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억死천死백만원

남편 도움 없이 은행에서 대출 받기

by 이주희

‘안 돼!’

식은 땀을 흘리며 꿈에서 깼다. 남편이 끝까지 대출 서류에 사인을 해 주지 않는 악몽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세대원 주택소유여부 조회에 동의를 해 주지 않아 내 명의 아파트 잔금 대출을 못받는 꿈이었다. 침대 맞은 편 LED 탁상 시계가 새벽 두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꿈은 현실이랑 반대라고 했으니까, 결국 해 줄거야.’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얼마나 대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평소 잘 꾸지 않는 꿈까지 꿔가며 잠을 설치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현실도 꿈과 같았다. 남편은 아무리 해도 신용 조회에 동의해주지 않았다. 그 돈을 빌리면 자기 신용 대출을 갚아달라는 어이없는 요구를 해 왔으니, 안될 말이었다. 당장 사억사천사백만원을 어디서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눈 앞이 캄캄해졌다.


급한 대로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빠른 시일 내에 은행에 가 보시기로 했다. 혹시 몰라 동생에게도 저녁 때 전화를 했다. 동생은 서울에 새로 산 아파트를 세 놓을 건데, 그 돈을 받아 보아야 도와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남동생은 부산에서 약국을 한다. 때가 되면 신형 외제차를 바꿔 타고, 조카는 영어 유치원을 다닌다. 도와 주려고 마음 먹으면 약국을 저당잡아서라도 몇 개월간 돈을 융통해줄 수 있을텐데 하는 서운함이 마음 한 켠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모자라는 돈 알려주면 도와줄 수 있는 만큼 도와줄게!”

도와줄 수 있는 만큼 도와준다는 말은 형제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이대로 주변에 손을 벌리기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잔금대출을 취급하는 모든 은행에 최소한 전화 한 통씩은 돌려봐야겠다 싶었다. 그와 동시에 한 부동산 카페 회원이 자기도 아파트 명의자이고 아이들이 있는데 혼자 가서 중도금 대출을 모두 처리했다는 은행이 우리은행이었다는 댓글을 떠올렸다.

‘제발...!’


마음은 너무 간절했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에 겨우 기다려 여덟시 이십분 쯤 담당 상담사분께 연락을 드렸다. 알고 보니 내 신용만으로도 다소 적긴 하지만 잔금 대출이 나올 수 있다고 일전에 통화를 했었다. 대략적인 내 연봉을 얘기하니 4억1천만원 정도 가능할 것 같다고, 오후 세 시 반까지 은행으로 오라고 하셨다.


기존에 대출을 받고자 했던 다른 은행에서 관련 서류를 통째로 받아 택시를 타고 상담사분을 만나기로 한 우리은행 지점으로 내달렸다. 코로나 때문에 한 시간 일찍 문 닫은 지점 안에 직원 아닌 손님은 나 하나였다.

기다리고 있던 여자 직원분과 통성명을 하고 본격적으로 대출 가능 여부를 따지기 시작했다. 2020년 갑종 계산서를 들여다보시더니 여기에 한 달 치 월급이 더 들어가 있다고 지적을 하셨다. 이렇게 되면 연봉이 줄어들게 되고 대출 가능액도 줄어들 터, 하지만 더 기댈 은행이 없었다.

“저쪽 은행에서 본 거랑은 좀 다르네요."

"남편 분이 동의를 안해주시니까요."

"그럼 저 혼자 했을 때 가능한 금액이 얼만지 그냥 새로 봐주세요.”

나는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상담사분은 서류를 복사하겠다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반대쪽으로 걸어가 다른 직원과 연봉 책정 방법에 대해 상의를 했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판기에서 뽑은 모카 커피를 목으로 꿀떡꿀떡 넘겼지만 무슨 맛인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곤 삼억팔천이라는 액수가 내 이름 석 자 앞에 적혀졌다. 그래, 교원공제회 대출이 팔천만원 넘게 가능했으니까 이율이 좀 높더라도 당분간 이자 낼 돈까지 충분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수십 장의 종이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계적으로 적고 사인하기를 수십 번. 은행 문을 나오자마자 큰 숨을 내쉴 곳을 찾았다. 가까운 곳에 햄버거집이 있었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받아 2층으로 올라가서야 엄마에게 돈을 빌렸노라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한 번도 빌려본 적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돈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해결했구나’라는 자각이 들었다. 큰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아마 외로움에서 비롯되었을 슬픔도 따라왔다.


불현듯 지난 여름 레디백을 받기 위해 동이 채 트기도 전 강남의 한 스타벅스 앞에 줄을 섰던 기억이 났다. 그날이 나에게 세 번째 도전이었다. 매장 안에 레디백 박스가 들어와 있는지, 전날에 입고가 되었었는지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뒤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줄을 섰다. 다행히 내 뒤로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였다. 내가 가지려고 줄을 선 것과 달리 뒤에 온 두 분은 아내와 친구에게 주려고 줄을 섰다고 했다.

‘나도 그런 민폐 캐릭터 잘 할 수 있는데......’


내 팔자는 도대체 어떻길래 이 모든 걸 혼자 판단하고 해결한단 말인가? 마침내 소송을 해서라도 이혼하기로 결심한 것, 분양받은 새 아파트에 아이들과 나의 미래를 위해 입주하기로 한 것, 저쪽 집 전세금을 가압류당한 상태에서 부족한 돈을 구한 것 모두가 「나 혼자」의 몫이었다.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느라 차갑게 식어버린 햄버거와 그보다 더 차가운 사이다를 맛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위장으로 밀어 넣듯이 다 먹었다. 쟁반 위에 남은 껍질과 음료를 정리한 후 그곳을 나서자 바깥으로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 내 모습이 마치 어두운 사막 한가운데 홀로 별을 쫓아가는 사람처럼 그려졌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 그만 울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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