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의 고됨은 한강 작가의 글을 읽으며 느꼈던 가장 큰 메시지다. 살아간다는 일은 그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 무겁다는 그 말을 그녀는 다양한 이야기에 엮어서 들려주었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나는 5.18 현장에 잠시 들어갔다 나올 수 있었다. `흰'과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태어나지 못한 생명과 미처 떠나 보내지 못한 누군가를 애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작가로부터 전달받았다. '채식주의자'의 여주인공이 조금의 폭력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사람 대신 식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토록 용감한 그녀의 선택을 소설을 읽는 내내 응원했다.
어느 위스키가 내세우는 문구인 'Keep Walking'은 말처럼 쉽지 않다. 때로는 주저앉아 쉬고 싶기도 하고, 어느 때는 한발 더 나아가 엉엉 울고 싶기도 하니까 말이다.
나의 존재가 누구에게 기쁨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오히려 그건 나의 자만심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깨닫게 된 일이 최근에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는 정도의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거란 자신 대신 혹시 나 때문에 속상하거나 울게 한 적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었다.
소설을 읽으면 안타까움과 탄식, 때로는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를 마치면, 어느새 '나'라는 사람이 아주 조금은 더 넓어지고 깊어짐을 느낀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소설을 즐겨 읽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렇게 소설을 읽는 사람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 소설을 읽는 사람이 소설을 읽지 않는 이보다 삶에 관해 더 많은 사색을 하리라 믿기 때문이다.