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데이트 소회

by 이주희

지난밤 데이트는 무척 즐거웠어요.

미처 나누지 못했던 궁금했던 부분이 대화로 많이 풀렸어요.

그가 그렇게 쫓기듯 결혼했던 건 나이가 많으신 부모님과 사회적 시선 때문이었대요.

삼십 대 중후반에 결혼했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제가 이혼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면

다른 그 누구보다 저와 전남편 사이에 대해 빠르게 잘 이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똑똑한 사람이에요.

오랜만에 데이트하게 해 주어, 정말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고 건넸습니다.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는데

그 사람이 오트밀을 먹는다는 걸 알고

저도 오늘 아침 마켓 컬리에서 주문해서 먹었어요.

간편하고 건강식에 든든해서 참 괜찮네요.

우유가 몸에 안 좋다고 해서 요즘 우유 끊으려고 노력 중이거든요.

아몬드 브리즈에 타서 전자레인지에 2분 데우기만 하면

숭덩한 죽처럼 되더라고요. 아침 번거로우신 분들께 저도 추천드립니다.


둘째 딸아이가 그린 그림이 붙어있는 집 냉장고. 다섯 살 치고 참 꼼꼼하게 잘 그리고 색칠하지 않았나요?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만 잘하면 될 것 같더라고요.

변덕 부리지 않고, 작은 것도 감사한 마음으로 만난다면

세상 끝날 때까지도 만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아이를 아직 놓을 수가 없네요.

판결이 나지 않은 시점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벌써 연애를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하기로 했습니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1번이 되어도 좋고, 2번이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도, 저도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고 있는 건 확실히 알겠으니까요.

다만 그의 연인이 되어달라는 말은

부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먼 느낌입니다.

사랑의 열정이 눈을 가리는 그런 일은

생에 더 없을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해요.

하지만 성숙한 관계를 맺는 측면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더 나아지겠지요. 제가 철이 드는 만큼요.

우선은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해요.

하지만 확실히, 이혼이라는 전쟁의 폐허에서 채 다 회복하지 못한 제 모습이 요즘 들어 자주 보입니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면

여전히 남자보다는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싶습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엄마.”

하는 소리를, 까르르 굴러가는 두 쌍둥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을까 봐

혹은 어느 순간 지칠 대로 지친 제가 스스로 양육권을 포기하기라도 할까 봐

무섭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제게 오지 않아

누군가 진지하게 만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어느 부분은 텅 비어 있겠지요. 진짜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는...

니체의 말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지금의 삶을 사랑해야겠지만

그게 아직은 너무너무 어렵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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