 공부를 덜한 나보다 그 친구가 막상 나보다 더 많은 단어를 맞추면
화를 내며 캐나다에서 겨우 시차를 맞춰 건 보이스톡을 퉁명스럽게 끊어버리곤 했다.
내 교육 방식에 불만을 가진 학부모나
지난 학교에서 일하며 부딪쳤던 젊은 여선생님과의 갈등을 내 방식대로 해결해 나가려던 모습도 기억난다.
이런 것들이
꿈도 아닌데 마치 꿈처럼 지금에 와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이었는지
좀 반성하라고 다가온다.
내가 늘 옳고, 내가 최고인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내 기준으로 멋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재단하던 과거가 말이다.
난 늘 나를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있어서 피곤하다고 여겼는데,
그건 어쩌면 내 성격으로 빚어진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가 성탄절에 만나자고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저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는
최소한 올해까지는
그런 날에 너무 즐거워서는 안 될 것 같다.
왜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그냥 한 번의 데이트인데
망설여진다.
역시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걸까?
언젠가 나도
성탄절이 내 것 같은, 내 날인 것 같은
그런 때가
다시 올 지 모르겠다.
만약 미래의 어느 성탄절에 웃을 수 있다면
마음에 겸손함과 충만함이
자연스럽게 흘러서 미소 짓는 것이길 하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