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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Jul 13. 2023

면역

 풋풋한 사랑의 감정으로 고민하던 한 이십 대 초반 여자가 있다. 다시 수능을 보기 위해 내려간 곳에서 운동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 만난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시험공부에 대한 압박과 그와 열 살 가량 나는 많은 나이 차이, 그 사이를 비집고 잡초처럼 꿋꿋이 피어나는 연애 감정으로 오래 가슴을 앓던 그녀에게 지난 주말 그

 "지금은 연애할 생각이 없어."

 라며 못을 박았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많이 아프다. 현실과 꿈을 헷갈릴 정도로. 혼자 놔두면 위험할 것 같아 가족이 있는 곳으로 급히 이사를 한다고 다.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누구의 한 마디가 너무 가슴 아파서 정신을 놓아버리기까지 한 적이. 이십 대 때 한 번 누군가 크게 좋아한 적이 있긴 하지만 너무 보고 싶고 연락하고 싶어도 헤어지고 나서는 자존심 때문에 꾹꾹 눌렀다. 어떤 사람을 지나치게 많이 사랑하면 상처가 깊고 오래간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배웠다.


 시간이 흘러 사십 대가 된 지금, 그녀의 풋풋함이 처음에는 '나도 언제 저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선했다. 하지만 이내 현실에 적당히 안주하며 생활에 지장이 없을 만큼만 마음을 주는 나의 지금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고 결혼도 해봤다. 하지만 들춰 보인 모든 비밀은 거꾸로 비수가 되어 내게 돌아왔다.

 그러니 굳이, 내 본모습까지, 밑바닥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까지 모두 알려주는 연애는 이제 조금 조심스럽다. 적당히 적당히, 좋은 게 좋은 거지. 굳이 화낼 필요 없잖아? 하는 정도도 지금은 충분하다.


 날개 꺾인 방랑자는 잠시 쉬어간다. 무해한 그늘에서. 사랑 앞에 이렇게 비겁해져도 괜찮은 거겠지? 온 마음을 다했다 많이 아픈 그녀처럼 나도 언젠가 다시 롤러코스터를  준비가 생애 한 번이라도 다시 될지 모르겠다. 그녀는 부디 툭툭 털고 일어나길. 나름의 면역이 생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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