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준비하다가 평소보다 늦게 출근길에 올랐다. 학교 앞 큰길에서 좌회전을 하다 옆차의 클락션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출근 시간에 거의 맞춰 정문에 도착했다. 교실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바빴다.
교실 앞에 가 보니 오늘따라 일찍 일어난 한 학생이 벌써 실내화를 갈아 신고 있었다. 그사이 팔을 다쳐 오랫동안 결석했던 학생이 내일 온다고 학부모에게 문자가 왔다. 내일 언제쯤 등교하면 좋을지 답장을 보냈다.
컴퓨터를 켜니 교사의 지시에 불응하는 학생에게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지 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하지만 우리 반 수업이 먼저다. 나는 교실에서 기르고 있는 바질에 줄 물을 준비했다.
수업이 모두 끝난 뒤에는 동학년 선생님들이 모여 내일 있을 체육대회 준비를 했다. 이어서 아침에 받은 메시지 관련해서 교감선생님을 뵙고, 부장회의에서 민방위 훈련 설명을 드렸다.
회의를 마치고 나서 다시 운동장에 나가 내일 달리기에 필요한 선을 그렸다. 뙤약볕이 뜨거워서 꼭 모자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예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어 했던 크랩52에 남자친구를 만나러 왔다. 올라오니 저 멀리 풍광이 멋지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소 조용한 핸드폰 때문에 생일 주간이 밋밋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우렁찬 엄마의 전화를 받고 하루를 시작한 뒤 이 시간이 되니 생각이 바뀐다. 누가 다치지도 않고, 누구와 헤어질 걱정을 하지도 않고 그저 크고 작은 걱정과 일로 바빴던 오늘 하루. 어쩌면 이런 생일이 이혼하기 전 내가 간절히 바랐던 일상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내년 생일도, 내후년 생일도 이랬으면 좋겠다. 별일 없이, 조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