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가방에 담아온 것은
명절 때 친정집에 가 차례에 참석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결혼하고서는 시댁에 먼저 가 차례를 지내느라 못갔고, 결혼 전 몇 년은 가기 싫어 안갔으니. 근 십 년만인 것 같다. 어차피 아이들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데다 이번에 부모님께 금전적으로 손 벌릴 뻔하기도 했어서 설 전 날 엄마와 전이라도 같이 부쳐드릴 요량으로 고속버스를 예매해두었다.
전 날 샤넬 주사를 맞고 온 얼굴이 촘촘한 붉은 자국 투성이었지만
‘친정에 가는 건데 뭐 어때’
라고 생각하며 2박 3일 치 짐도 간단하게 후다닥, 차림도 청바지에 풍덩한 회색 니트를 한 장 걸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설 연휴 첫날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색이 평소 같지 않았다. 늘 칙칙한 검정색 패딩잠바가 그득했는데 왠일로 형형색색 칼라풀함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특히 지하철을 타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신발이 예쁜 게 많았다. 종류는 운동화가 많았는데 흰색, 빨간색 등 딱 봐도 새로 산 꼬까신이었다.
‘고향 가는 길이라고 모두들 신경 썼구나.’
친정 간다고 너무 편하게만 생각하고 입고 나온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침 일곱시 사십분쯤이었을까. 아빠는 벌써 정장을 하고 차례상을 준비하고 계셨다. 나는 다른 옷을 가져가지 않아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울긋불긋한 얼굴 그대로 어제 입고 온 옷을 주섬주섬 다시 입었다. 동생 내외와 두 조카, 엄마, 아빠, 그리고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 섰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다같이 모인 건 처음이었다.
우리집은 할머니가 두 분이었다. 큰할머니와 작은할머니. 정실부인이었던 큰할머니가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할아버지는 작은할머니를 들였고, 그 사이에서 아빠가 태어나셨다. 그리고 아빠가 엄마를 만나 나와 동생을 낳으셨으니 사실 내 유전자는 작은할머니로부터 온 걸 테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는 키도 크고 따뜻하고 똑똑해 보였던 큰할머니를 ‘진짜 할머니’로 믿었다. 할아버지는 사진으로밖에 뵙지 못했는데, 아빠 나이 열세살인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후 두 분은 큰할머니가 교통사고로 급작스럽게 돌아가실 때까지 같이 사셨다. 자주 투닥거리면서. 때때로 두 분이 다툴 때마다 어린 내 눈에는 작은 할머니가 교양 없이 큰할머니께 틱틱대는 걸로 보였고, 참 나쁘게도 돌아가실 때까지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하나도 바래지 않은 세 분의 사진을 마주하니 왠지 예전의 내 자리로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 그동안 잘 계셨어요?’
첫 절을 올리며 속으로 인사를 드렸다. 몇 개월 전의 나였다면 눈물을 송송송 흘렸겠지만 그 날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잘 못 살아서 죄송해요. 그래도 다 잘 될거에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다음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집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렸다. 갈 때는 사람들의 꼬까신이 보이더니 이번에는 불룩한 가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엔 어머니가 챙겨주신 정이 담뿍 담겨있을 테다. 그렇다면 난 뭘 챙겨 왔을까?
이번 설을 친정에서 보내며 남편도 없이 자식 하나만 바라보고 한 지붕에서 수십년을 함께 보낸 두 할머니의 가난했고 그래서 어려웠을 시절을 떠올렸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유년시절의 아버지가 겪었을 고난과 청년이 된 후 남들만큼 잘 살기 위해 쳤던 몸부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어머니의 점점 시큰해져 가는 무릎을 곁에서 목격하며, 아이들이 내게 오고서도 어머니에게 물리적 도움을 받기는 어렵겠다는 계산도 장부책에 적어두었다. 나처럼 가정이 불화하지 않고 잘 살아주는 동생과 올케도 고마웠다.
장유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를 기다릴 때 엄마가 말씀하셨다.
“엄마가 너 낳고 몸이 안좋아서 외할머니한테 네가 많이 가 있었어.”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 과거였다. 외할머니는 첫 손주인 나를 많이 예뻐하셨다는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을 뿐. 외할머니의 나이 올해 여든아홉. 마음 같아선 자주 찾아뵙고 싶었지만, 살아계신 외할머니의 표정이 슬퍼질까 쉽게 갈 마음을 먹을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 앞에서는 차례상 앞에서처럼 울지 않고 당당하기가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외삼촌과 엄마가 더이상 혼자서 거동이 힘드신 외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야 하나 전화로 의논하시는 걸 친정집에 있는 동안 들었다. 돌아가시기 전, 한 번도 못보여드린 내 두 딸과 손잡고 가서 얼굴을 뵐 수 있다면 아아 얼마나 좋을까? 그 날엔 그냥 마음 놓고 울어도 괜찮으리라. 외할머니 그 날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이번 설에 그동안 다소 부족했던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이해와,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큰 소원 하나를 갖고 서울로 돌아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